형사 · 2026년 9월 10일 · 변호사 김영빈
경찰조사 변호사 동행 — 옆에 앉아서 뭘 해주나요?
경찰조사에서 변호사가 언제 답변을 멈추고 무엇을 확인하는지, 가상 장면으로 풀었습니다. 서면으로 해명할 일이 생기기 전에 조사 단계에 가장 공을 들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서면으로 길게 해명할 일이 생기기 전에, 조사실에서 하는 일들

“잠깐 물 좀 마시고 하시죠.”
의뢰인이 답변을 이어가려는데 제가 말을 끊습니다. 방금 수사관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때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셨던 거네요?”
의뢰인은 고개를 끄덕이려 합니다. 그런데 조사 전에 저와 나눈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고,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상했다’와 ‘그때부터 이상한 줄 알았다’는 다릅니다.
어느 부분에 동의하려는 건지 잠깐 확인해야겠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동안 따로 이야기해보자고 합니다.
“옆에 변호사가 앉아만 있던데요.”
경찰조사 동행에 관해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조사가 끝나고 떠올려보니 변호사가 한 말은 몇 마디 없고, 대부분 의뢰인과 수사관이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비용을 들여 함께 갔는데 무슨 도움이 된 건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조사 단계에 가장 공을 들입니다. 어느 시기보다도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질문 한마디에 의뢰인의 설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답변이 어떤 문장으로 남으려 하는지를 계속 듣습니다. 앞의 장면에서처럼, 더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추자고 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변호인은 ‘서면을 쓸 게 없는’ 상태를 먼저 만들어두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긴 의견서로 해명해야 할 일이 생기기 전에, 좀 더 일찍 들어가서 사실이 어떤 내용으로 정리되는지부터 관여하는 겁니다.
이 글의 조사 장면은 조사입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인물과 대화를 가상으로 구성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조사를 받는 분에게는 할 말이 많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는지. 조사 전에 이야기를 나눴어도 막상 질문을 받으면 미처 하지 못한 설명이 떠오릅니다.
“그건 그렇고요, 사실은 제가…….”
옆에서 듣는 저는 조금 바빠집니다. 지금 질문에 필요한 설명인지, 앞서 한 말과 시점이 맞는지, 직접 겪은 일인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의뢰인은 한 가지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안에 확인해야 할 내용이 여럿 들어 있기도 합니다.
특히 질문에 들어 있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답할 때가 있습니다. 앞의 “그때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셨던 거네요?”가 전형적으로 위험합니다. 수사관은 "그때"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묻고 있는데, 의뢰인은 지금 그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별 생각 없이 대답하기 쉽습니다. 둘 다 대화가 잘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전형적인 유도신문입니다.

그럴 때는 수사관에게 질문의 시점을 나누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의뢰인에게도 어느 때의 생각을 말씀하시는 건지 확인합니다. 한참 전 일이라 기억이 흐리면, 날짜를 어떻게든 맞추려고 애쓰는 답변부터 멈춥니다.
답변하지 않기로 판단할 질문도 있습니다. 피의자는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조사에 응하기로 했다고 해서 모든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설명을 하고 어떤 질문에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할지, 그 판단도 의뢰인과 함께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는 일만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순간을 알아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잠깐 쉬는 동안

말이 빨라지고, 같은 설명이 반복되고,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이 나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잠깐 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을 마시거나 휴식을 취하자고 요청합니다.
따로 이야기할 때는 방금 답변부터 짚습니다.
“아까 고개를 끄덕이신 건, 그 당시에도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까?”
“아뇨.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거죠. 그때는 몰랐어요.”
그렇다면 다시 들어가서 그 시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질문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고, 설명을 보탤 자료가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잠시 대화가 멈추면 의뢰인도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쉬는 시간에는 수사관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어느 부분이 제일 안 맞는 걸로 보이세요?”
“그 자료도 확인하신 상태에서 물어보신 겁니까?”
수사관도 저에게 묻습니다. 그 설명을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 다른 사람의 말과 다른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저도 질문하고 답하면서 수사관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의심하는지 살핍니다. 서로 떠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대화에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이 구체화됩니다. 말로만 설명하던 경위를 문서로 확인시켜야 할 수도 있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보다 다른 대목을 더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의뢰인에게는 잠깐 물을 마시고 돌아온 시간이지만, 저는 다시 들어가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질문을 받습니다
조사를 계속하면 수사관이 답변을 정리해서 되묻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됐다는 말씀이시죠?”
이제 의뢰인이 동의하려는 문장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습니다. 언제 알게 됐는지, 그전에는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그 말을 믿고 무엇을 했는지. 필요한 질문이 그 순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이런 문답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춥니다. 같은 행동을 했어도 그 전에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에 따라 설명은 달라집니다. 그 경위가 빠지고 행동만 남으면 의뢰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변호인은 그때그때 들어야 합니다. 질문이 품고 있는 전제도 듣고, 의뢰인이 생략한 사정도 듣습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될 표현에는 의견을 내고, 말로 설명해서는 이해가 맞춰지지 않으면 자료를 정리해서 제출할 시점도 의논합니다.
저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사정이 처음부터 함께 드러나도록 이 과정에 관여합니다. 사실의 어느 부분을 먼저 설명하고, 어떤 자료와 함께 보여주느냐도 변호인의 판단입니다. 이미 완성된 기록을 받은 뒤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조사실 안에 있습니다.
물론 매번 같은 방법이 통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끊어야 할 때가 있고, 조금 더 듣는 편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수사관에게 설명할 때도 있고, 의뢰인과 먼저 상의할 때도 있습니다. 의뢰인이 필요한 설명을 잘하고 있다면 굳이 끼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질문의 전제가 바뀌거나 답변이 다른 뜻으로 정리되려는 순간에는 입을 엽니다.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에도, 지금 개입할지를 계속 판단하고 있습니다.
조서를 읽을 때까지
“조사는 여기까지 하고, 내용 한번 읽어보세요.”
의뢰인은 긴장이 조금 풀립니다. 이제 서명하고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화면을 다시 읽습니다.
아까 시점을 나누어 설명한 내용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지금 생각해보니’라는 말이 빠져 있지는 않은지. 대화 중에는 서로 이해한 듯 넘어갔던 말도, 문장으로 읽으면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말한 취지와 다르면 그 자리에서 정정을 요청합니다. 조서를 읽고 사실이나 진술과 다른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 이의나 의견을 조서에 추가로 적도록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정정 취지가 제대로 반영됐는지까지 확인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
나중에 의견서로도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왜 첫 조사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의 설명과 무엇이 다른지를 함께 풀어야 합니다. 조사 당시에 질문 한 번 되묻고 문장 하나 확인하면 될 일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사후 정정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재판부도 분명 있습니다.

제품 개발에는 프런트로딩(front-loading)이라는 접근이 있습니다.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일을 개발 초기로 앞당겨, 뒤늦은 수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는 겁니다. 저는 형사사건을 맡을 때도 그 생각에 공감합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 해설)
그래서 저는 이 단계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첫 질문을 받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함께 듣고, 그 말이 기록으로 정리될 때까지 옆에 앉아 있는 겁니다.
질문을 되묻는 말 몇 마디, 잠깐의 휴식, 조서에서 고친 표현 하나. 밖에서 보면 별일 없이 조사를 마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중에 길게 해명할 일이 없는 채로 경찰서를 나올 수 있다면, 저는 그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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