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9월 10일 · 변호사 김영빈
보이스피싱 대출사기 — 돈을 빌리려다가 피의자가 됐습니다
대출 상담을 따라 송금했다가 보이스피싱 사기방조 혐의로 조사받게 된 상황을 가상 사례로 풀었습니다. 금융회사 공식 창구에 직접 확인할 이유와 첫 조사 전에 챙길 대화·거래내역을 짚습니다.
계좌가 묶이고 경찰 연락까지 받았다면, 대출 상담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대출은 한 푼도 못 받았는데, 저를 조사한답니다.”
돈이 필요해서 대출을 알아봤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대출은 안 나오고 통장이 묶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그 통장으로 들어왔다 나간 돈을 묻습니다. 다른 피해자의 돈을 옮기는 데 이용됐다면, 대출을 받으려던 분도 사기방조 혐의로 조사받을 수 있습니다.
아래 인물·대화·사건 경위는 법적 쟁점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 구성한 가상 사례입니다.
1. 대출을 받으려는데, 송금할 일만 늘어납니다
이사할 집의 보증금이 조금 모자랐습니다. 대출 상담을 신청했더니, 담당자라는 사람이 한도를 더 받을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래 실적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저희 쪽 자금을 잠깐 넣었다가 회수하면 심사를 다시 올릴 수 있습니다.”
대출 신청자는 되물었습니다. 돈을 빌리겠다는데 왜 다른 돈을 받아서 보내야 하느냐고요. 상대는 금융회사 이름이 적힌 안내문을 보내고, 본인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습니다. 처음 듣는 절차였지만, 담당자는 익숙하게 설명했습니다.
곧 돈이 들어왔습니다. 알려준 계좌로 보냈습니다. 상대가 이체 확인증을 요구해서 그것까지 보냈습니다. 정작 기다리던 대출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사 중입니다. 이번 건까지만 처리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믿고 또 돈을 보냈습니다. 통장에는 모르는 사람 이름이 늘었고, 대화방에는 ‘송금했습니다’라는 답장이 쌓였습니다. 돈을 빌리러 왔는데, 어느새 남의 돈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입출금을 반복하면 대출이 나온다는 말에 따라 돈을 옮기고 계신다면, 여기서 멈추셔야 합니다. 상대가 보낸 안내문에 금융회사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 정상적인 대출 절차가 되지는 않습니다.
송금하기 전에, 금융회사의 공식 창구로 직접 확인하십시오.
상대가 보내준 번호나 링크를 그대로 이용하지 마시고, 직접 찾은 금융회사 대표번호나 영업점으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담당자가 괜찮다고 했다”는 말만 믿고 다시 송금하지 마십시오.

2. 통장이 묶였는데, 담당자는 계속 괜찮다고 합니다
은행 앱에서 이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은행에 확인하니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로 계좌가 지급정지됐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대출 신청자는 송금을 중단했습니다.

담당자에게 따졌더니 답이 왔습니다.
“착오 신고입니다. 저희가 풀어드릴 테니 다른 계좌로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이번에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은행에서 들은 말을 적어 두고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경찰에서도 연락이 온 뒤였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속인 거잖아요. 그 대화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인 대화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수사관이 확인할 것은 그 말만이 아닙니다. 다른 피해자가 속아서 보낸 돈이 이분 계좌로 들어왔고, 이분이 직접 다음 계좌로 옮겼습니다. 대출을 받으려던 사정과 함께, 남의 돈을 왜 받아서 보냈는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지급정지는 유죄 판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계좌 문제를 해결하면 형사사건도 저절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에는 지급정지 사유와 안내 사항을 확인하고, 경찰에는 어느 거래를 조사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출 담당자라는 사람이 “풀어준다”며 요구하는 추가 송금이나 다른 계좌 제공에 응할 일이 아닙니다.
3. “좀 찜찜하긴 했습니다.” 무엇이, 언제부터였습니까
대화방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습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죠?’
“이때 무엇이 걱정되셨습니까?”
“계속 돈만 보내라니까요. 대출은 안 해주고 제 시간만 쓰는 것 같아서요.”
“그 걱정을 처음 한 때가 언제입니까? 그다음에는 무슨 설명을 듣고 다시 보내셨고요?”
이 질문은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출이 안 나올까 봐 걱정한 것과, 사기로 얻은 돈을 옮기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다릅니다. ‘찜찜했다’는 말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기방조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사기를 돕는다는 인식입니다. 확실히 알고 가담한 경우만 문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기 범행을 돕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고 송금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고의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받은 설명과 경고, 그 뒤의 행동을 함께 봐야 합니다. (미필적 고의의 판단에 관한 대법원 판결)
그래서 “의심한 적 없다고 하면 되나요?”라는 질문에는 그렇게 준비하시면 안 된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의심했다면 무엇을 의심했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물었고 어떤 답을 들었는지부터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을 송금 당시에도 알았던 것처럼 섞어서 말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합니다.
이분이 은행의 경고 뒤에 송금을 멈춘 사실도 확인할 자료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로 앞선 송금까지 모두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속았더라도 도중에 알게 됐다면, 알게 된 뒤의 행동은 따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경찰에 갈 때, 대출 약속 캡처 몇 장만 가져가지 마십시오
대출 신청자는 상대가 “승인될 겁니다”라고 말한 화면을 골라 보여줬습니다. 그 말을 믿었다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대화도 그대로 있습니까?”
다행히 남아 있었습니다. 대출을 처음 문의한 메시지, 상대가 보낸 안내문, 입금자 이름을 물었던 대화, 이체를 재촉한 메시지, 은행에 다녀온 뒤 주고받은 말까지요. 이것을 계좌 거래내역과 시간순으로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설명을 듣고 어느 돈을 보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담을 준비하신다면 대출 광고와 신청 내역, 상대와 주고받은 전체 대화와 남아 있는 통화 녹음, 입출금 거래내역, 은행 안내와 경찰의 출석 요구 내용을 함께 챙겨 오십시오. 대화는 유리해 보이는 부분만 잘라 보관하지 마시고, 원본도 남겨 두셔야 합니다. 화가 나더라도 대화방을 지우지는 마십시오.
자료가 있다고 해서 설명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보낸 서류가 얼마나 그럴듯했는지, 이상한 지시를 어떤 말로 납득시켰는지, 경고를 받고도 거래를 이어갔는지에 따라 검토할 내용이 달라집니다. 변호인은 그 대화와 거래내역을 대조하며 다툴 수 있는 사실과 불리한 사실을 함께 확인하고, 첫 조사에서 무엇을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지 준비합니다.
“제가 억울하다는 말만 하면 안 되는 거네요.”
억울한 사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돈을 보낼 당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몰랐는지, 자료와 함께 설명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설명을 뒷받침할 대화가 어디에 있는지, 설명과 어긋나는 거래는 없는지, 첫 조사 전에 함께 확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