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7월 12일 · 변호사 김영빈
물피도주 vs 뺑소니 처벌 — 언제 박았나요? 그리고 뭘 박았나요?
'뺑소니'라는 죄명은 법에 없습니다. 주차된 차만 긁고 간 물피도주 벌금 20만 원부터, 주행 중 미조치 징역 5년 이하, 사람이 다친 도주치상 징역 1년 이상까지 — '몰랐다'는 말이 조사실에서 어떻게 시험대에 오르는지, 기소유예로 끝난 실제 사건과 사고 직후 5분의 무게.
“사고 난 줄 몰랐다”는 말은 제발 아무렇게나 하시면 안 됩니다
뺑소니? 다 아는 거 아닌가요?
너무 당연하게 ‘뺑소니’ 죄가 있는 줄 아시는 분들이 있죠. 그런데 ‘뺑소니’는 하나의 죄가 아닙니다. 언제 쳤는지, 무엇을 쳤는지에 따라 2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징역 1년 이상까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는 ‘사고 순간’이 아니라 조사실에서 대부분 정해지죠.
뺑소니는 하나의 죄가 아닙니다
일단 ‘뺑소니’라는 죄명이 없습니다. 사고를 내고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적용되는 조문이 있을 뿐입니다. 이거부터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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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된 차만 긁고 연락처를 안 남긴 경우. 도로교통법은 주·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도록 하고, 어기면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과료에 처합니다(제156조 제10호). 흔히 ‘물피도주’로 검색되는 문콕, 주차장 접촉 사고가 대개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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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가 사고를 내고 그냥 간 경우. 주행 중 사고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고를 냈으면 즉시 정차해서 사상자를 구호하고 인적 사항을 제공해야 하고(제54조 제1항), 이 조치를 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제148조). 즉, 여기서부터는 ‘사고후미조치’ 죄가 적용됩니다. 물건만 부서진 사고라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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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쳤는데 떠난 경우. 여기서부터는 도로교통법이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의 영역입니다. 이른바 ‘도주치상’, 그리고 소위 ‘뺑소니’라고 하면 이 지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법정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제5조의3 제1항 제2호). 피해자가 사망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올라갑니다. 아래에서 다룰 사건이 바로 이 자리였습니다.
비슷한 ‘떠남’인데 벌금 20만 원과 징역 1년 이상 사이를 오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고 순간에는 저 셋 중 어디인지 스스로 알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놀란 몸은 아픈 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범퍼가 멀쩡해 보여도 타고 있던 사람의 목은 꺾였을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떠난 뒤에, 남의 손에서 정해집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교통사고는 원래 형사처벌의 예외가 넓게 열려 있는 영역입니다. 피해자와 합의하면, 종합보험에 들어 있으면 공소 자체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특례(교통사고처리특례법)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주한 경우에는 이 특례가 통째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합의로, 보험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고가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전혀 다른 무게의 형사사건이 됩니다.
말만 들어서는 감이 안 오실 테니, 두 가지 정도 사례를 같이 보시면 좋겠습니다.
#1. 어느 겨울 낮, 편도 2차로
먼저 제가 만났던 어느 겨울에 있었던 사건 이야기를 해 보죠.
일흔이 넘은 농부가 있었습니다. 몇 달 전 아내와 사별하고, 남의 논을 부치며 혼자 살던 분입니다. 겨울 낮, 친구와 목욕 약속이 있어 1톤 화물차를 몰고 나섰습니다.
편도 2차로에서 앞차가 느리다고 느껴 1차로로 차선을 바꿨습니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옆 차로의 화물차와 부딪혔습니다. 상대 차량은 범퍼가 튀어나오고 후미등이 깨졌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상대 차량은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한동안 뒤를 쫓았습니다. 화물차는 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대로 목욕탕에 갔고, 그날 저녁 집으로 경찰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정말 몰랐다면, 뺑소니가 아닌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도주죄는 고의범입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사고가 난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운전자에게는 도주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고를 몰랐다면 ‘도주’가 아니라 그냥 ‘주행’입니다.
그래서 조사실에서 가장 흔한 말이 “몰랐다”입니다. 그리고 수사기관이 가장 집요하게 시험하는 말도 “몰랐다”입니다. 어렴풋이라도 알았다면 —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쌓이면 — 그 말은 무너집니다.
이 사건에서 당사자는 ‘사고 난 줄 몰랐다’ 라고 진술했습니다만, 그 말은 몇 가지 반대되는 정황과 마주 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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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상대 차량의 사진. 범퍼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등이 깨질 정도의 충격이 “느낌조차 없었다”는 말과 모순되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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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향등과 경적. 그리고 한동안 따라온 차. 백미러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몰랐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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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고 당일 저녁의 통화. 경찰이 먼저 걸어온 전화에서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많이 다쳤습니까.” 사고가 난 줄 몰랐다는 사람이, 다친 사람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조사관은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들었고, 그날의 문답은 조서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별 것 아닌 안부일수도 있겠지만, ‘정말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안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 말이죠.
다툴 ‘각’이 나올까요?
선임 후 제가 처음 한 일은 위로도 낙관도 아니었습니다. 조서와 블랙박스, 통화기록을 펴놓고 대차대조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몰랐다”로 끝까지 가는 길이 있습니다. 도주의 고의는 검사가 입증해야 하니 법리적으로는 열려 있는 길입니다. 다만 그 길의 끝은 법정입니다. 부인하는 피고인으로, 1년 이상의 법정형 앞에, 저 반대 정황과 함께 서게 됩니다. 재판부가 정황을 어떻게 읽을지에 전부를 거는 길입니다.
인정하는 길이 있습니다. 수사 단계에서만 열리는 문들이 있는 길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소위 말하는 다툴 ‘각’이 그다지 보이지는 않았고,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가족을 대동한 여러 번의 상담 끝에 그분이 스스로 인정을 택했습니다. 그 결정이 이 사건의 나머지 전부를 만들었습니다.
인정한 다음에 한 일
혐의를 인정하기로 한 뒤에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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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조정을 구했습니다. 검찰 단계에는 피해자와 피의자가 조정위원 앞에서 만나 합의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재판까지 가지 않고 사과와 배상이 오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조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합의금을 지급했고, 피해자들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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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록으로 만들었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 몇 달 전의 사별. 수십 년 전 사고로 성치 않은 손. 평생 전과 하나 없이 남의 논을 부쳐 온 시간. 서류가 말해주지 않으면 검사는 알 수 없는 사정들을 증명서와 탄원서로 쌓았습니다. 고령으로 감각과 인지가 무뎌진 사람이 사고를 놓쳤을 개연성 — “도망친 사람”이 아니라 “몰랐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정을, 인정의 토대 위에서 다시 세웠습니다.
부인을 접었기 때문에 이 사정이 살았습니다. 끝까지 “몰랐다”로 다투면서 동시에 “몰랐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선처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는 무죄의 주장이고 하나는 정상의 사정이라, 두 자리는 같은 서면에 나란히 설 수 없습니다.
결과 — 기소유예
석 달쯤 뒤, 검찰은 기소유예로 사건을 끝냈습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하되 정상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검사의 처분입니다. 법정형이 징역 1년부터 시작하는 죄에서, 법정에 한 번도 서지 않고 수사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된 것입니다. 형의 선고가 아니므로 이른바 전과, 즉 범죄경력 기록으로 남지도 않습니다.
무죄가 아닙니다. 죄는 인정됐습니다. 다만 일흔 넘은 초범이 다시 법을 어길 위험보다, 사과와 배상이 끝난 사건을 법정까지 끌고 갈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검사로부터 받아낸 것입니다.
#2. 직접 겪은, 아예 법정에 가지 않는 길
그리고 제가 직접 뺑소니가 될 뻔한 장면을 넘어갔던 상황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사건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제가 직접 출근길에 겪은 일입니다. 창원지방법원은 꽤 오래된 법원인 편이고 근처는 주택가 이면도로가 많습니다. 종종 차가 밀리면 이면도로의 좌우에 차가 늘어선 골목길로 운전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 날은 어쩐지 묘하게 10분 정도 더 늦잠을 자 버리는 바람에 지각이 애매한 타이밍이었고 약간 급하게 운전을 했었습니다.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하필 이삿짐을 나르시던 분들이 있어서 꽤 길이 좁았습니다. 다만 조심히 지나가면 충분히 갈 법한 상황이고, 사람이 있어도 그 정도면 충분한 간격이라고 (이런 착각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하고 차를 몰고 지나쳤습니다만…
- 덜컹
‘여긴 방지턱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고 약 10미터쯤 전진하다가,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이건 뭐가 됐는지간에 확인은 해야 했고, 윈도우를 내리자마자 아까 그 작업자분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죠.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로 비상등을 켜고 일단 차에서 내렸습니다.
” 괜찮으신가요?!!! 제가 사고 낸거 같은데요? ”
” 아- 큰일은 아닌데- ”
그런데 그분이 이어서 덧붙인 말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 -_-; 남대문좀… 출근 중이었나요? ”
하필 그때 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어서, 와이셔츠 자락이 삐져나온 채로 내렸던 겁니다. 급한 대로 수습부터 했습니다.
대충 보니, 짐을 나르시던 분의 발을 제 차 바퀴가 밟고 지나간 상황인 것 같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변호사의 추천은 - 큰절부터 박고 보는 겁니다.
” 아!!!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병원부터 가시죠? 아니다, 일단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보험사부터 부를게요. ”
” 아닙니다. 그냥 살짝 밟힌 건데 현금으로 위로금만 하면 안되겠습니까? 일도 해야 하는데요 ”
” 저희 친척 어르신도! 차에 밟히셔서 골절 당했는데 치료 늦어서 큰일 치렀습니다!!!! 무조건 병원 가셔야 합니다. 오늘 일 쉬는거 보험사가 다 물어줍니다!!! 무조건 계세요. 지금 전화할게요!!! ”
보험사가 도착할 때까지 15분, 이야기하시고 병원으로 보내시고 제가 출근하는데 15분. 30분 정도가 걸렸고, 위로금은 보험사에서 충분히 지급되었고, 저는 약간의 보험료 몇만 원분의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위 사건과 같은 일은 완전히 미연에 방지했지요(개인적으로는 보험사나 경찰 등의 제3자의 개입이 사건 발생 직후에 있는 것이 좋다고 회상합니다).
사고 직후의 5분
결국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순간의 5분이 죄명을 정합니다.
정차하고, 사람이 다쳤는지 확인하고, 연락처를 건네는 것. 그 5분이면 이 사건은 애초에 형사사건이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합의와 보험의 영역에 머물렀을 사고였습니다.
이미 떠나셨다면 —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 다음 갈림길은 조사실에 있습니다. “몰랐다”는 말이 사실이더라도, 그 말은 혼자 서지 못하고 정황 전부와 함께 저울에 오릅니다. 무엇을 다투고 무엇을 인정할지, 어느 쪽에 설 때 어떤 문이 열리고 닫히는지를 조사 전에 펴놓고 정하셔야 합니다. 그 대차대조표를 만드는 것이 변호인의 일입니다.
같은 도로 위의 다른 상황에 대한 글도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기소유예라는 처분의 결 — 전과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남는지는 이 글에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