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 2026년 9월 15일 · 변호사 김영빈
후유장해진단서 — 안 아프면, 다 나은 걸까요?
통증이 줄어도 감각이상은 남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도 놓치기 쉬운 생활 속 변화를 확인하고, 진료기록·후유장해 평가·합의 범위에 반영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통증이 가신 뒤에도 남는 감각이상, 합의 전에 확인할 것들

자전거를 타다 차에 부딪혀 턱을 다친 A씨가 수술을 마치고 합의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물으니, 아프지는 않다고 합니다. 치료비 영수증을 꺼내며 이 정도면 끝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식사할 때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말이 나옵니다.
“입술에 뭐가 묻어도 잘 모르겠어요. 거울을 보고 닦을 때가 있습니다.”
통증은 줄었지만 감각은 돌아오지 않은 겁니다. A씨는 아프지 않으니 굳이 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에게도, 변호사에게도 먼저 꺼내지 않았습니다.
위 장면은 실제 업무에서 다룬 쟁점을 바탕으로 사고 경위와 대화를 새로 구성한 가상 사례입니다.

1. 아프지 않아도, 예전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감각이상은 저리거나 화끈거리는 느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만져도 느낌이 둔한 상태로 남기도 합니다. 당사자에게는 ‘병’보다 ‘조금 이상한 느낌’에 가깝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면 상담 자리에서조차 빠뜨릴 수 있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질문만으로는 이런 불편을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턱이나 입 주변을 다쳤거나 치료받은 뒤라면, 일상에서 달라진 점을 구체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 장면 | 진료 때 설명할 수 있는 변화 |
세수·면도·화장할 때 | 한쪽 입술이나 턱에 닿는 느낌이 반대쪽보다 둔합니다. |
밥을 먹고 난 뒤 | 입술에 음식물이 묻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
음식을 씹을 때 | 전보다 입술 안쪽이나 볼을 자주 깨뭅니다. |
가만히 있을 때 | 마취가 덜 풀린 듯하거나, 저리고 따끔거리는 느낌이 이어집니다. |
이런 변화의 원인은 진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모두 같은 신경 손상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감각이상이 있다고 곧바로 영구적인 장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생활에 남은 불편을 진료에서 빠뜨리지 않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2. 병원에서는 ‘언제,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부터
불편이 남아 있다면 치료받은 병원에 연락해 증상을 알리고 진료를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치과 치료 뒤 입술이나 턱의 감각이 달라졌다면 담당 치과에 알리고, 구강악안면외과 등 추가 진료가 필요한지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진료 전에는 세 가지만 짧게 적어 두면 됩니다. 어느 부위가 다른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생활에서 무엇이 불편한지. 늘 그런지 가끔 그런지, 나아지고 있는지도 함께 적으면 설명이 훨씬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 이런 증상이 있다면, 다음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치료받은 뒤부터 오른쪽 아랫입술 감각이 둔합니다. 통증은 거의 없지만, 밥을 먹고 입술에 뭐가 묻어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태인지, 더 진료받거나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랫입술이라는 부위, 치료 뒤라는 시점, 음식물이 묻어도 잘 모른다는 불편이 들어 있습니다. ‘좀 이상하다’는 말만 했을 때보다 의사가 증상을 파악하기 쉽습니다. 위 문장을 따라 증상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실제로 있었던 변화만 자기 말로 설명하면 됩니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는다면 기존 진료기록, 수술기록과 영상자료도 챙기는 편이 좋습니다. 변호사에게도 진단서 한 장만 가져오기보다 이런 자료와 증상 메모를 함께 전달하면, 사고나 치료 전후의 변화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후유장해진단서는 바로 떼면 될까요?
현재 어떤 증상이 있는지 진단받는 것과, 앞으로도 장해가 남는지 평가받는 것은 시점과 목적이 다릅니다. 감각이상 진단을 받았어도, 그것만으로 후유장해가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실제로 다룬 손해배상 업무에서도 생활 속 불편을 확인한 뒤 감각이상 진단서를 확보한 일이 있었습니다. 진단서에는 향후 경과관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혔습니다. 그 단계에서는 후유장해가 확정됐다고 주장하거나 금액을 정하지 않고, 추후 평가에 따라 청구할 수 있는 손해로 남겨 두었습니다.
후유장해진단서가 필요하다면, 담당 의사에게 회복 경과와 장해 평가가 가능한 시점을 묻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상태와 치료 경과에 따라 시점이 달라지므로 ‘사고 후 6개월이 지났으니 무조건 발급받으면 된다’고 정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 시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남아 있는 증상은 그때그때 진료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발급 목적도 미리 알려야 합니다. 개인보험의 장해보험금을 청구하려는 경우에는 보험회사에 필요한 서식과 적용 기준을 확인해 병원에 가져가면 됩니다.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경우라면, 변호사와 필요한 평가 항목을 먼저 정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보험에서 쓰는 장해율이 민사 손해배상 계산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해진단서는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상대방의 책임이나 배상액까지 한꺼번에 정해 주는 서류는 아닙니다. 진료기록과 함께 사고·치료와 증상의 관계, 남은 불편의 정도를 살펴야 합니다.

4. 합의부터 하고, 나중에 진단받으면 늦을 수 있습니다
증상이 남아 있는데 합의서에는 ‘향후 일체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면, 그 증상까지 이번 합의로 끝내는 것인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후유장해진단서를 나중에 받으면 그때 추가로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합의 후 다리 길이가 짧아진 장해를 진단받은 사건에서, 그 상태가 합의 전에 이미 생겨 있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뒤늦게 장해를 진단받았다는 사정만으로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63176 판결
나중에 확인된 손해가 언제나 새로 생긴 손해는 아닙니다.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중대한 후유증에 대해 추가 청구가 인정될 여지는 있지만, 처음부터 그 예외에 기대어 합의할 이유는 없습니다.
감각이상이 남아 있고 경과를 더 봐야 한다면, 상대방에게도 그 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입술과 턱의 감각이상이 남아 있어 추가 진료와 경과관찰이 필요합니다. 이 증상의 회복 여부와 남을 수 있는 손해를 확인한 뒤 최종 합의를 하겠습니다.”
치료비 등 일부만 먼저 합의하기로 한다면, 아직 평가하지 못한 감각이상과 그로 인한 손해를 합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양쪽이 합의서에 명확히 적어야 합니다. 혼자 ‘이 부분은 나중에 청구할 생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보다 앞서 필요한 일은, 당사자도 놓치고 있던 불편을 구체적으로 묻는 일입니다. 영수증에 적힌 돈만 계산하면 감각이상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손해는 빠질 수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는 어떤지, 세수할 때는 어떤지. 그렇게 확인한 불편이 진료기록에 담기고, 필요한 평가와 합의 내용에 반영되도록 하는 데까지 변호사의 일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