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절차 · 2026년 8월 19일 · 변호사 김영빈
구약식처분 — 그냥 내면 끝나는 거 아닌가요?
재판을 받은 적이 없는데 벌금이 정해져 옵니다. 구약식은 검사가 벌금으로 끝내 달라고 청구한 것이고, 그 청구를 받은 법원이 서류만 보고 발령한 것이 약식명령입니다. 그 종이를 받고 7일이 지나면 확정판결과 같아집니다. 실제 약식명령과 정식재판청구서를 개인정보를 가려 그대로 싣고, 변호인이 그 종이를 어느 순서로 보는지, 같은 종이를 받은 두 사건이 어디에서 갈렸는지를 적었습니다.
봉투를 뜯은 날부터 7일. 같은 종이를 받은 두 사람의 결과가 그 7일 안에서 갈렸습니다.
법정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판사를 본 적도 없고, 재판 날짜를 통지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편함에서 꺼낸 봉투 안에 벌금 얼마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며칠 전에 검찰에서 “구약식”이라는 말을 먼저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검사가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갈 것 없이 벌금으로 끝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한 것이 구약식이고, 그 청구를 받은 판사가 서류만 보고 벌금을 정해 보낸 것이 약식명령입니다. 순서가 그렇게 됩니다.
여기서 대부분 안도하십니다. 재판을 안 받게 됐구나, 벌금만 내면 되는구나. 반은 맞습니다. 법정에 설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식은 기소입니다. 법에도 “약식명령의 청구는 공소의 제기와 동시에”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검사가 죄가 된다고 판단해서 법원에 넘긴 것이고, 그 종이를 받고 7일이 지나면 그건 확정된 유죄 판결과 똑같은 것이 됩니다. 벌금을 내든 안 내든 상관없습니다. 법정에 가지 않았을 뿐, 재판은 이미 끝나 있습니다.
저는 이 종이를 자주 봅니다. 상담 오시는 분들이 사진으로 먼저 보내시기도 하고, 봉투째 들고 오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어디부터 어떤 순서로 보는지를 적어 두겠습니다. 순서에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내용보다 봉투를 먼저 봅니다
받으신 분들은 대개 벌금 액수부터 보십니다. 저는 봉투를 먼저 뒤집습니다. 송달 날짜가 거기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7일은 이 날짜에서 시작합니다. 법원이 명령을 낸 날도 아니고, 검찰에서 구약식 통지를 받은 날도 아니고, 벌금 고지서를 받은 날도 아닙니다. 그 봉투가 도착한 날입니다.
세는 방법도 정해져 있습니다. 송달받은 날은 세지 않습니다. 그다음 날이 1일째입니다. 월요일에 받으셨다면 화요일이 1일째이고, 그다음 주 월요일이 7일째입니다. 그리고 7일째가 토요일이나 공휴일이면 그다음 첫 평일까지는 갑니다. 늘려 주는 것은 거기까지고, 사정을 봐서 연장해 주는 일은 없습니다.
날짜를 먼저 보는 이유는, 남은 날에 따라 제가 드릴 말씀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닷새가 남았으면 기록을 떼어 보고 다툴 자리가 있는지 판단할 시간이 있습니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면 판단은 뒤로 미루고 청구서부터 냅니다. 그 청구서는 세 줄이면 되는데, 실물은 뒤에서 그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자주 놓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벌금 납부 고지서는 이 봉투에 같이 오지 않습니다. 법원은 명령문을 보내고, 납부 고지서는 검찰청에서 나중에 따로 보냅니다. 그래서 “돈 내라는 종이가 아직 안 왔으니 급한 건 아니구나” 하고 계시다가 7일을 넘기는 분들이 계십니다. 시계는 고지서가 아니라 법원 봉투에서 돌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은 벌금 액수가 아니라 그 아래 칸입니다
실제 약식명령입니다. 사건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전부 가렸습니다.

가운데에 「주형과 부수처분」이라는 칸이 있습니다. 벌금 얼마, 까지 읽고 덮으시는데 그 밑에 몇 줄이 더 붙어 있습니다.
노역장 유치. 벌금을 못 내면 하루에 얼마로 쳐서 그 일수만큼 노역장에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액수가 클수록 일수가 늘어납니다.
가납명령. 확정되기 전이라도 벌금 상당액을 미리 내라는 명령입니다. 이걸 보고 놀라시는 분이 많습니다. 아직 다툴 수 있는 단계인데 왜 벌써 내라고 하느냐는 것인데, 재산을 정리해 버리는 걸 막기 위한 것입니다. 미리 냈다고 해서 다툴 권리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납부를 승복으로 오해하시는 일이 실제로 있어서, 순서를 정해 두고 움직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수명령이나 수강명령. 죄명에 따라 몇십 시간짜리 교육이 함께 붙습니다.
제가 이 칸을 벌금 액수보다 먼저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상담에서 판단이 갈리는 지점이 대개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액수는 내면 없어지지만, 그 아래 붙은 것들은 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명에 따라서는 그 종이 한 장이 자격이나 면허, 취업에 걸립니다. 벌금 백만 원이 아까워서 다투는 분보다, 액수는 낼 수 있는데 그 죄명이 이름에 남는 게 문제여서 다투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판사 이름 밑에 아무도 안 읽는 두 줄이 있습니다
명령문 두 번째 장에 판사 이름이 있고, 그 밑에 참고사항이 몇 개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 판사 이름까지만 보고 덮으십니다.
그중 세 번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중요 참고)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유죄로 인정될 경우, 원래는 약식명령과 같거나 가벼운 벌금형만 선고할 수 있었으나, 관련 법 개정으로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어낸 문장이 아니라 법원이 명령문에 직접 넣어 둔 안내입니다. 아래 사진의 3번이 그 부분이고, 받으신 종이에도 똑같이 있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전에는 피고인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청구하고 보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돌았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법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형의 종류만 못 올립니다.
| 예전 | 지금 | |
|---|---|---|
| 벌금 → 징역 | 안 됨 | 안 됩니다. 이건 그대로입니다 |
| 벌금 100만 → 벌금 300만 | 안 됨 | 됩니다 |
그래서 “밑져야 본전”은 이제 틀린 말입니다. 벌금으로 나온 사건에 징역이 선고될 일은 없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법정에 서면 같은 자료를 판사만 바꿔서 다시 보는 셈이고, 그때는 액수가 올라갈 수 있는 쪽에 서게 됩니다.
이 두 줄을 읽고 나면 질문이 하나로 좁혀집니다. 법정에 가면 달라질 것이 있는가.
같은 종이를 받은 두 사람
여기서부터는 실제로 있었던 두 사건입니다. 사건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바꿨습니다.
한 분은 공사 현장에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서로 밀치고 잡았고, 양쪽 다 진단서를 냈습니다. 벌금 약식명령이 나왔고, 억울했습니다. 상대가 먼저 욕을 했고 먼저 손을 댄 것도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정식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 섰는데, 새로 드러난 것이 없었습니다. 서류에 있던 그대로였습니다. 상대방은 여전히 처벌을 원했고, 목격자의 말도 수사 단계와 같았습니다. 결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절차만 더 이어졌습니다. 시간과 비용이 들었고 얻은 건 없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경찰 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을 선임한 분이었습니다. 조사 전에 의견서를 냈고, 중간에 나온 불리한 결정에도 불복해 다퉜습니다. 검찰에도 의견서를 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그런데도 벌금 약식명령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교육 이수 시간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났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성질이 하나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종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상대방이 강경했습니다.
정식재판을 청구해서 문을 열어 두고, 그 사이에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 걸렸습니다. 결국 합의가 됐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법원에 전달됐습니다.
결과는 벌금이 줄어든 게 아니었습니다. 공소가 기각됐습니다. 유죄도 무죄도 아니라 재판 자체가 끝났고, 벌금도 이수명령도 남지 않았습니다.
두 사건의 청구서는 똑같이 생겼습니다. 차이는 청구서에 있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어 둔 그 기간에 무엇을 만들었느냐에 있었습니다.
그 청구서가 세 줄입니다
앞에서 미뤄 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날이 코앞일 때 먼저 하실 일.
7일을 놓치는 분들의 사유는 대개 같습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자료를 모으다가. 억울한 이유를 정리하다가. 그러다 날짜가 갑니다.
실제로 제출했던 정식재판청구서입니다. 표제와 사건 표시를 빼면 본문이 이게 전부입니다.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 ○○○은 2026. ○. ○. 약식명령 등본을 송달받았으나, 위 명령에 불복하므로 정식재판을 청구합니다. 청구이유는 추후 제출하겠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십시오. 이유는 나중에 냅니다.
7일 안에 해야 하는 건 논증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문이 닫히지 않게 해 두는 것입니다. 재판이 열리기까지는 몇 주, 사건에 따라 몇 달이 있습니다. 자료도 합의도 그 시간에 하는 겁니다. 뒤의 사건에서 몇 달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내는 곳은 약식명령을 낸 그 법원이고, 서면으로 냅니다. 양식은 법원 민원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알고 계셔야 합니다. 피고인은 이 청구권을 미리 포기할 수 없습니다. 법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누가 포기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요구 자체가 효력이 없습니다.
다투실지 아직 못 정하셨더라도, 기간이 임박했다면 청구부터 해 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청구는 나중에 취하할 수 있지만 지나간 7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열어 둔 문은 닫을 수 있고, 닫힌 문은 열 수 없습니다.
7일이 지나서 오시는 분들
가장 안타까운 상담이 이겁니다. 주소지에 살지 않아 종이가 다른 곳으로 갔고, 뒤늦게 알게 된 경우. 가족이 받아 두고 며칠 있다 전해 준 경우.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기간을 넘긴 경우에는 청구권을 회복해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달 자체를 알 수 없었던 사정이 있으면 여기에 해당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문턱이 낮지 않습니다. 몰라서, 바빠서, 늦게 알려줘서는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가는 것과, 닫힌 문을 다시 열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난이도가 다릅니다.
사진 한 장이면 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 종이는 재판을 안 받은 결과가 아니라 서류만 보고 이미 끝난 재판의 결과이고, 7일 뒤에는 판결이 됩니다. 그 7일 안에 판단할 것은 벌금을 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두 가지입니다.
서류만으로 결론이 났는데, 그 서류에 안 들어간 것이 있는가. 그리고 지금 다투면 바뀔 여지가 있는가, 아니면 바뀔 것을 지금부터 만들어야 하는가.
앞의 질문은 기록을 봐야 답이 나오고, 뒤의 질문은 죄명과 상대방에 따라 갈립니다. 두 번째 분의 사건에서 결론을 바꾼 건 법정에서의 말이 아니라 그 몇 달 동안 만든 것이었습니다.
받으신 종이를 찍어서 보내 주시면 됩니다. 봉투의 날짜, 사건번호와 죄명, 주형과 부수처분 칸. 그 세 군데로 다툴 자리가 있는 사건인지, 있다면 7일 안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늦은 시간이어도 괜찮습니다. 날짜가 오늘내일이면 그게 더 급합니다.
함께 보시면 좋은 글
- 나의 사건검색 - 한 줄 한 줄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 화면에서 ‘구약식’이라는 말을 처음 보셨다면
- 처벌불원서 양식 - 가장 짧은 서류가 가장 늦게 옵니다 — 뒤의 사건에서 결론을 바꾼 그 서류
- 반성문은 왜 피해자가 아니라 판사가 받을까 — 법정에 무엇을 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