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7월 27일 · 변호사 김영빈
처벌불원서 양식- 가장 짧은 서류가 가장 늦게 옵니다
성범죄 합의의 실물 — 합의서(처벌불원서) 표준 양식과 필수 3요소, '민형사상 일체' 여섯 글자가 민사까지 닫는 구조, 뛰는 합의금 호가 앞에서 감정이 아니라 역산으로 판단하는 기준, 형사공탁의 한계, 그리고 결심 후 선고 직전에 도착한 처벌불원서가 강제추행 사건에서 벌금 300만 원과 공개·고지·취업제한명령 전부 면제를 만든 기록.
성범죄 합의의 실물 — 세 줄짜리 종이 한 장에 붙는 값과, 그 값을 치르고도 못 받는 이유
선고를 앞둔 강제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심공판까지 끝나서, 서면으로 낼 수 있는 것은 다 낸 뒤였습니다. 기록에 더할 수 있는 서류는 이제 단 한 장 — 그런데 그 한 장이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사 단계부터 그 마지막 재판까지, 합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액수가 문제였던 적도 있고, 액수 이전의 문제였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 재판이 다 끝나고 선고 날짜만 남은 상태에서, 저는 공탁을 걸어 두고 마지막 시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받아낸 서류의 본문은, 세 줄이었습니다.
먼저, 그 세 줄의 실물부터.
처벌불원서 양식 — 이대로 쓰시면 됩니다
한 가지만 먼저 바로잡습니다. 실무에서는 처벌불원서와 합의서를 두 장 따로 만들지 않습니다. 합의서 한 장에 처벌불원 의사표시까지 담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가장 흔합니다. 그래서 재판부에 실제로 들어가는 실물은 대체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합 의 서 (처벌불원서)
사 건 : ○○지방법원 20○○고단○○○ 강제추행 (수사 중이면: ○○경찰서 사건 접수번호)
피고인(피의자) : ○ ○ ○
피 해 자 : ○ ○ ○
1.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합의금 ○○○만 원을 지급하고, 피해자는 이를 수령하였습니다.
2.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았으며,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
3. 피해자는 본 합의로써 위 사건에 관한 민형사상 일체의 문제를 종결하며, 향후 위 사건과 관련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포함한 어떠한 청구나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20○○. ○. ○.
피고인 ○ ○ ○ (인)
위 피해자 ○ ○ ○ (서명 또는 날인)
○○지방법원 형사○단독 귀중
첨부 : 피해자 신분증 사본 1부
이게 전부입니다. 본문 세 줄 — 합의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더 다투지 않겠다.
제목은 합의서라고 쓰든 처벌불원서라고 쓰든 상관없습니다. 법에 정해진 양식이 없는 서류라서 법원 민원실에도, 경찰서에도 공식 서식이 비치되어 있지 않고, 위 형태에서 표현이 조금 달라져도, A4 한 장에 손글씨로 써도 서류로서는 완전합니다. 법원이 보는 것은 제목이 아니라 안에 담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누가 누구를. 사건번호,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이름, 그리고 작성자가 이 사건의 피해자 본인이라는 것.
둘째, 합의가 되었다는 사실. 1번 조항입니다. 얼마를 지급하고 수령했는지까지 적어 두면 나중에 다툴 여지가 줄어듭니다.
셋째,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 2번 조항, 이 서류의 심장입니다.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한 줄을 받기 위해 나머지 전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3번 조항, ‘민형사상 일체’. 여섯 글자짜리 보험입니다. 형사사건의 합의는 사실 두 개의 사건을 동시에 끝내는 일입니다. 하나는 국가가 처벌하는 형사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민사사건입니다. 2번 조항까지는 형사 쪽 이야기이고, 민사 쪽은 — 문구로 닫지 않으면, 열려 있습니다. 합의금 2,000만 원을 지급하고 처벌불원 의사까지 받았는데 몇 달 뒤 손해배상청구 소장이 날아오는 일이, 3번 조항이 없으면 실제로 가능합니다. 합의서는 법적으로 화해계약이고, 이 여섯 글자가 그 계약의 범위를 민사까지 넓혀 못 박습니다.
여기에 작성일과 서명 또는 날인이 붙고, 실무에서는 작성자의 신분증 사본이나 인감증명서를 함께 붙입니다. 정말 피해자 본인이 쓴 것이 맞는지를 법원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출은 수사 중이면 담당 수사팀에, 재판 중이면 재판부에 합니다.
여기까지가 ‘양식’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서류를 실제로 받아 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 양식은 이 서류에서 제일 쉬운 부분입니다.
그 한 장을 받는 일이 왜 어려운가
성범죄 사건의 합의가 까다로운 이유는, 돈 이전에 구조에 있습니다.
우선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형사사건 기록에서 피해자의 연락처와 주소는 가려져 있습니다. 특히 성범죄는 더 철저합니다. 가해자 측이 피해자를 수소문해서 직접 찾아가는 순간, 그것은 합의 시도가 아니라 2차 가해가 됩니다. 실제로 접근 방식이 잘못되어 보복 우려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사건도 있습니다. 합의 의사 타진은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를 통해, 변호인이 합니다. 이게 유일하게 안전한 경로입니다.
다음으로, 상대는 합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2013년에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이 전부 폐지됐습니다.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해도,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형사절차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합의가 안 되어도 처벌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합의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고, 그 선택을 움직이는 것은 시간과 진정성과 — 솔직하게 말하면, 액수입니다.
그리고 감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수사 초기에 혐의를 부인하다가 재판에 와서 합의를 시도하면, 피해자 쪽에서는 “이제 와서”가 됩니다. 반대로 너무 서두르면 “돈으로 덮으려 한다”가 됩니다. 돈보다 사과가 먼저 건네져야 하는데, 변호인이 전할 수 있는 것은 서면과 말뿐이라, 그 진정성을 믿게 만드는 데까지가 일입니다. 저 사건에서 번번이 무산된 이유도 절반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요즘 합의금 — 숫자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액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성범죄 합의금은, 몇 년 전의 상식보다 분명히 한 단계 올라와 있습니다.
구조를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참고할 정보가 많아졌습니다. 어떤 사건에서 얼마에 합의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커뮤니티와 상담 후기로 쌓이고, 그 숫자가 다음 사건의 출발선이 됩니다. 피해자 측을 대리하는 법률 시장도 커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가해자가 절박하다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직장, 가족, 신상정보. 처벌불원서 한 장에 걸린 것이 많을수록, 그 종이의 가격은 올라갑니다.
그래서 상담실에서는 법정형과 무관해 보이는 호가를 자주 듣습니다. 벌금형이 예상되는 사건에 그 벌금의 몇 배가 넘는 액수가 제시되는 일은 이제 드물지 않습니다.
이 국면에서 당사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그 호가에 감정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건 갈취 아니냐”로 가는 순간 합의는 끝나고, 최악의 경우 그 말 자체가 2차 가해로 기록됩니다. 호가는 호가일 뿐입니다. 협상의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고, 실제로 저 사건의 합의금도 처음 제시된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판단 기준은 감정이 아니라 역산입니다. 이 합의가 실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 벌금 얼마가 얼마로 줄어드는지, 징역형 위험이 집행유예로 내려오는지, 공개·고지명령과 취업제한이 면제될 수 있는지, 그 결과가 직장과 가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값과 호가를 나란히 놓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계산은 사건마다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시세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고 말하는 곳이 있다면 오히려 의심하셔야 합니다.
합의가 끝내 안 될 때 — 공탁이라는 차선
저 사건은 ‘결심공판’까지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고를 앞두고 형사공탁을 했습니다.
공탁은 합의금에 해당하는 돈을 법원에 맡겨 두는 제도입니다. 2022년 말부터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되어,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를 몰라도 사건번호만으로 공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거나 합의가 거절된 사건에서, 피해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수단입니다.
다만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공탁은 합의의 대체물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고 엄벌탄원서를 내는 사건에서, 법원은 일방적인 공탁에 큰 무게를 주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돈만 맡겨 놓은 것을 ‘피해 회복’으로 쳐 주지 않는 방향으로 실무가 정리되어 왔습니다. 공탁은 합의로 가는 길이 끊겼을 때의 차선이고, 공탁을 걸어 둔 뒤에도 합의 시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 사건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형사상 합의’만이라도 — 절반의 의미
민형사상 일체 합의가 최선이지만, 피해자가 3번 조항은 못 써 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사상 청구권은 남겨 두겠다는 것 — 지금 제시된 돈이 손해에 못 미친다고 판단할 때, 민사는 민사대로 가겠다는 뜻입니다.
이때 가해자 측 선택지는 두 개입니다. 민형사 일체가 될 때까지 버티거나, 형사상 합의만이라도 받아들이거나.
저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후자를 권합니다. 이유는 시간입니다. 형사재판의 선고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선고 전에 재판부에 들어간 처벌불원서와 선고 후에 들어온 처벌불원서는 완전히 다른 서류입니다. 전자는 판결문의 양형이유에 적히고, 후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민사는 나중에 다퉈 볼 수라도 있지만, 형사 선고는 한 번 나면 그걸로 확정을 향해 갑니다. 절반의 합의라도 제때 이루어지는 것이, 완전한 합의가 늦는 것보다 낫습니다.
물론 이 경우 지급하는 돈의 명목을 서면에 정확히 남겨야 합니다. 나중에 민사에서 이 돈이 어떻게 평가될지가 그 문구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절반짜리 합의일수록, 문서는 더 정교해야 합니다.
세 줄이 도착한 날
저 사건의 처벌불원서는 형사공탁까지 마쳐둔 상태에서도 진행되어서, 결국 ‘선고 직전’에 도착했습니다. 합의금은 2,000만 원. 벌금형이 예상 범위이던 강제추행 사건 하나에 붙은 값으로는 무거운 액수였고, 의뢰인은 오래 고민한 끝에 그 값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선고 결과는 벌금 300만 원이었습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이 붙었고 — 신상정보 공개·고지명령과 취업제한명령은 전부 면제됐습니다. 판결문의 양형이유에는 대략 이런 취지의 문장이 적혔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여 원만히 합의하였고, 피해자는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 결과를 합의 하나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초범이었고,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일관됐고, 유형력의 정도에 관한 변론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도 — 그 판결문에서 가장 무거운 문장이 무엇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 한 줄이었다고 답하겠습니다. 2,000만 원이 산 것은 벌금 몇백만 원의 감경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신상, 유지된 직장, 끝난 사건.
마지막으로 — 탄원서와 헷갈리지 않으셔야 합니다
처벌불원서는 피해자만 쓸 수 있는 서류입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가 선처를 호소하는 서류는 탄원서이고, 완전히 다른 무게로 취급됩니다. 탄원서 열 장이 처벌불원서 한 장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반대 방향의 서류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강한 처벌을 원한다는 엄벌탄원서 — 합의가 어긋난 사건의 재판부 책상에는 대체로 이쪽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하나만 가져가신다면, 이것이면 됩니다. 처벌불원서는 다운로드받는 서류가 아니라 도착하는 서류입니다. 양식은 이 글 첫머리에 다 드렸지만, 그 종이가 재판부에 도착하게 만드는 과정은 사건마다 다르게 어렵습니다. 그 과정을 혼자 하려다 사건을 키우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접촉 경로부터 문구 하나까지, 처음부터 변호인과 함께 설계하시기를 권합니다.
가장 짧은 서류가, 대체로 가장 늦게 옵니다. 그래도 선고 전에 도착하면 됩니다.
※ 본문의 사건은 실제 수행 사건을 바탕으로,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사실관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