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6월 21일 · 변호사 김영빈

반성문은 왜 피해자가 아니라 판사가 받을까

'반성'과 '사과'는 다른 말입니다. 반성은 미래의 약속이라 판사가, 사과는 과거의 청산이라 피해자가 받습니다. 반성문이 한국에만 있는 미개한 짓이라는 오해를 형사변호사의 시각으로 짚었습니다.

형사 법정에서 피고인이 반성문을 내는 장면을 두고, 적지 않은 분들이 비슷한 냉소를 보냅니다. 커뮤니티를 보면 그런 식의 반응을 쉽게 볼 수 있죠.

반성을 왜 판사한테 하나. 잘못은 피해자한테 해 놓고. 게다가 판사한테 반성문 써서 형 깎는 건 한국에만 있는 미개한 짓이다. 외국은 피해자가 받아서 찢어버린다더라.

형사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조금 짚어야 할 말입니다. “왜 판사가 반성문을 받느냐”는 질문은 좋습니다. 다만 거기 딸려 오는 대답들은 방향이 거의 다 거꾸로 잡혀 있습니다.

결론의 한 조각만 미리 꺼내 두겠습니다. 반성문은 한국 형사재판에서 가장 가벼운 패에 속합니다. 진짜 무거운 것은 따로 있고, 그것은 판사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갑니다. 종이 한 장이 어디로 가고 왜 그쪽으로 가는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반성’과 ‘사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오해의 거의 전부가 이 두 단어를 한 덩어리로 뭉개는 데서 출발합니다.

반성(反省)은 ‘돌이켜(反) 살핀다(省)‘는 뜻입니다. 향하는 곳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반성에는 엄밀히 말해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건네는 물건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과(謝過)는 다릅니다. 글자 그대로 ‘내 잘못(過)을 전한다(謝)‘는 말이라, 전할 상대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잘못으로 마음을 다치게 한 사람, 곧 피해자 말입니다.

이 구분만 쥐면 “외국은 피해자가 반성문을 받는다”는 말이 왜 어딘가 어긋나게 들리는지 보입니다.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건 사과지 반성이 아닙니다. 반성은 안으로, 사과는 밖으로. 방향이 반대입니다.

말을 정확하게 알면 원칙적으로 오해가 없겠지만, 반지성주의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그게 쉽지는 않겠지요. 오히려 ‘왜 말을 어렵게 만드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분이 있는데, ‘정확한’ 단어를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진짜 병신 취급 받는 곳이 법조계입니다 – 심지어 병신 취급이 문제가 아니라 승패가 갈리죠 – 평생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 본 일이 없는 영역에서 살아오신 분들은 아무래도 좋을 일이겠지만.

그래서 반성은 판사가, 사과는 피해자가 받습니다

한편, 형벌은 과거에 대한 응보만 보지 않고, 이 사람이 앞으로 또 그럴 것인가라는 미래도 함께 봅니다. 반성은 바로 이 미래에 대한 신호입니다.

그런데 반성은 본래 내적인 일, 받는 이가 없는 자기 성찰이라고 했습니다. 그 내적인 것이 왜 굳이 바깥의 제3자인 판사에게 제출될까요. 판사가 그저 제3자가 아니라, 형이라는 결정을 주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 — 이 사람이 앞으로 또 그럴 것인가 — 은 결국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답할 수 있는 물음입니다. 형을 정하는 사람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내면입니다. 그러니 내적인 반성이 판사 앞에 놓이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결정을 쥔 사람에게 그가 보아야 할 것을 펼쳐 보이는 일입니다. 인간의 내면을 ‘아무것도 없이’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은 현재까지 없으니까, 반성문이라는 도구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죠(사고 추적 MRI나 CT 같은 게 등장하는 SF적인 상황이 오면 달라질 여지가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이미 끼친 피해, 곧 과거의 빚은 누구에게 갚아야 할까요. 판사가 아닙니다.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정작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진짜 무거운 패는 피해자에게 갑니다

한국 형사재판에서 가장 무거운 양형 요소는 반성문이 아니라 피해자의 용서와 합의입니다.

판사에게 낸 반성문 백 장보다, 피해자가 직접 써 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 한 장이 훨씬 무겁습니다. 폭행이나 명예훼손처럼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라 불리는 것들은 피해자와 합의가 되면 재판이 아예 공소기각으로 끝납니다. 유무죄를 따지기도 전에, 처벌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반성은 말로 하는 약속이라 누구나 입에 담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반성문을 대신 써 주는 시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법원도 반성문 한 장을 그리 쉽게 믿지 않습니다. 합의는 다릅니다. 실제로 피해자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손해를 배상해야 비로소 서면 한 장이 나옵니다. 돈과 자존심이 실제로 깎여 나간, 꾸며 낼 수 없는 흔적입니다. ‘대신 써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반성문이 우습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합의가 왜 더 무거운지를 거꾸로 보여 줍니다.

물론 실제로 법원에 내는 반성문에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함께 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그 반성문은 말 그대로 피해자에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그 종이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를 보자는 것입니다. 한국 사법은 이미 ‘피해자에게 가는 것’을 ‘판사에게 가는 반성’보다 윗자리에 두고 있습니다.

”반성문은 한국에만 있다”는 말에 대하여

그런데 바깥을 보면 오히려 반대입니다.

가까운 일본은 반성문(反省文)과 시담(示談, 합의)을 양형에서 한국 못지않게 따집니다. 미국은 한술 더 뜹니다. 피고인이 자기 책임을 인정하면(acceptance of responsibility) 연방 양형기준이 형량 등급을 두세 단계까지 깎아 줍니다. 선고 직전 판사 앞에서 직접 선처를 구하는 절차(allocution)도 법으로 보장된 권리고요. 독일과 영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독일은 범행 후의 태도와 피해 회복 노력을 정식 감경 사유로 두고 있고(형법 제46조), 영국의 양형 지침은 뉘우침(remorse)을 분명한 감경 요소로 명시합니다.

오히려 한국이 판사 재량에 맡겨 둔 무른 축에 가깝고, 서구는 그것을 더 깐깐하게, 숫자로 제도화해 두었습니다. 한국에만 있다고 비웃는 바로 그 행위를, 그 비웃음이 우러러보는 ‘외국’이 행정 양식으로 더 정밀하게 다듬어 둔 셈입니다.

”외국은 피해자가 받아 찢는다”는 장면은 어디서 왔을까

외국에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오가는 것은 사과지 판사에게 내는 반성문이 아닙니다.

또 서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피해자 의견진술(Victim Impact Statement)‘은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가해자가 무엇을 건네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법원을 향해 자신이 입은 피해를 직접 말하는 절차입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한국에도 똑같이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94조의2). 피해자가 법정에서 목소리를 낼 길은 우리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반성문을 피해자가 받는다”를 정식 절차로 둔 곳은 없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인상을 선진국의 제도인 양 착각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 ‘외국’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 한국을 낮춰 보기 위해 그려진 가상의 거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성과 사과를 제자리에 두면

반성은 “앞으로 법을 지키겠다”는 미래를 향한 약속이고, 그래서 형을 정하는 판사가 받습니다. 사과와 배상은 “이미 끼친 해를 갚겠다”는 과거에 대한 청산이고, 그래서 피해자가 받습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지 못하고, 사실 둘 다 필요합니다.

그러니 “반성을 왜 판사한테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자면 — 반성은 원래 판사가 받는 것이 맞습니다. 피해자가 받아야 할 것은 반성이 아니라 사과이고요. 둘은 받는 사람도, 향하는 시간도 다른 별개의 것입니다.

반성문을 쓰는 피고인을 비웃기는 쉽습니다. 다만 그 종이 한 장이 어디로 가고 왜 가는지를 알고 나면, 그것이 미개한 구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형사 절차가 한자리에서 다루는 장면이라는 게 보입니다. 비웃음은 빠르고, 들여다보는 일은 늘 그보다 한 박자 느립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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