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 2026년 8월 11일 · 변호사 김영빈

공상처리 - 위험한 것은 기록 없는 공상입니다

회사가 산재 대신 제안하는 공상처리, 받아도 되는 조건과 무너지는 순서를 정리했습니다. 서명 전에 세 줄만 남겨 두시면 몇 달 뒤 몸이 말을 바꿔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험은 기록이 없을 때 시작됩니다

일하다 다쳤는데, 회사가 산재 대신 이런 제안을 합니다. “치료비는 회사가 다 댈 테니까, 산재는 하지 말자.” 현장에서 공상, 공상처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제안을 받아 든 분들의 걱정은 대개 둘로 모입니다. 받아도 되는 건가. 받고 나면 나중에 불리해지는 건 아닌가.

답부터 드리면, 공상에 응했다고 여러분이 처벌받는 일은 없고, 받는 쪽이 나은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위험한 것은 공상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 기록 없이 하는 공상입니다.

공상이 잘못된 다음의 소송을 다뤄 본 변호사가, 서명 전에 남겨 두실 세 줄을 적었습니다.

공상처리라는 말은 법에 없습니다

공상처리는 법령 어디에도 없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산재보험에 알리지 않은 채 회사가 치료비와 보상을 직접 해결하는 사적인 합의 — 그게 전부입니다. 정해진 양식도, 정해진 금액도, 지켜 주는 기관도 없습니다.

회사가 이 방식을 원하는 데에는 계산이 있습니다. 사흘 이상 쉬어야 하는 재해가 나면 회사는 한 달 안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정부에 내야 하고, 그 기록은 보험료와 입찰, 감독기관의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재해를 서류에 남기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 보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은폐로 판정되면 형사처벌까지 있습니다만 — 전부 회사가 지는 부담입니다. 산재 신청은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라서, 신청하지 않기로 한 근로자를 벌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공상 제안이 꼭 나쁜 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회사가 배려하는 면도 분명히 있겠지요. 다만 그 제안은 배려와 함께, 회사의 계산도 분명히 있다는 것 — 거기까지는 알고 마주 앉으셔야 대등한 이야기가 됩니다.

받아도 되는 공상이 있습니다

세 가지가 갖춰지면 공상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1. 상처의 끝이 보일 것 — 며칠 치료로 복귀할 것이 분명한 부상일 것.
  2. 회사가 주는 것이 산재보다 실제로 많을 것 — 치료비 전액에, 쉬는 날의 임금도 깎지 않고 전부 쳐 줄 것. 산재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라서, 여기까지 받으면 계산상 공상이 나을 수 있습니다.
  3. 기록을 남겨 둘 것.

문제는, 상처의 끝이 보이는지를 오늘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몸은 소급해서 나빠집니다. 허리와 무릎과 머리는 몇 달 뒤에 말을 바꾸고, 골절은 붙고 난 다음이 시작인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가벼워 보이는 사고가 정말 가벼운 사고였는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확정됩니다.

그래서 공상을 받을지 말지의 실질은 “가벼운 사고인가”가 아닙니다. **“나중에 마음을 바꿀 수 있게 해 두었는가”**입니다.

공상이 무너지는 순서

공상이 잘못되는 사건들은 대체로 같은 순서를 밟습니다.

  1. 치료가 길어집니다. 합의금은 정해진 돈이고 산재 요양은 나을 때까지 이어지는 제도라서, 치료가 예상을 넘는 순간 공상 쪽 돈이 먼저 바닥납니다. 회사의 호의도 보통 여기까지입니다.
  2. 몸에 장해가 남습니다. 공상에는 장해급여가 없습니다. 공단이 주는 돈과 주지 않는 돈의 구조는 산재 휴업급여 - 공단이 주는 돈과 못 주는 돈에, 장해가 남았을 때 법원이 하는 전혀 다른 계산은 산재 장해등급 - 법원은 등급을 쓰지 않습니다에 적어 두었습니다.
  3. 사고의 흔적이 없습니다. 가장 아픈 단계입니다. 그제야 산재를 신청하려고 보면, 회사에 낸 보고가 없고, 진료기록에는 다른 경위가 적혀 있고, CCTV는 지워졌고, 옆에 있던 동료는 회사 눈치를 봅니다. 산재는 “일하다 다쳤다”는 사실을 다친 사람이 증명하는 제도인데, 기록 없는 공상은 그 증명의 재료를 처음부터 말려 버립니다.

”집에서 다쳤다고 해 주세요”라는 부탁

공상 중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하나 있습니다. 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처리하면서, 다친 경위를 바꿔 말하는 것입니다.

치료비 전액을 회사 돈으로 내자니 부담이 크고, 건강보험을 끼우자니 “일하다 다쳤다”고 적힌 진료기록이 걸리니, 경위를 바꿔 달라는 부탁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생긴 부상은 건강보험이 부담할 몫이 아니라고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면 건강보험공단은 부담했던 치료비를 도로 걷어 가고, 그 서류에 “일하다 다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으로 남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다친 본인입니다.

더 아픈 것은 그다음입니다. 몇 달 뒤 산재를 신청하거나 소송을 하게 되었을 때, “집에서 넘어졌다”고 적힌 자기 진료기록이 자기 앞을 막아섭니다. 스스로 만든 반대 증거만큼 뒤집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선은 돈을 누가 내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기록을 거짓으로 만드느냐에 있습니다. 회사가 정말 제 돈으로 치료비를 다 낸다면 이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서명 전에 남길 세 줄

공상을 받기로 마음을 정하셨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세 개만 글자로 남겨 두십시오.

  1. 회사에 문자 한 통 — “오늘 오전 ○○ 작업 중에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다녀오겠습니다.”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날짜와 함께 남습니다. 답장이 없어도 보낸 기록으로 충분합니다.
  2. 진료실에서 한 문장 — “일하다 다쳤습니다.” 치료비를 누가 내든, 첫 진료기록의 경위란만은 사실대로 남기십시오. 이 한 줄을 대신해 줄 서류는 나중에 없습니다.
  3. 종이와 돈의 흔적 — 합의서는 사진 한 장 찍어 두시고, 돈은 되도록 계좌로 받으십시오.

합의서에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어도 겁내실 것 없습니다. 산재보험 급여를 받을 권리는 법이 근로자 본인에게 직접 준 것이라, 회사와 주고받은 종이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종이가 나중에 받은 돈을 정산하는 기준은 되기 때문에, 그래서 사진이 필요합니다.

이 세 줄을 남기는 데 오 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 줄이 있으면, 몇 달 뒤 몸이 말을 바꿔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공상으로 지나갔다면

서명을 했어도, 몇 달이 지났어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는 3년, 장해급여는 5년 — 그 안이라면 지금이라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절차는 산재 처리방법 -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적습니다에 시간 순서대로 적어 두었습니다.

다만 두 가지가 따라옵니다. 하나는 증명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다 다쳤다”를 보여줄 재료가 마릅니다. 회사에 보낸 문자, 사실대로 적힌 진료기록, 합의서 사진 — 이 세 줄이 있다면 절반은 된 것이고, 없더라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동료의 기억, 결근이 찍힌 급여명세, 회사가 치료비를 보내 준 이체 기록 — 회사가 치료비를 댔다는 사실 자체가 사고를 방증합니다. 다만 이 재구성은 혼자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산입니다. 회사에서 받은 돈이 치료비였는지, 임금이었는지, 위로금이었는지에 따라 공단 급여와의 셈이 달라지고, 합의서의 문구 하나가 그 결과를 바꿉니다.

공상처리를 대리해 달라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시는 분은 없습니다. 이것은 애초에 변호사의 일이 아닙니다. 변호사가 이 단어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그다음 — 공상으로 덮어 둔 사고가 몇 달 뒤 산재 신청이 되고 소송이 되어 돌아왔을 때입니다. 저는 공상이 깔린 채로 시작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봤고, 거기서 배운 것이 이 글의 전부입니다. 그 다툼의 승패는 법정의 변론이 아니라, 사고 당일에 남았거나 남지 않은 문자 한 통, 진료기록 한 줄에 걸려 있었습니다.

공상은 죄가 아닙니다. 기록 없는 공상이 위험할 뿐입니다. 서명은 하시더라도, 세 줄은 남기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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