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9월 15일 · 변호사 김영빈
비동의간음죄, 저는 반대합니다
동의 부재를 포괄적인 처벌 기준으로 삼는 데 반대합니다. 고의의 증명, 과실범 도입과 수사 비용을 둘러싼 논의를 비판합니다.
상대방의 머릿속까지 책임질 의무는 없습니다

최근 비동의간음죄 신설을 두고, 또 다시 해묵은 논쟁이 번지는 것 처럼 보입니다. 정말 신설된다면, 일단 변호사 시장은 좀 더 먹거리가 많아지겠지만, 그런 논의는 제쳐 두고.
아직 찬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다면,
저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에
전면 반대합니다.
폭행·협박이나 항거불능 상태의 이용 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성관계까지, 동의의 부재를 이유로 형사처벌하자는 발상에 반대합니다. 그걸 ‘처벌의 공백을 메운다’고 부르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을 먼저 정해 놓으면, 처벌을 제한하는 모든 요건은 법의 결함이 됩니다.
저는 그 결론부터 거부합니다.
1. 처벌하지 않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강간죄는 폭행·협박을, 준강간죄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의 이용을 요구합니다. 형법 제297조, 제299조
그런 요건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사례'(그걸 '처벌해야 한다' 라는 것을 누가 동의했는지는 참으로 모호합니다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 범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처벌할 수 없다’는 말에서 ‘그러니 처벌할 수 있게 만들자’로 넘어가는 순간, 그 행위를 왜 형벌로 다스려야 하는지는 사라집니다.
처벌 요건은 사람을 벌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그 밖의 행위를 처벌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이기도 합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법조 일반에 강간죄 등으로 존중된다고 해서, 동의 없는 성관계 전부를 형사처벌하는 데까지 국민들이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구체적인 침해 행위와 상태를 요구하는 요건을 걷어내고, 동의 부재를 포괄적인 처벌 기준으로 삼는 데 반대합니다.
민법적 손해배상을 넘어서는 형법적 처벌을 도입하는 데에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굳이 덧붙일 필요까지 있을까 싶습니다만, 동의 부재라는 기준으로 처벌 범위를 넓히면, 국가가 사적인 말과 행동을 캐묻고 해석할 범위도 함께 넓어집니다.
저는 그 권한을 더 주는 데 반대합니다.
“동의는 중요하다”는 말 한마디로, 그 때문에 국민이 감당할 자유의 제한과 수사비용까지 퉁치겠다는 겁니까. 남의 자유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2. 그날의 고의를 나중에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결론까지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상대방의 인식은
서로 다른 사실입니다.
고의범으로 처벌하려면 국가가 둘 다 증명해야 합니다.
고의 역시 내심이지만, 행위자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했는지를 묻습니다. 그 의사가 어떤 행위로 드러났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상대방의 동의 부재와 행위자의 인식까지 한꺼번에 읽어낼 수는 없습니다.
성인 2명이 함께 모텔에 갔고 성관계를 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폭행·협박은 없었고, 술에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후 한쪽은 동의한 적 없다고 하고, 다른 쪽은 서로 원한 일이라고 합니다.
모텔에 들어갔으면 보통 동의 아닌가요-_-? '일반적인 법감정'이란 말은 참 주장하는 사람마다 제멋대로 편리하게 쓰는 도구라서, 이걸 동의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심지어 모텔에 들어갔지만, 뭔가 분위기가 틀어져서, 음료수가 맛이 없어서, 상대의 속옷이 맘에 안들어서, 중간부터 '동의'하지는 않았는데...? 억지...로? 하게 되었지만? 폭행이나 협박은 없었...는데? 그게 '비동의' 인가요-_-?
...그래서 언제 마음이 바뀌었고, 상대방은 무엇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겁니까. 그 질문에 답도 없이 ‘비동의’라는 말만 반복하면 형사책임이 생깁니까?
그러면 결국 - 모텔에 들어간 CCTV만으로 동의를 확정할 수 없으니, 방 안에서 오간 말과 행동을 조사하게 됩니다. 거절한다는 의사가 어떻게 드러났는지, 상대방은 무엇을 보고 듣고도 계속했는지. 두 사람의 설명이 다르면 전후의 메시지와 행동까지 대조합니다.
지금 성범죄 사건에서 하는 수사입니다. 죄명이 늘었다고 증거가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이 나중에 “동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명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속마음을 인정해 놓고 다른 사람의 고의까지 덤으로 인정하겠다는 겁니까. 판결문을 아무리 잘 써도, 증명해야 할 사실 두 개가 하나로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드러난 의사는 제쳐 두고 속마음의 동의 여부를 넓게 심사하기 시작하면, 행위자는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사정까지 해명해야 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갖다버리라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불령선인^^? 왜정 시절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일까요?
어떤 말과 행동을 제시해도 '진짜 마음은 달랐다'는 답이 돌아온다면, 그다음에는 뭘 내놓아야 합니까.
상대방에게 이런 악마의 증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성관계를 범죄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형법에는 명징한 표상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했고 어떤 상태를 이용했기에 처벌하는지, 행위 당시 밖으로 드러난 사실을 기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누구의 '해석'으로 변동된다면 '명징'하다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동의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만 답하고, 상대방에게 왜 그 결과까지 책임지우는지는 건너뛰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동의 부재라는 포괄적인 판단이 구체적인 침해 요건을 대신하게 하는 데 반대합니다.
상대방 머릿속의 일기장까지 읽을 의무는 없습니다.
가능한지도 매우 의심스럽고요.

3. 증명이 어려우니, 더 처벌하자고요
여기서 더 나아가, 동의를 확인할 주의의무를 두고 과실까지 처벌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박지현은 2020년 논문 초록에서 동의 확인의 주의의무 위반을 처벌하고, 단순히 동의 여부를 몰랐다는 주장에 의한 면책을 막기 위해 과실범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그 실익으로 다음을 제시합니다.
“…법원이 비동의에 관한 고의 인정에서 느끼는 부담의 크기를 완화시켜준다는 실익이 있다.”
고의를 증명하기 어려운 자리에, 동의를 더 확인했어야 한다는 과실책임까지 추가하자는 겁니다.
법원이 느끼는 부담을 덜어주려고 국민에게 형사책임을 더 얹습니까? 그 부담은 누가 대신 짊어져도 되는 물건이 아닙니다.
과실책임을 추가하면 질문은
“동의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까”에서
“왜 더 확인하지 않았습니까”로 바뀝니다.
상대방에게 얼마나 물어봤어야 하는지, 어떤 반응을 보고도 다시 확인했어야 하는지까지 수사관과 판사가 평가하게 됩니다. 저는 성인들의 성적 소통에 이런 형사책임을 덧붙이는 일에 반대합니다.

역시나 놀라운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너는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있어! 국민의 정상적인 동의 수준을 나는 알 수 있어! 국민들의 정상적인 체위도, 발언도, 생각도 ^^ 모두 내가 알 수 있어!"
라는 거잖아요? 우리는 사회적으로 이런 걸 독재 혹은 미친놈으로 부르기로 합의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니까 확인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
놀라운 발상입니다. "지금부터 너와 섹스할거니까, 동의해줘 ^^" 한 번도 연애해본 적 없는 아다의 망상같군요.
이걸 증명하는 것도 웃깁니다. 섹스-바디캠이나 섹스-녹음기가 없다면 언제나 범죄자가 될 위협에 노출되겠는데요 ^^
확인했다는 사실을 다투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부터는 서로 의사를 나눴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말로 물었고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그 말을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까지 설명해야 합니다.
동의를 확인하는 일과
수사실에서 그 확인을 증명하는 일은 다릅니다.
연애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점점 증거 보존 능력이 되는 셈입니다.
연애용 바디캠 시장이 새롭게 열릴 가능성도 있겠군요 ^^, 블랙박스마냥, AI안경의 수요가 폭증할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제안에도 반대합니다.
국가가 증명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국민에게 형사책임을 더 지울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과실까지 처벌할 독립적인 이유가 있어야지, 고의 입증의 어려움을 줄이는 것이 실익으로 등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듯한 조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런 법을 만들어도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1933년 나치의 수권법은 정부가 의회의 동의 없이,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까지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국가권력을 제한해야 할 법의 형식으로, 국가권력의 제한을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제가 수권법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법기술자들의 솜씨 때문입니다.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요건은 ‘공백’이라고 부르고, 처벌하기 편한 조문을 만드는 일에는 머리가 참 잘 돌아갑니다.
법기술자들의 이런 개지랄을,
저는 법학의 진보라고 불러줄 생각이 없습니다.
4. 무혐의 통지서에는 변호사비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설명도 나옵니다.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무슨 증거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런 논의에서 보통 뭉뚱그려 설명됩니다.).
그러나 그 원칙이 피의자의 변호사비를 내주지는 않습니다. 조사받으러 일을 비우고, 사적인 대화를 제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수사를 감당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합의금 요구까지 받으면 결백과 별개로 버틸 비용을 계산하게 됩니다.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고
이미 쓴 돈과 노출된 사생활까지 되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고요. 사람들은 그 결론이 나올 때까지 인생을 정지시켜 놓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수사받을 위험을 피하려고, 그전에 선택을 바꿉니다. 그 비용까지 국민에게 떠넘겨 놓고 처벌만 안 하면 됐다는 겁니까?
얼마 지나지 않은 정권에서 '수사가 시작되는 것 만으로 불이익'을 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한국 사회의 모습이 변했는지 기억이 안나는 걸까요?
관련 보도: 문재인 대통령의 불법촬영 수사 시 직장·소속기관 통보 지시 — KTV, 2018. 7. 4.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의료진은 치료를 계속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있던 환자를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습니다. 환자는 사망했고, 대법원은 퇴원을 결정·지시한 의사들의 살인방조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사망 가능성을 설명하고 보호자에게 귀가서약서를 받았지만 형사책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995 판결
2023년 국내 다기관 연구도 연구 배경에서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의료진이 임종기 치료 결정을 보수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환자와 가족 앞에, “내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계산이 끼어듭니다. 퇴원시켰다가 감옥에 갈지 모르는데 누가 선뜻 내보내겠습니까. 판결문에 ‘집에서 죽지 마라’는 말이 없어도, 현장에는 집으로 보내지 않는 쪽을 택하게 하는 압력이 생깁니다.
형법은 그렇게 판결문 밖의 선택까지 바꿉니다.
성관계에 관한 형사책임을 넓히면, 사람들은 상대방과 의사를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실을 나중에 어떻게 증명할지까지 계산하게 됩니다. 동의를 확인했다고 생각해도 기록이 부족하면 곤란해질까 봐 관계 자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사생활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법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반대에 “동의부터 배우라”고 답한다면, 형벌을 주장하면서 성교육으로 답을 대신하는 셈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하는 반대가 아닙니다. 그 말을 근거로 국가가 어디까지 처벌해도 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좋은 성관계를 권하는 말과
사람을 감옥에 보낼 근거조차 구별하지 못하면서,
남의 교육 수준을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