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6월 29일 · 변호사 김영빈
사기에 가담한 걸까요, 당한 걸까요?
투자사기 ‘말단’에서 붙잡힌 사람들 — 코인·리딩방·다단계, 그 끝에 선 ‘센터장’ 한 사람의 자리. 본인도 피해자일 때, 방조의 고의를 가르는 네 가지와 무죄·집행유예를 함께 여는 증명.
투자사기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면, 맨 처음 붙잡히는 사람은 정작 그 사기를 설계한 사람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윗선은 멀리 있고, 수사기관 앞에 먼저 앉는 건 ‘센터장’, ‘지사장’, ‘모집책’으로 불린 말단의 누군가입니다.
저 멀리 있는 진짜 악인보다, 눈 앞에 있는 소위 ‘잡기 쉬운’ 사람을 상대로 잡는 게 과연 정의 구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논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피해자의 눈으로 볼 때는 다 같은 나쁜 놈이고, 내 돈을 받아간 사람은 당장 그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장면이 보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에게 권하기 전에 자기 돈을, 그것도 대출까지 받아 제일 많이 넣었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사람. 그가 지금 ‘공범’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가담한 걸까요, 당한 걸까요. 아니면 그 둘 다에 어느 정도 해당하는 걸까요? 현실은 절대 깔끔한 선인과 악인이 갈리지 않고, 이 글은 그 갈림길에 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했다’와 ‘알고 했다’는 다릅니다
수사기관이 보는 그림은 단순합니다. 이 사람이 투자자를 모았고, 앱 사용법을 알려줬고, 설명회 자리에 있었다 — 그러니 가담했다. 행위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기 — 그것도 방조에 불과한 — 가 성립하려면 행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일이 사기라는 걸 알면서, 그 사기를 도울 생각으로 했어야 합니다. 법은 이것을 ‘고의’라고 부릅니다. 모르고 한 일, 자기도 속아서 한 일은 같은 행동이라도 다르게 평가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 변호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사기관이 ‘가담’이라고 적어 둔 행동 하나하나를 다시 ‘이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의 눈으로 읽는 것입니다.
자기도 속은 사람을 가려내는 네 가지 자리
본인도 피해자인 말단 가담자를 공범과 구분해 내는 자리는, 대체로 네 군데에서 갈립니다.
첫째, 그 사업을 이해하고 있었는가. 정교한 투자사기일수록 윗선은 말단에게 사업의 실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알려주면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단은 ‘이게 왜 돈이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수사가 끝난 뒤에도 “그거 사실은 되는 거 아니었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담자가 아니라 끝까지 속아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둘째, 실질적인 설명에 관여했는가. 윗선이 보낸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고, 앱 켜는 법 정도를 알려준 것과, 수익 구조를 스스로 기획하고 설득한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전달자와 설계자를 같은 자리에 둘 수는 없습니다.
셋째, 회사가 ‘정상인 척’ 외형을 꾸몄는가. 정기 모임, 직책, 사무실, 회식 — 이런 외형은 투자자만 속이는 게 아니라 말단 가담자도 속입니다. 제대로 된 조직 생활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그 외형을 진짜로 믿습니다. 그 외형이 정교했다는 사실은, 윗선의 죄를 무겁게 하는 동시에 말단의 ‘몰랐음’을 뒷받침합니다.
넷째,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 가담자라면 최소한 떼어 간 몫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받은 수익은 없고, 오히려 누구보다 큰 돈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의 손익계산서가 아닙니다.
이 네 가지가 모이면, ‘행위는 있었으나 고의는 없었다’는 그림이 비로소 손에 잡힙니다.
증명은 마음속이 아니라 기록에 있습니다
문제는, ‘몰랐다’는 건 마음속의 일이라 그냥 주장만으로는 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변론은 결국 기록으로 하는 일이 됩니다.
본인이 대출을 받아 투자한 내역,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한 계좌, 윗선이 보낸 메시지를 그대로 옮긴 흔적, 사업의 실체를 묻는 본인의 어수룩한 진술까지 —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아 ‘이 사람은 도구였지 주체가 아니었다’는 하나의 그림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자료로 고의의 부재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무죄가 아니어도 — 실형과 집행유예 사이
이 다툼이 끝까지 가서 고의가 부정되면 무죄나 불기소에 이릅니다. 그러나 현실의 사건은 그렇게 깔끔하게만 끝나지 않고, 일부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이 사람은 주체가 아니라 도구였고, 누구보다 크게 잃은 피해자’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죄를 다투던 그 사실이, 이번에는 양형의 자리에서 다시 일합니다. 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실형을 살고 누가 집행유예로 사회에 남는지를 가르는 자리입니다. 피해 규모가 큰 사건일수록, 그 한 끗이 한 사람의 남은 인생을 가릅니다.
그래서 ‘본인도 피해자였다’는 사실관계를 자료로 세우는 일은, 무죄를 위해서도 양형을 위해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한 번 세워 둔 그림이 두 자리에서 모두 일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투자사기에 휘말려 조사를 받게 되면, 많은 분이 당장 경찰서에 두려워 섣부르게 진술을 해 버리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경험상 이런 분들은 종종 두 가지 사이에서 무너집니다. 돈을 잃은 억울함과, 가담자로 몰린 두려움. 그런데 사실 그 두 가지가 같은 사건의 양면일 수 있습니다.
같은 행동을 했어도 ‘알고 했는가’에서 결과는 갈립니다. 그 갈림길을 혼자 건너지 마시고, 본인이 가진 자료부터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자료 안에, 당신이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증거가 이미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