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10월 13일 · 변호사 김영빈

교통사고사실확인원 발급 — 경찰이 정리한 그 종이, 결론이 아닙니다

교통사고사실확인원은 경찰의 사고 조사가 끝나야 발급되고, 사고원인·사고내용과 함께 맨 아래에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사고원인에 신호위반이 적혔지만 도로교통공단의 영상 분석과 진료기록 감정을 거쳐 무죄가 선고된 사건과, 사고내용 괄호에 남은 진술 한 줄이 민사 소장의 청구원인이 된 사건을 따라갑니다.

사고원인란에

내 잘못이 적혀 있어도,

사건을 정하는 질문은

그 종이에 적히지 않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사건은 실제 사건의 법리와 결과를 바탕으로, 차량·사람·사고 경위를 새로 구성했습니다.

교통사고사실확인원 발급 — 조사가 끝나야 발급되고, 과실비율을 적는 항목은 없으며, 현장에서 한 말은 괄호로 서류에 남는다는 요지를 적은 정보 카드

1. 경찰 조사가 끝나야 나옵니다

교통사고사실확인원은

경찰의 사고 조사가 끝난 뒤,

경찰서 민원실이나

정부24·경찰민원24에서

수수료 없이 발급받습니다.

사실확인서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은데, 정식 이름은 확인원입니다.

사고를 접수한 날 바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조사관이 조사를 마치고 작성한 교통사고보고서(실황조사서)를 기준으로 발급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서에 직접 가면 위임장과 내 신분증 사본을 든 대리인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정부24·경찰민원24 같은 온라인과 무인민원발급기는 사고 당사자 본인만 됩니다.

신청할 때는 어디에 쓸지 용도를 적습니다. 이 용도란이 좀 재미있습니다. 실물을 보면 「법원 제출용」, 「보험회사 제출용」 같은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 종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서류가 스스로 알고 있는 셈입니다.

발급되면 경찰서가 그 사실을 사고 상대방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알립니다.

2. 받아 들면 읽을 곳

한 장짜리 표입니다. 이름·차량·발생일시는 맞게 적혔는지만 보면 됩니다.

교통사고사실확인원 서식 앞쪽 — 사고원인·사고내용·용도 항목에 빨간 상자를 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지 서식

가. 사고원인

「신호 또는 지시 위반」, 「안전운전의무위반」 같은 한 줄이 들어갑니다. 경찰이 내 잘못을 어떤 위반으로 분류했는지가 이 한 줄입니다.

나. 사고내용

조사관이 정리한 사고 경위가 몇 문장으로 들어가고, 당사자가 현장에서 한 말이 괄호로 함께 적히기도 합니다. 보험사와 상대방이 이 사고에 대해 처음 읽는 설명이 이 몇 문장입니다. 내 말이 어떻게 요약됐는지 문장 하나하나 읽어 보셔야 합니다.

다. 맨 아래 한 줄

뒤쪽 참고사항에는 이 문장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교통사고사실확인원 서식 뒤쪽 — 사고현장약도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참고사항 2에 빨간 상자를 친 이미지

본 확인서는 보증 또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종이를 보험사 보상 담당자가 가장 먼저 요구하고, 민사 소장에는 갑호증으로 붙어 들어갑니다. 법원도 이 종이를 증거로 씁니다. 경찰이 작성한 교통사고사실확인원 등을 증거로 삼아 사고 시각을 인정한 원심을 두고, 대법원은 위법이 없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12. 8. 17. 선고 2010다28390 판결).

모순은 아닙니다. 확인원이 확인하는 것은 앞쪽의 확인 문구 그대로 「교통사고를 취급한 사실」과 그 개요입니다. 과실비율도, 배상책임도, 다친 것이 이 사고 때문인지도 적는 항목이 없습니다. 맨 아래 한 줄은 이 종이 한 장으로 과실과 책임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보험사의 과실 협상도, 상대방의 청구도 이 몇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인데,

받아 든 사람 눈에는

결론처럼 보입니다.

운전자에게도, 상대방에게도요.

3. 「신호위반」으로 적혔는데 무죄가 난 사건

한 교차로에서 승합차가 황색신호에 멈추지 않고 들어가다 전동킥보드와 부딪혔습니다. 킥보드를 타던 분은 병원에서 꽤 긴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경찰서가 발급한 확인원에는 이렇게 적혔습니다.

사고원인: 신호 또는 지시 위반

사고내용: 황색신호에 정지하지 않고 교차로에 진입하다 … 차량 좌측 뒤 측면부분으로 충격하였다.

신호를 어겼고, 사람을 쳤고, 다쳤다. 종이만 보면 사건은 끝나 있었습니다.

신호위반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 정한 이른바 12대 중과실의 하나입니다. 종합보험에 들어 있어도, 피해자와 합의해도 재판에 넘겨질 수 있습니다. 운전자는 그대로 기소됐습니다.

그런데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 볼수록, 종이의 문장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장면이 보였습니다. 킥보드는 차 앞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차의 좌측 뒤 측면에 부딪혔습니다. 확인원에도 적혀 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차가 사람에게 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달리던 차의 옆면으로 들어와 부딪힌 장면으로 볼 여지가 있었습니다.

황색신호에 들어간 것은 영상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신호를 어겼느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운전자가 그 충돌을 피할 수 있었는지, 피해자의 상처가 그 충돌 때문인지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변호인은 먼저 사고 영상을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보내 분석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회신은 이랬습니다. 운전자가 위험을 알아챌 수 있었던 때 급제동했더라도 충돌을 피하기는 어려웠고, 피해자가 갑자기 방향을 꺾어 진행 방향을 가로막을 것까지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피해자의 진료기록을 법원을 통해 받아 감정을 신청했습니다. 진단서에는 여러 상해가 적혀 있었는데, 감정 결과는 달랐습니다. 일부 상해는 진단할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고, 일부는 이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영상의학적 근거 없이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따라 진단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확인원의 「충격하였다」가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부딪힌 것은 사실이니까요. 형사책임을 정한 것은 그 종이에 적히지 않은 2가지, 피할 수 있었는지와 다친 것이 이 사고 때문인지였습니다.

확인원에 적힌 것과 재판에서 확인한 것 도해 — 확인원의 신호위반 기재, 도로교통공단 영상 분석, 진료기록 감정, 무죄

4. 괄호 속 한 줄이 소장이 된 사건

확인원의 문장이 운전자 쪽에 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윙바디 화물차가 공단 진입로의 급한 우회전 구간을 돌다가 왼쪽으로 넘어졌습니다. 맞은편 화단과 가로등 기둥까지 들이받았고, 기사님은 옆으로 누운 운전석에서 한참 만에 빠져나왔습니다. 확인원의 사고원인은 이랬습니다.

사고원인: 안전운전의무위반

운전자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고내용 맨 끝, 괄호 안에 이 문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진술인은 적재함 안의 화물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우회전 중에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좌전도 되었다는 진술임)

경황이 없던 기사님이 현장에서 조사관에게 한 말입니다. 조사관은 자기 판단과 별개로, 그 말을 괄호로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넘어진 윙바디 화물차 앞에서 담요를 두른 기사가 경찰에게 말하는 장면의 삽화 — 「현장에서 한 말은 괄호로 서류에 남습니다」라는 글귀가 얹힌 이미지

이 화물차의 짐은 화주 쪽이 실었습니다. 기사님은 상차장에 차를 대 놓고 사무실에서 기다리다가, 지게차 작업이 끝나면 출고증을 받아 출발했습니다. 그날 적재함에는 몇 톤짜리 철제 부품이 결박 없이 한쪽으로 치우쳐 실려 있었습니다.

몇 달 뒤, 이 괄호는 민사 소장의 청구원인이 되었습니다. 짐을 실은 쪽을 상대로 억대의 수리비를 청구하는 소장이었습니다. 확인원은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과 사고 직후의 진술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갑호증으로 붙었고, 실황조사서로는 제한속도를 지켰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을 함께 세웠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서늘한 이야기입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핸들을 급하게 꺾어서요」라고 말했다면, 같은 종이가 반대쪽 증거가 되었을 겁니다.

현장에서 한 말은 괄호로 서류에 남습니다. 그 말은 지나가지 않고, 몇 달 뒤의 소장과 재판까지 따라옵니다.

확인원은 사고에 대한 첫 설명이고, 그 설명은 운전자에게 불리할 수도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사고원인란에 내 잘못이 적혀 있어도 그 한 줄로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사건을 정하는 답은 블랙박스 영상 분석, 진료기록 감정, 실황조사서 같은 자료에서 나옵니다.

그 자료를 찾고,

법원에 신청해

받아 내는 것이

변호사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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