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절차 · 2026년 8월 3일 · 변호사 김영빈

고소장 양식 — 다운로드는 5분,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고소장 양식은 경찰청 민원 포털에서 5분이면 구할 수 있고, 형식 요건은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 증거가 차고 넘치던 수억 원대 횡령 사건의 고소장에 3주를 쓴 이유, 피해자 정리에 따라 적용 법률이 갈리는 구조, 그리고 잘 쓰인 고소장이 공소장과 판결문 별지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실제 고소대리 사건으로 보여드립니다.

수억 원 횡령 사건의 고소장에 3주를 쓴 이유

고소장 양식을 찾고 계신가요. 양식은 5분이면 구합니다. 이 글은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 고소장이 경찰서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제가 고소대리를 맡았던 횡령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경찰청 민원 포털에도 있고, 경찰서 민원실에 가면 그 자리에서 줍니다. 검색하면 나오는 어느 양식을 써도 법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고소인, 피고소인, 고소취지, 범죄사실, 증거자료. 항목은 이게 거의 전부이고, 형식 요건은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손으로 눌러 쓴 두 장짜리 고소장도 접수됩니다.

그러니까 “양식을 어디서 받아 어떻게 채우는가”는 이 서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저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 사건의 고소장 한 통에 3주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3주가 무엇이었는지가, 아마 지금 양식을 검색하신 분께 필요한 이야기일 겁니다.

어느 제조업체의 연말

한 중소 제조업체의 연말 결산에서 이상한 숫자가 나왔습니다. 평소 거의 움직이지 않던 계좌에서 큰돈이 빠져나간 기록. 대표가 장부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경리 담당 직원이 1년 남짓 사이에 회사 계좌의 돈을 수십 차례에 걸쳐 자기 계좌로 옮긴 정황이 나왔습니다. 합계 5억 원을 훌쩍 넘는 돈이었습니다.

대표가 직원을 불러 물었고, 직원은 인정했습니다. 그 대화가 통화 녹음으로 남았습니다. 본인 계좌의 거래내역도 확보됐습니다.

계좌 기록이 있고, 자백 녹음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고소장은 하루면 쓸 수 있어 보입니다. 저희는 3주를 썼고, 그사이 고소장 버전은 일곱 번 올라갔습니다.

3주 동안 한 일

먼저 죄명이 갈라졌습니다. 밖에서 보면 “회사 돈 횡령”이라는 하나의 사건인데, 법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법인과 대표 개인사업체가 사무실과 직원을 같이 쓰는, 중소기업에서 아주 흔한 구조였습니다. 돈이 빠져나간 계좌도 두 갈래였습니다. 피해자가 둘이면 횡령죄도 피해자별로 따로 성립하고, 피해액을 어느 쪽으로 얼마씩 정리하느냐에 따라 적용되는 법 자체가 달라집니다. 피해액 5억 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경계선입니다. 이 선을 넘으면 법정형의 하한이 징역 3년이 되고, 벌금형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집니다. 뭉뚱그려 쓰면 이 구조가 무너집니다.

다음이 표였습니다. 수십 차례의 이체를 통장 내역 수백 줄에서 골라내 날짜, 금액, 방법 순으로 정리한 범죄일람표. 인터넷뱅킹으로 옮긴 돈과 장부를 부풀려 현금으로 가져간 돈은 수법이 다르므로 줄을 나눠 적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작업을 도와줄 도구가 마땅치 않아서, 통장 내역을 하나하나 손으로 분류했습니다. 며칠이 걸렸습니다.

녹음도 그냥 “자백 녹음 있음”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파일의 몇 분 몇 초부터 몇 분 몇 초까지가 어떤 진술인지를 특정해서 적었습니다. 확인하는 사람이 파일 전체를 들을 필요 없이, 적힌 시각으로 바로 가서 확인만 하면 되도록.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돈이 회사 계좌에서 직원 계좌로, 다시 제3자의 계좌로 옮겨 간 흐름은 글로 쓰면 세 줄인데, 글로 읽으면 길을 잃습니다. 그래서 계좌와 계좌 사이에 화살표를 그린 도해를 만들어 붙였습니다. 딱 봐도 잘 안 보이는 구조는, 딱 보면 보이게 만들어서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3주 동안 대표와는 며칠에 한 번씩 통화했습니다. 숫자 하나, 날짜 하나를 대조할 때마다 버전이 하나씩 올라갔습니다. 고소장은 변호사가 혼자 쓰는 서류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아는 당사자와 법을 아는 사람이 같이 만드는 서류입니다.

고소장의 독자는 수사관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이 서류를 읽고 움직일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고소장의 독자는 판사가 아닙니다. 배정받은 수사관입니다. 수사관의 책상에는 이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고소장은 수사관이 사건에 대해 처음 읽는 문서입니다. 그 문서가 사건의 구조를 한눈에 보여 주면 수사는 확인 작업이 됩니다. 계좌를 조회해 일람표와 대조하고, 녹음의 지정된 구간을 듣고, 당사자를 불러 확인하는 것. 반대로 고소장이 헝클어져 있으면, 수사관은 사건의 구조를 스스로 재구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고소장의 범죄일람표는 수사를 거쳐 공소장으로, 다시 판결문의 별지로 이어졌습니다. 판결문의 증거 목록에는 고소장이 그대로 올라 있습니다. 잘 쓰인 고소장은 접수되는 서류가 아니라 수사의 설계도가 됩니다. 그리고 설계도가 좋을수록 절차가 빨라집니다. 이 사건은 고소장 접수에서 송치까지 두 달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는 10월 2일부터는 이 서류의 무게가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일반 사건의 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이 완결하고, 검사가 직접 수사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던 길이 사라집니다. 그 구조 변화는 검찰청 폐지 — 제 사건은 어떻게 되나요?에 적었습니다. 고소인의 입장에서 한 줄로 줄이면 — 앞으로 사건의 운명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실상 결정되고, 고소장은 그 수사의 첫 설계도입니다.

전부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정직하게 적겠습니다. 이 사건의 고소장에는 돈을 가져간 직원 말고, 그 돈이 거쳐 간 가족 한 명도 피고소인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빼돌린 돈의 일부가 그 가족의 계좌를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알고 도왔다면 공범이고, 공범이 인정되면 피해 회복의 길도 넓어집니다.

다만 고소인 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돈이 지나간 기록까지였습니다. 그 계좌의 주인이 무엇을 알았는지는, 고소인의 자리에서는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저희는 아는 사실과 의심되는 정황을 구분해서 적었고, 수사관은 그쪽을 조사했고, 결론은 혐의없음 불송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가 헛수고는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계좌를 들여다본 조사 과정에서 돈의 전체 흐름이 오히려 선명해졌고, 본범의 혐의는 그만큼 더 단단해졌습니다. 고소장은 유죄의 증명서가 아닙니다. 수사가 가야 할 길을 그린 지도이고, 사건의 실체는 결국 수사관의 사실 조사가 밝힙니다. 고소장이 할 일은 그 조사가 빈 곳 없이 이루어지도록 길을 그려 두는 것까지입니다.

그리고 지도에 그렸는데도 조사 없이 닫힌 길이 있다면, 그때 쓰는 절차가 따로 있습니다. 불송치 이의신청 — 경찰이 무혐의로 끝냈습니다, 여기서 끝인가요?에 적어 두었습니다.

넉 달 뒤, 법정에서

고소장을 낸 지 넉 달 남짓 만에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양형기준이 권고하는 범위의 맨 위에서 형을 정했습니다. 실형이었고,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유지되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횡령 고소 사건이 수사 단계에서 해를 넘기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속도는 고소장이 수사의 설계도로 일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고소를 준비하고 계시다면, 양식의 빈칸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실제 준비물입니다. 피해자가 누구로 정리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증거이고 무엇이 아직 심증인지, 수사관이 첫 페이지에서 사건의 구조를 볼 수 있는지. 가지고 계신 자료를 그대로 들고 오시면, 이 사건에서 고소장이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부터 같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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