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6월 12일 · 변호사 김영빈
강간 고소를 당했습니다 — 증거가 피해자 진술뿐일 때, 무죄는 어떻게 나오나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던 아청법 위반(강간) 사건. 2년 2개월의 부인 끝에 무죄와 배상명령신청 각하로 끝난 실제 기록입니다.
이 글을 검색으로 찾으신 분이라면, 지금 가장 절박한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겁니다. “증거라고는 상대방 말뿐인데, 그것만으로 유죄가 됩니까.”
됩니다. 그 말씀부터 드려야 합니다.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그 자체로 증거이고, 진술만으로 유죄가 선고되는 사건은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물증이 없으니 무죄겠지”라는 기대는 이 영역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지면, 사건 전체가 무너집니다. 무죄는 거기서 나옵니다.
제가 변호인으로 2년 남짓을 수행해 무죄로 끝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사건의 기록을, 익명화해서 적습니다.
- 같은 처지에 계신 분께는 일반론보다 이 싸움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드리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입니다.
1. 사건 — 고소장보다 먼저 도착한 것
의뢰인은 작은 사업장을 운영하던 30대 남성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쯤 일하던 직원과 사적으로 가까워졌습니다. 직원은 만 열여덟. 성인이 코앞이었지만, 법은 19세 미만을 아동·청소년으로 봅니다.
어느 가을밤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고, 숙소에 들어갔고, 의뢰인은 성관계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의뢰인에게 도착한 것은 경찰의 출석요구가 아니라 피해자 어머니의 연락이었습니다. 억대의 금액을 단기간 안에 지급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내용. 의뢰인은 그 돈을 마련하지 못했고,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죄명은 아청법위반(강간).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형법의 강간(3년 이상)보다 한 층 무거운 죄입니다. 하한이 5년이라는 건 유죄가 되는 순간 실형이 기본값에 가까워진다는 뜻이고,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고지, 취업제한이 그 뒤에 따라옵니다. 이 무게 때문에 재판도 단독판사가 아니라 판사 세 명의 합의부가 심리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그 밤의 처신이 잘한 일이라는 글이 아닙니다. 열여덟 살 직원과 술을 마시고 숙소에 간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처신이고, 의뢰인도 그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적절한 처신과 강간은 다른 문제입니다. 형사재판은 도덕을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검사가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했는가를 묻는 자리입니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싸울 수 있는 사건도 싸우지 못하게 됩니다.
2. 이 싸움의 실제 구조 — 진술 대 진술이 아니라, 진술 대 기록
부인하는 사건에서 많은 분들이 “내 말과 상대 말 중 누구 말을 믿어주느냐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평가하고, 피고인의 “아닙니다”는 그 자체로는 무게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같은 법리에서, 그것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라거나 무조건 유죄로 판단하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그래서 변호인이 할 일은 “아니라고 더 크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술과 어긋나는 객관 기록을, 시간 순서대로, 법정에 깔아 놓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그 기록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사건 전후의 카카오톡 — 두 사람의 평소 관계가 어떤 결이었는지
- 사건 전에 두 사람이 같이 ‘술’을 마셨는지, 얼마나 마셨는지
- 사건 직후 피해자의 SNS — 그 시기의 일상이 어땠는지
- 사건 며칠 뒤 걸려온 전화의 녹음 — 고소 후에도 이어진 대화의 내용
- 숙소의 예약·이동 기록 — 진술 속 시간과 실제 시간의 차이
- 그리고 수사기관이 가진 기록 전부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기소가 되면 변호인은 검사가 가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는데(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이 사건에서는 일부 기록의 열람이 거부되었습니다. 신청서를 두 차례 다시 넣고 정보공개청구까지 동원해 결국 확보했습니다. 상대가 가진 패를 다 확인하기 전에는 증인신문을 시작하지 않는다 — 부인 사건의 철칙입니다.
3. 법정에서 한 일들
수사에 1년 반 가까이, 기소 후 재판에 다시 아홉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증인 네 명을 신문했고, 그중 두 명은 두 차례 불러 세웠습니다. 변호인이 한 일을 추리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피해자 반대신문. 핵심 진술의 모순을 법정 기록에 박는 작업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빼앗겼다는 시점을 네 가지로 다르게 진술했습니다. “강간 직후 남자친구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면서 그 뒤 여섯 시간을 같은 침대에서 다시 잤고, 의뢰인이 잠든 사이에 혼자 숙소를 나와 귀가했습니다. 하나하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조각이 전부 한 방향 — 진술 속의 공포와 실제 행동의 불일치 — 을 가리키면, 재판부는 그것을 봅니다. 실제로 판결문에는 반대신문에서 나온 답변들이 증언 녹취서 면수까지 짚어 인용됐습니다.
둘째, 주변 증인신문. 두 사람을 모두 아는 지인들이 법정에서 평소의 관계를 증언했습니다. 검사가 그린 일방적 상하관계와는 다른 결이 제3자의 입으로 확인됐습니다.
셋째, 객관 기록의 제출. 사건 며칠 뒤 피해자 쪽에서 걸려온 전화를 의뢰인이 녹음해 두었습니다. 그 통화에서 피해자는 고소가 자신의 뜻이 아니라는 취지의 말과 함께, 어머니가 부른 합의금 액수를 직접 언급했습니다. 자신이 당사자인 대화의 녹음은 적법한 증거가 됩니다. 이 녹취록과 카카오톡, SNS 기록이 반대신문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넷째, 검사의 증거를 돌려세운 것. 재판 중반 검찰이 추가 증거로 제출한 것 중에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 응급키트(레이프키트) 감정 결과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검사한 모든 유전자 좌위에서 남성 DNA 불검출. 삽입이 있었다는 공소사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물증을 검찰 스스로 제출한 셈이 됐습니다. 변론요지서에서 이 감정서를 무죄 주장의 첫 자리에 세웠습니다.
다섯째, 우회로 차단.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피해자에게 들었다”고 증언했지만, 원진술자인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온 이상 그런 전문(傳聞) 증언은 독립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316조 제2항). 나아가 법원이 강간 대신 강제추행으로 죄를 줄여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까지 계산에 넣고, 그 축소사실에 대해서도 같은 증거 검토를 변론요지서에 미리 적어 길을 막았습니다.
4. 판결
선고일,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문이 짚은 것은 제가 제출한 변호인의견서에서 짚은 부분 전부였습니다. 피해자 진술의 비일관성. 진술과 어긋나는 사건 전후의 행동과 기록. DNA 불검출. 그리고 고소에 이른 경위 — 법원은 고소가 피해자 본인의 의사보다는 주로 어머니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그 동기가 “합의금을 지급받는 데에 있지 않은가 의심되기도 한다”고 적었습니다. 함께 제기되어 있던 억대의 배상명령신청은 각하됐습니다.
고소장 접수부터 그날까지, 2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5. 같은 상황에 계시다면
이 사건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것만 추려 적습니다.
기록을 지키십시오. 이 사건의 무죄는 변호인의 솜씨이기 전에, 의뢰인에게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메시지, 통화, 결제내역, 이동기록 — 불리해 보이는 것까지 전부입니다. 겁이 나서 지우는 순간 그것은 증거인멸이 되고, 남은 기록의 신빙성까지 함께 무너뜨립니다.
돈 요구가 먼저 왔다면, 그 요구 자체가 기록이 되게 하십시오. 모든 합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고소보다 돈이 먼저 온 사건에서는 그 순서와 액수와 말이 법정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감정적으로 답하지 말고, 변호인을 통해 대응하십시오.
첫 진술 전에 변호인과 정리하십시오. 이 사건 의뢰인은 고소 직후부터 변호인과 함께였고, 조사에는 변호인이 입회했습니다. 그렇게 잡힌 첫 진술의 틀이 2년 뒤 판결문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첫 진술의 무게에 대해서는 현행범 체포 직후를 다룬 글에 적어 두었습니다.
갈래 판단부터 하십시오. 다투는 트랙과,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설계하는 트랙은 전혀 다른 길이고 동시에 탈 수 없습니다. 선처 트랙의 설계는 기소유예를 다룬 글에 적어 두었습니다. 어느 트랙의 사건인지는 첫 진술 전에 정해져 있어야 하고, 그 판단은 혼자 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을 각오하십시오. 부인 사건은 깁니다. 이 사건은 수사에 1년 반, 재판에 다시 아홉 달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까지가 방어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한 줄을 보태야겠습니다. 무죄는 약속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닙니다. 이 사건이 무죄로 끝난 것은 누군가의 장담 때문이 아니라, 기록이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기록을 끝까지 법정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이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기록을 빠짐없이 찾아내 그것이 말하게 만드는 일까지입니다.
창원·경남에서 성범죄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앞두고 계시다면, 첫 진술 전에 한 번 상의하십시오. 아인법률사무소 · 변호사 김영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