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기 · 2026년 7월 5일 · 변호사 김영빈

개업기 ⑪ 사장이 짜장면을 시키면

개업 후 처음으로 월차를 씁니다 — 월차는 계좌이체가 되지만, 여유는 되지 않습니다.

개업 후 처음으로, 월차를 씁니다

개업기 ⑩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에서 1부를 닫았습니다. 그 뒤로는 한동안 사건 글만 썼는데, 그 사이 사무실에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혼자 설계하던 이야기가 1부였다면, 요즘은 곁을 돌아보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어 씁니다. 이번 글은 공간도 장비도 시스템도 아닌, 사람 이야기입니다.

어렵게 꺼낸 말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업기 ④ 그래도 한 사람은 옆에에서 썼던 그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 대표가 쉬지를 않으니, 쉬는 게 좀 불편하다는 겁니다.

미리 밝혀 두자면, 저희 사무실의 휴가가 야박한 건 아닙니다. 월차는 매달 이틀씩 꼬박꼬박 나갑니다. 다가오는 법원 휴정기에는 일주일 연차도 미리 잡아 두었습니다. 서류만 보면 부족할 게 없는 그림이고, 저는 그걸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건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공기였습니다. 쓰라고 해서 쓰기는 하는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

생각해 보면 간단한 그림입니다. 회식으로 중국집에 갔는데, 사장이 웃으면서 “편하게 시켜요~ 저는 짜장면^^” 하는 겁니다. 그 테이블에서 탕수육을 못 시키는 건 아닙니다. 시키게는 됩니다. 다만 그 탕수육이 편하게 넘어가질 않을 뿐이지요. 메뉴판이 아무리 넓어도, 기준은 사장의 말이 아니라 사장의 주문이 됩니다.

제가 그 사장이었습니다. 개업하고 세 달 남짓, 제 쉬는 날을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도 절반쯤은 노트북 앞이었습니다. 그 옆에서 쓰는 월차가 온전히 달았을 리가 없습니다.

창업가라는 광인

변명을 하자면, 저는 힘들어서 그러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개업한 사람의 노동은 셈법이 다릅니다. 내 그림이고 내 사냥이라, 주말의 일이 벌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장 가져가는 돈이 적어도, 여유가 없어도 달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문제는 그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 순간입니다. 창업하는 사람이 빠지기 가장 쉬운 함정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같이 하는 사람도 나처럼 일할 수 있다’는 착각. 나는 되니까, 옆 사람도 되는 줄 아는 겁니다.

안 됩니다. 사람은 돈과 여유 없이 부릴 수 없습니다. 돈은 그나마 셈이 서는 문제라, 정직하게 지급하면 됩니다. 어려운 쪽은 여유입니다. 이번에 배운 게 바로 이것인데 — 월차는 계좌이체가 되는데, 여유는 되지 않습니다. 달력에 휴가를 꽂아 주는 것까지는 제도가 합니다. 그 휴가가 편해지는 건 제도 바깥의 일입니다. 직원이 실제로 읽는 건 취업규칙이 아니라 대표의 달력입니다.

그러면 돈도 여유도 없이 일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느냐 — 있습니다. 그게 창업가입니다. 정확히는, 광인입니다. 그리고 광인은 고용되지 않습니다. 자기 사무실을 차리지요. 그러니 채용을 어떻게 하든 광인의 자리는 이 사무실에 이미 하나 차 있고, 두 자리째는 없습니다. 없어야 하고요.

그 말의 값

하나 더 적어 둡니다. 직원이 대표에게 “대표님이 안 쉬셔서, 제가 쉬기가 불편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 이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사장의 근태를 입에 올리는 직원이라니요. 잘못 떨어지면 불평으로 읽히기 딱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절반의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사무실이기는 하다는 뜻이니까요. 그 공기가 제가 잘 만든 것인지 그가 용기를 내 준 것인지는 반반이겠지만, 어느 쪽이든 지켜야 하는 자산인 것은 분명합니다. 직언이 죽은 사무실에서는, 이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걸 알려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월차

이번 주 월요일 하루를 비웠습니다. 개업하고 처음 쓰는 월차입니다.

솔직히 어색합니다. 딱히 갈 곳을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하루는 제 휴식이기 이전에 결재에 가깝습니다. 대표의 월차는 직원의 월차에 대한 허가증입니다. “편하게 쉬세요”를 백 번 말하는 것보다 대표가 하루 사라지는 쪽이 유일하게 작동하는 언어라는 걸, 이번에 배웠습니다.

조직은 규정이 아니라 선례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규정은 이미 있었습니다. 없던 것은 선례였습니다. 제가 월요일에 쉬면, 다음에 그가 쉬겠다고 말할 때 눈치의 값이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값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대표 말고는 없습니다.

혼자일 때는 안 보이는 것

개업을 생각하시는 분께 하나 남겨 두자면 — 혼자일 때는 이 함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혼자라면 광인이어도 됩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이 오는 순간, 당신의 노동관은 더 이상 사생활이 아니라 근무환경이 됩니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야근이, 옆자리에는 무언의 기준으로 앉습니다.

개업기 네 번째 글에서, 그래도 한 사람은 옆에 두기로 했다고 썼습니다. 옆에 둔다는 게 급여와 휴가를 지급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내 보니 제 달력을 고치는 일까지였습니다. 사무실이 자라면 배워야 하는 것도 자랍니다. 2부는 아마 이런 이야기들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쉬겠습니다. 이것도 사무실을 짓는 일이라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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