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9월 11일 · 변호사 김영빈
질 것 같다고 사건을 쳐내진 않습니다
승산이 낮아도 사건을 맡는 이유와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일을, 서비스업으로서의 수임 기준에 따라 이야기합니다.
서비스업으로서의 변호사의 본질

상담을 하다 보면 이기기 어려운 사건을 만납니다. 말씀을 오래 들어도, 자료를 다시 읽어도 판단이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어렵다고 말씀드립니다. 어떤 사실이 불리한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가진 자료로는 왜 부족한지를 설명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에는 돈이 들고, 사건을 시작하면 시간도 써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기기 어렵다는 설명과 사건을 맡지 않겠다는 결정은 다릅니다. 저는 앞의 설명을 드린 뒤에도 상담을 이어갑니다. 그 설명을 듣고서도 변호사를 찾을 이유가 남아 있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얻고 싶으신가요
돈을 돌려받고 싶은 분에게는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비용을 들여 다투고도 손에 남는 돈이 없다면, 소송을 하자는 말부터 꺼내기는 어렵습니다. 형사사건이라면 처벌의 무게나 구속 여부처럼 당장 생활을 바꾸는 문제가 걸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원하는 것을 돈이나 판결 결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분이 있습니다. 그동안 자기 설명을 아무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는 분도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떻게 다퉈야 할지 몰라 물러섰지만, 이번에는 가능한 데까지 해보고 싶어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 뜻을 보통 ‘한풀이’라고 부릅니다. 그 말에는 돈까지 써가며 할 일은 아니라는 평가가 종종 붙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온 분이 무엇에 돈을 쓸지는 제 취향으로 정할 일이 아닙니다.
불리하다는 설명을 충분히 듣고도 자기 편에서 치열하게 싸워줄 사람을 원한다면, 그것도 변호사에게 구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필요까지 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변호사는 무엇을 합니까
물론 편을 들어준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호사를 찾아와 비용을 지불하는 분에게는 제가 실제로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와 맞춰봅니다. 오래 설명하신 일 가운데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작 중요한데 짧게 지나간 사실은 없는지 살핍니다. 의뢰인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설명하지 않은 일을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를 짚고, 어떤 자료로 자기 설명을 뒷받침할지 정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같은 자료를 두고도 어느 사실을 먼저 설명할지, 상대방의 주장 중 무엇에 답할지, 요구를 어디까지 할지에 따라 변호사가 하는 일은 달라집니다. 저는 그런 판단을 하고, 의뢰인이 혼자서는 정리하기 어려웠던 주장을 서면과 법정에서 전달합니다.
그러는 동안 불리한 자료가 나오면 그 의미도 설명해야 합니다. 처음 원했던 결과를 계속 구할지, 요구를 바꾸거나 중간에 멈출지 결정할 때에도 변호사가 검토한 내용이 필요합니다. 사건을 맡았으니 처음 드린 말씀만 끝까지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의뢰인이 겪은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분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구체적으로 일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서비스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 뒤에 무엇을 할지가 있어야 합니다.
서비스업이라는 말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는 변호사 일을 서비스업이라고 부르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습니다. 누군가 자기 문제를 들고 찾아와 도움을 구하고, 저는 제 지식과 판단, 시간을 써서 그 일을 합니다. 대가를 받는 것도 그 일에 대해서입니다.
그러니 사건을 맡을지 판단할 때에도 제가 이분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뿐 아니라, 이분이 원하는 일을 제가 실제로 할 수 있는지까지 포함해서요.

앞서 말한 한풀이도 여기서 다시 살펴야 합니다. 법정에서 자기 말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해서, 소송을 시작하는 것이 언제나 그 바람을 채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절차에서 다루기 어렵거나, 길게 다투는 동안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도 여전히 원하는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설명을 듣고 더는 다투지 않겠다고 정하시면, 그 판단을 존중합니다. 반대로 어려움을 알고도 진행하겠다고 하시고 제가 할 일이 있다면, 승산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돌려보내지는 않습니다.
맡지 않는 사건도 있습니다
다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방법도, 다른 방식으로 도울 일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더 듣고 여러 방법을 검토해도, 변호사를 쓰는 데 드는 비용과 수고를 감당하면서 얻을 것이 없다면 저 역시 맡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저에게 그것을 제공할 능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이기기 어려운 사건인지, 제가 맡아서 할 일이 없는 사건인지는 그렇게 따로 판단합니다. 앞의 경우에는 함께 싸울 수 있지만, 뒤의 경우에는 선임을 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승소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설명을 들으신 뒤에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저는 그 일을 할 수 있는지까지 듣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맡겠다는 대답은 그다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