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6월 4일 · 변호사 김영빈

말 잘 못하는 사람은 없다

말 잘 못하는 의뢰인은 없습니다 — 해석하고 대변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

어떤 사건이든 첫 시작은 상담입니다. 전화로든 방문으로든, 결국 사건은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제가 그것을 듣는 데서 출발하지요.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말을 잘 못해서요.” 이렇게 미안해하며 운을 떼시는 분이 꽤 많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옆길로 새고, 순서가 뒤엉키고, 정작 중요한 건 한참 뒤에야 나옵니다. 그러다 스스로 말이 꼬이는 걸 느끼면 무얼 말하려 했는지조차 흐려지고, 급기야 “죄송하다”는 말로 돌아오시곤 합니다.

저는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합니다. 말을 잘하는 건 의뢰인의 일이 아니라고.

사람은 원래 자기 일을 매끄럽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인생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에 변호사를 찾아오는 분들이니, 말이 가지런할 리가 없죠. 말과 글을 업으로 삼는 분이라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이 법정에서 어떻게 들릴지를 가늠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그건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조사에 왜 출석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정작 그 얘기는 못 하고 “그냥 사람이 무서웠다”, “거기 가기 싫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분이 계십니다. 가족 연락처조차 외우지 못할 만큼 지쳐서, “그래도 갔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시죠. 이 말을 그대로 “출석 거부”라고 적으면 사건은 거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흩어진 말을 하나씩 되물어 따라가 보면, 그 무렵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어 사람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납니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 “나설 수 없었던 것” — 그 차이가 사건의 방향을 바꿉니다.

또 이런 분도 계십니다. 억울함에 북받쳐 “그놈을 그냥 두면 안 된다”며 돈을 받아내 달라는 말만 반복하시는 분. 정작 돈을 원하시는 건지, 그 집에 계속 살고 싶으신 건지, 명의를 되찾아야 하는 건지는 당신도 모른 채 “어떻게든 해 달라”고만 하시죠. 이 말을 그대로 받으면 단순한 손해배상 사건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 보면, 이분이 임차인인지 매수인인지 유치권자인지, 진짜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변호사의 눈에는 보입니다.

변호사의 ‘변(辯)‘은 말을 가려 따진다는 뜻이고, ‘호(護)‘는 지킨다는 뜻입니다. 흩어진 말을 따져 쟁점을 가려내고, 그렇게 의뢰인을 지키는 것. 그것이 이 일의 본령이겠지요.

변호사가 받는 수임료의 값이 여기 있습니다. 의뢰인의 말을 받아 적어 표면의 언어 그대로 소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사건을 추려내고, 빠진 곳을 되묻고, 흩어진 사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그림이 되도록, 가장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 그러라고 변호사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말이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정리는 제가 합니다.

가끔 “너무 자주 연락드려 죄송하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같은 걸 세 번 물으셔도, 불안해서 밤에 문자를 남기셔도 저는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다는 건 그만큼 사건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제가 놓쳤던 사실이 튀어나오는 일도 많으니까요. 의뢰인의 질문도, 말도, 문자도, 모두 사건의 일부입니다.

다만, 제가 정중히 사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연락이 잦아서가 아닙니다.

밤 열한 시에 전화해 “변호사가 벌써 퇴근했냐”고 따지는 분. 첫 통화부터 반말로 하대하는 분. 다 큰 자녀가 친 일을 두고 “부모인 나한테 먼저 알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분. 기초적인 예의와 상식이 저와 너무 다른 분들에게는, 차라리 처음부터 수임을 사양합니다.

변호사도 퇴근하는 사람이고, 의뢰인과 변호사는 돈으로 맺어진 상하 관계가 아니라 사건을 함께 풀어갈 동등한 두 사람입니다. 그 선을 부수려는 분과는 애초에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신뢰가 깨진 자리에서는 변호가 성립하지 않으니까요.

냉정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제 편의를 위한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의 무례를 견디느라 쓰는 시간과 마음은, 정작 제 도움이 절실한 다른 의뢰인에게 갔어야 할 몫이거든요. 아무나 받지 않기로 한 건, 받아들인 분께 제가 가진 전부를 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상담 오실 때, 말을 정리해 오려 애쓰지 마십시오. 떠오르는 대로 쏟아내 주시면, 꿰는 건 제 몫입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주신 분께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서툰 말은 끝까지 듣고, 빠진 조각은 제가 채우고, 엉킨 순서는 제가 바로잡겠다고. 말을 잘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건 제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 일을, 저는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상담 99,000원, 원데이 리포트 990,000원. 수임 시 전액 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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