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기 · 2026년 6월 11일 · 변호사 김영빈

개업기 ⑦ 서면 한 부가 나가기까지

기록 정독부터 우체국까지 — 법률 서면 한 부가 의뢰인과의 왕복으로 자라는 과정.

기록에서 우체국까지, 사무실 전부가 지나가는 길

⑥에서 상담실의 한 시간까지 왔습니다. 그 한 시간이 수임으로 이어지면(항상 이어지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수임률을 높이는 게 어쩌면 진짜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만… 여튼 수임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그때부터 사무실의 본업이 시작됩니다. 변호사의 본업이 법정에 서는 일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시간으로 보나 무게로 보나 본체는 서면입니다. 재판부는 변호사를 법정에서 만나기 전에 서면으로 먼저 만나고, 사실 대부분의 싸움은 거기서 갈립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면 한 부가 이 사무실을 어떻게 통과해서 나가는지를 적겠습니다. 앞에서 보여 드린 것들 — 통째로 쥐어 준 자료(②), 나눠 부리는 AI(③), 곁의 한 사람(④) — 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록을 전부 읽고 시작합니다

서면 작업의 첫 단계는 쓰는 게 아니라 읽는 것입니다. 수사기록이든 상대방 서면이든, 사건 기록을 통째로 읽는 데서 시작합니다. 아직 기록이 없는 단계라면 의뢰인의 말을 정밀하게 듣고, 적어둔 요약을 읽습니다.

여기서 ②에서 깔아 둔 구조가 일을 합니다. 기록 전체가 이미 시스템 안에 있으니, AI가 수백 면을 먼저 정독하고 사람이 그 위를 다시 짚습니다. 사람과 기계는 빠뜨리는 게 서로 다릅니다. 사람은 분량에 지쳐 뒷부분을 놓치고, 기계는 맥락의 무게를 놓칩니다. 둘을 겹치면 구멍이 줄어듭니다.

이 단계에서 정해지는 게 전략입니다. 무엇을 다투고 무엇을 다투지 않을지, 어떤 사실을 앞세울지. 이 판단은 변호사의 것입니다. AI는 기록을 펼쳐 주지만, 어느 산을 오를지는 사람이 정합니다.

쓰는 손과 부수는 손은 따로입니다

방향이 서면 초안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③에서 적은 구조 그대로, 그 초안은 곧바로 부수는 손에 넘어갑니다.

부수는 쪽이 보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본문의 사실이 기록 어디에 근거하는지. 인용한 문장이 원문과 토씨까지 일치하는지. 판례가 실제로 존재하고, 정말 그런 취지인지 — 이건 공개 판례 데이터베이스의 원문과 한 줄씩 대조합니다. 논리에 비약은 없는지, 오히려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읽힐 문장은 없는지.

이 과정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쓰고, 부수고, 고치고, 다시 부수고. 솔직히 손은 많이 갑니다. 그런데 법원에 들어가는 문서에 “대체로 맞음”이라는 등급은 없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전부 변호사의 말이 되니까요.

서면은 의뢰인과 왕복하며 자랍니다

그런데 쓰고 부수는 동안, 서면은 사무실 안에만 있지 않습니다. 초안은 의뢰인에게 가고, 의뢰인의 답과 함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왕복에서 서면이 가장 많이 자랍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의 주인은 의뢰인이니까요. 기록에 없는 사정, 뉘앙스가 다른 표현, “이건 제 마음과 다릅니다”라는 한마디. 변호사와 AI가 기록을 아무리 파도 잡히지 않는 것들이, 의뢰인의 눈에는 한 번에 보입니다.

여기에는 제가 일하는 방식의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변호사는 네비게이션이라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정하는 사람은 운전석에 앉은 의뢰인입니다. 저는 길을 펼치고, 길마다의 리스크를 짚고, 더 나은 경로가 보이면 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핸들을 대신 잡거나, 운전자의 생각을 제 쪽으로 끌고 가지는 않습니다. 판단까지 맡아 주는 변호사를 바라는 분도 계시고 그렇게 일하는 변호사도 있겠지만,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 사건의 끝에, 그 결과를 감당하고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의뢰인이기 때문입니다. 서면은 결국 의뢰인의 의지를 법원의 언어로 옮긴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왕복의 속도가 곧 서면의 품질이 됩니다. 묻고 한 주 뒤에 답이 오는 왕복과 그날 안에 도는 왕복은, 기일이 정해진 사건에서 판본의 수 자체가 다릅니다. 저는 이 속도에 욕심을 냅니다. 제 개인 번호는 늘 공개되어 있고 — 이 블로그에도 있습니다 — 연락에는 가능한 한 바로 답합니다. 하루에도 서면이 수 차례 왕복하고 버전업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즉물적이고 즉각적으로 의뢰인에게 반응하는 게 제 신조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면 기민함이고, 제 사무실이 의뢰인께 돌려드릴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것이 저는 이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안에서 부수고 밖에서 왕복하다 보면, 서면 하나가 판본 열 몇 개를 거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마지막 검수는 눈으로 합니다

내용이 끝나면 한 단계가 더 남습니다. 출력될 모습 그대로를 눈으로 보는 일입니다.

줄 간격이 갑갑하지 않은지, 문단이 어색한 자리에서 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지, 강조가 과하지 않은지, 표가 깨지지 않았는지. 내용과 무관해 보이는 이 점검에 저는 시간을 꽤 씁니다. 엔터 하나가 가지는 의미와, ’ . ’ 과 ’ , ’ 의 차이는 큽니다. 최소한 제게는 그렇고, 이것 때문에 대형 사무실에서는 제 서면에 ‘단 한 글자도’ 직원이 터치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전자소송으로 나갈 수 있는 — 그래서 서식이 틀려지는 — 부분으로 다대한 분노를 쏟아내었던 적도 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실한 변호사라면 논리와 판례는 누구나 갖춰 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서면을 읽는 분들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읽기 편한 서면과 읽다가 힘이 빠지는 서면이 있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외형은 장식이 아니라 읽는 분에 대한 배려이고, 배려는 설득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갑니다

이렇게 만든 서면의 마지막 구간은 — 출력과 우편입니다.

민사는 전자소송이 자리를 잡았지만, 형사 쪽은 전자화가 아직 일부에 그쳐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통째로 읽고, AI 여럿이 쓰고 부수고, 화면으로 외형까지 다듬은 서면이 — 마지막에는 종이로 출력되어 봉투에 담겨 우체국으로 갑니다. 이 시리즈 내내 종이를 덜어내는 이야기를 해 온 사무실의 결말로는 꽤 얄궂은 장면이지요.

그 마지막 구간을 맡는 게 ④에서 적은 곁의 한 사람이고, 일정이 맞지 않으면 제가 직접 들고 뜁니다. 사고와 검증이 아무리 디지털이어도, 끝의 끝에는 여전히 손발이 있습니다.

서면 한 부에 사무실 전부가 들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서면 한 부가 나가는 길에 이 시리즈의 전부가 한 번씩 지나갑니다. 통째로 읽힌 기록(②), 쓰는 손과 부수는 손(③), 의뢰인과의 빠른 왕복, 눈으로 하는 마지막 검수, 그리고 우체국까지 가는 손발(④). 의뢰인이 받아 보는 건 종이 몇 십 장이지만, 그 안에 사무실의 구조가 — 그리고 의뢰인 본인의 의지가 — 통째로 접혀 들어가 있습니다.

상담실의 한 시간(⑥)이 이 사무실의 얼굴이라면, 서면은 이 사무실의 본체입니다. 그리고 본체가 튼튼해야 얼굴도 떳떳해집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상담 99,000원, 원데이 리포트 990,000원. 수임 시 전액 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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