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7월 28일 · 변호사 김영빈

12대 중과실 — 다 아는데, 나는?

12대 중과실 열두 개 전체 목록과, 그중 일곱은 사고 현장에서 해당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유. 황색신호 진입을 두고 항소심과 대법원이 갈린 판정(대법원 2024도1195), 중앙선 침범의 '부득이한 사유', 이면도로 가상 중앙선의 형사·민사 갈림까지 — 판정을 다툴 증거를 지키는 시간대별 대응을 정리했습니다.

12개 목록은 다 압니다. 30초면 읽습니다. 그런데 그중 대부분은, 사고 현장에서 알기가 어렵습니다.

12대 중과실 전체 목록

교통사고는 원칙적으로 형사재판까지 가지 않습니다. 종합보험에 들어 있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막아 둔 법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입니다. 이 보호막이 뚫리는 열두 개의 구멍이 12대 중과실입니다. 사람이 다친 사고에서 여기 해당하면, 보험도 합의도 소용없이 형사사건이 됩니다.

12대 중과실이런 경우입니다현장에서 바로 아나?
1. 신호위반신호·경찰 수신호·안전표지 지시 위반△ 노란불이면 복잡해집니다
2. 중앙선 침범중앙선을 넘어서 (불법 유턴·후진 포함)△ ‘어쩔 수 없었다’ 다툼
3. 20km/h 초과 과속제한속도보다 시속 20km 넘게○ 측정 기록
4. 앞지르기·끼어들기 위반금지 구역 추월, 이른바 ‘칼치기’△ 어느 지점, 어떤 방법이었나
5. 철길건널목 통과방법 위반건널목 일단정지 등 위반○ 정지 여부
6.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건너는 보행자를 보호하지 않고△ 보행자가 어디를, 언제
7. 무면허 운전면허 정지 중 운전 포함○ 조회 한 줄
8. 음주·약물 운전술·약물에 취한 상태로○ 혈중알코올 수치
9. 보도(인도) 침범차가 인도로 올라가△ 어떤 경위로 올라갔나
10. 개문발차승객이 내리기 전에 출발△ ‘두 발’이 어디 있었나
11. 스쿨존 사고(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상해○ 장소·시간·나이
12. 화물 낙하실은 짐을 떨어뜨려 사고△ ‘필요한 조치’를 했었나

여기에 셋이 더 있습니다. 뺑소니(구호조치 없이 이탈), 음주측정 거부, 음주측정 방해는 열두 개 목록과 별도로 법이 따로 빼놓은 사유입니다. 목록에 없다고 안심하면 안되죠.

그런데 — 내 사고가 여기 해당하는지?

표의 마지막 열을 보면, ○는 다섯 개뿐입니다. 음주 수치, 면허 조회, 속도 측정처럼 숫자와 서류가 정해 주는 것들입니다.

나머지 일곱 개는 △ — “사고 순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나”를 다시 세워야 결론이 나는 것들입니다. 노란불로 바뀐 순간 차가 어디에 있었는지, 핸들을 꺾은 게 어쩔 수 없었는지, 보행자가 언제 발을 뗐는지. 이건 현장에서 아무도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출동한 경찰관의 “신호위반으로 보이네요”도 접수 단계의 소견이지 판정이 아닙니다. 판정은 교통조사계 수사를 거쳐 검찰 단계에서 죄명이 붙으며 이뤄지고 — 아래에서 보시겠지만, 법원까지 가서도 뒤집힙니다.

○도 애매할 수 있는데, △는 더 애매합니다. 소위 ‘문철해보자!’ 라는 그런 상황이 자주 나오겠죠.

이 대목에서, 전설의 명짤을 안 짚고 갈 수가 없습니다. -_-; 경제 방송을 하는 슈카가 폭락장에서 “그럼 이 하락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되물었던 그 장면입니다.

“대응해야 하나? 너가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12대 중과실도 구조가 똑같습니다. 사고 직후에 12대 중과실 해당 여부를 판별해서 대응하겠다는 계획 — 판별해야 하나? 그 경황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을까? 판사들도, 한문철도 종종 헷갈리기도 하는데요.

사건 하나 — 노란불

인천의 한 교차로. 운전자는 시속 61km쯤으로 접근하고 있었고, 코앞에서 신호가 황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속도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도 정지선 앞에 설 수 없는 거리였습니다. 운전자는 그대로 진입했고, 왼쪽에서 오던 오토바이와 부딪혔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무죄로 봤습니다. 설 수 없는 거리에서 서라는 건 교차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라는 말이 되어 오히려 위험하다는 논리였습니다. 상식적으로 들립니다. 대법원이 뒤집었습니다. 교차로에 들어가기 전에 황색으로 바뀌었다면, 정지거리가 정지선까지의 거리보다 길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멈췄어야 한다는 겁니다(대법원 2024도1195). 사건은 유죄로 돌아왔고, 2025년 3월 대법원이 확정했습니다(대법원 2024도19370).

엄청나게 논란이 많은 판결이기는 했지만, 이 판결로 기준 자체는 명확해졌습니다. 황색으로 바뀐 순간 차체 일부라도 교차로에 들어가 있었으면 신속히 통과하는 게 맞고, 들어가기 전이었으면 설 수 있었든 없었든 멈추지 않은 것이 신호위반입니다. 그래서 다툼은 ‘설 수 있었나’가 아니라 **‘황색이 켜진 정확한 순간, 내 차가 어디 있었나’**로 옮겨 갔습니다. 0.5초 차이의 문제고, 그건 기억이 아니라 블랙박스 프레임과 신호 주기 기록으로만 증명됩니다.

이런 판단을, 사고 순간에 운전석에서 스스로 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신호위반은 아니지?” 라는 판단이 아니라 — 나중에 다툴 재료를 지키는 일이 현실적이겠죠.

사건 둘 — “어쩔 수 없었다”

중앙선도 같은 구조입니다. 대법원은 사고 지점이 중앙선 너머라고 해서 전부 중앙선 침범 사고로 보지 않습니다. 부득이한 사유 없이 넘었고, 그 월선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일 때만입니다(대법원 98도832).

인정된 사건이 있습니다. 갓길에 정차한 차를 뒤늦게 발견해 가볍게 부딪힌 운전자가, 더 큰 충돌을 피하려고 순간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크게 꺾어 중앙분리대를 넘었고, 반대 차로의 차와 부딪혔습니다. 사고 지점만 보면 명백한 반대 차로 사고인데, 대법원은 긴박한 회피였다며 중앙선 침범 사고가 아니라고 봤습니다(대법원 86도1142).

부정된 사건이 더 많습니다. 택시가 결빙 노면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은 사건 — 하급심은 어쩔 수 없었다고 봐줬지만 대법원이 뒤집었습니다(대법원 95도1232). 도로가 넓게 얼면 제한속도의 절반 아래로 줄여야 하는데, 그 도로 제한속도는 40km, 택시는 30km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저속인데, 빙판 기준으로는 과속. 그래서 미끄러짐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니라 과실이 됐습니다. 폭 5.7m 좁은 길에서 긴 트레일러가 반대 차로를 밟으며 우회전하다 낸 사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대법원 2000도5848). 길이 좁아 불편했다는 건 ‘어쩔 수 없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면도로 골목은 한 겹 더 꼬입니다. 한쪽에 차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어 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길 — 그 골목에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면 애초에 12대 중과실의 ‘중앙선 침범’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법이 말하는 중앙선은 노면에 실제로 설치된 황색선이지 가상의 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도로 중앙의 오른쪽으로 다닐 의무는 남아 있어서, 형사 문제는 비켜 가도 민사 과실비율에서는 도로 중앙 — 말하자면 가상의 중앙선 — 을 기준으로 따집니다. 황색선이 있는 도로였다면 다시 형사 문제로 돌아오고요. 같은 ‘넘었다’가 골목이냐 황색선이냐, 형사냐 민사냐로 갈라지는 겁니다.

노면에 황색선이 있었는지, 어느 지점부터였는지, 핸들을 꺾기 직전에 무엇이 보였는지. 역시 전부 재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시간대별로 할 일

저 슈카의 명짤에는 짝이 되는 그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름하여 “하락장 대응으로 돈을 잃는 경로” — 대응한답시고 팔았다가, 극심한 후회에 다시 샀다가, 폭풍 후회하며 또 팔았다가. 어설픈 대응을 거듭할수록 계좌가 더 깊이 녹는 차트입니다. 요지는 분명합니다. 안 해서 망하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해서 더 망하는거죠.

…교통사고에도 똑같은 경로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제가 잘못 본 것 같아요”라고 어설픈 자가진단부터 말해 버리고, 집에 와서는 밤새 판례를 검색하고, 그러는 동안 블랙박스는 덮어쓰기로 지워지고, CCTV 보존 요청은 아무도 안 해 둔 상태. 대응을 한다고 했는데, 판정은 못 바꾸고 재료만 잃은 경로입니다.

그래서, 12대 중과실에 ‘대응해야 하나’ 라고 물었을 때, 제 추천은 ‘12대 중과실’에 집착하지 말고, 실제 할 수 있는 대응을 정리해두는 겁니다. 즉, 12대 중과실 판정은 현장에서 못 합니다. 그런데 판정을 다툴 재료는 현장에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니, ‘대응’ 자체는 할 수 있습니다. 아래가 ‘잃지 않는 경로’입니다.

사고 직후, 그 자리에서

  • 다친 사람 구호와 신고가 먼저입니다. 이걸 건너뛰고 자리를 뜨면 12대 중과실이 아니라 뺑소니 문제가 됩니다.
  • 차를 빼기 전, 네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 둡니다. 두 차의 위치, 노면(황색선·정지선·결빙 여부), 신호등이 한 프레임에 들어가게.
  • 상대 차량과 목격자 연락처를 받습니다. 주변에 블랙박스 단 차가 서 있었다면 그 차도요.
  • 그리고 말조심입니다. 경황없는 현장에서 불확실한 기억을 단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노란불에 들어간 것 같아요” 한마디는 진술로 남고, 나중에 블랙박스가 다른 이야기를 해도 계속 따라다닙니다.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 확실한 건 확실한 대로, 흐린 부분은 “영상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로 남겨 두시라는 겁니다.

오늘 안에

  • 내 차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뺍니다. 차를 계속 쓰면 주차 녹화가 돌면서 사고 영상 위에 덮어쓰기가 시작됩니다. 용량에 따라 하루 이틀 만에 지워지기도 합니다. 카드를 빼서 보관하거나 통째로 백업합니다.
  • 주변 상가·건물 CCTV 보존을 요청합니다. 사설 CCTV는 법정 보관 기간이 없어서 짧으면 며칠 만에 지워집니다. 어렵다고 하면 경찰에 “어느 건물 CCTV 확보 요청”을 바로 넣습니다.

이번 주 안에

  • 길가의 방범 CCTV. 교차로·골목의 지자체 카메라는 개인정보 문제로 본인이 직접 받을 수 없고 수사기관을 통해서만 나옵니다. 보관도 30일 안쪽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습니다. 사고 접수하면서 “몇 번 교차로 방범 CCTV 보존·확보 요청”을 명시해 둡니다.
  • 아파트 단지 CCTV. 규칙상 30일 이상 보관하게 돼 있고, 본인이 찍힌 영상은 열람 청구가 됩니다. 다른 차나 사람이 함께 찍힌 영상은 수사기관을 거치는 게 원칙입니다.

조사받으러 가기 전에

  • 경찰이 사고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서류로 확인합니다. 어떤 서류를 언제 뗄 수 있는지는 교통사고사실확인원 글에 정리돼 있습니다.
  • 에어백이 터질 정도의 사고라면 차량 사고기록장치(EDR)에 충돌 전후 속도·브레이크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진술 전에 시간 순서를 스스로 정리해 봅니다. 확보한 영상과 어긋나는 기억은, 조서에 적히기 전에 바로잡는 게 몇 배 쉽습니다.

남는 일

여기까지는 혼자 하실 수 있고, 해 두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다음이 남습니다. 확보한 블랙박스 프레임을 신호 주기와 맞춰 보는 일, ‘부득이한 사유’를 인정한 판례와 부정한 판례 옆에 내 사고를 놓아 보는 일, 그리고 위반은 있었더라도 그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를 다투는 일. 판정이 바뀌면 사건은 형사재판이 아니라 보험 처리로 돌아갑니다 — 버스 개문발차에서 ‘두 발’의 위치 하나로 공소기각이 난 사건들을 지난 글에서 보셨듯이요.

그 단계는 판례를 옆에 두고 하는 일이라, 목록을 외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가능하면 변호사의 도움을(가능하면 제 도움이면 더 좋겠군요)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단계까지 재료가 살아서 도착하면, 사건의 절반은 이미 준비돼 있는 셈입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상담 99,000원, 원데이 리포트 990,000원. 수임 시 전액 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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