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절차 · 2026년 8월 20일 · 변호사 김영빈
영장꺾기 - 올해 구속영장을 세 번 꺾었습니다
구속영장 심문은 수사기관이 몇 달을 준비하고 변호인이 하루를 준비하는, 형사 절차에서 가장 불리하게 시작해 가장 빨리 끝나는 싸움입니다. 영장청구서 몇 장에서 상대의 설계도를 읽고 접견실의 당사자에게서 어긋난 지점을 확인해 받아친, 올해 세 번의 기각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수사기관은 몇 달을 준비하고, 변호인은 하루를 준비하고, 결론은 그날 나옵니다.
영장을 ‘꺾는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가족은 결말이 이미 정해졌다고 받아들입니다. 수사기관이 영장까지 청구했다면 무언가 확실한 것이 있겠거니 하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속영장은 청구된 다음에 다투는 절차가 따로 있고, 그 절차에서 뒤집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들 사이에 쓰는 은어가 하나 있습니다. 영장을 ‘꺾는다’는 말입니다. 쓰는 변호사도 있고, 점잖지 않다며 안 쓰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기각되었다’는 말의 주어는 법원이지만, 그 결과는 저절로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으면 청구서가 그린 그림이 그대로 결론이 됩니다. 누군가 그 그림의 어딘가를 부러뜨려야 결론이 바뀝니다. 영장은 기각되는 것이 아니라, 꺾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구속영장을 세 번 꺾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싸움의 조건부터 말씀드려야 합니다. 왜 하필 ‘꺾는다’ 같은 말이 붙었는지는 조건을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몇 달 vs. 하루
수사기관은 구속영장 한 건을 치기 위해 몇 달을 수사합니다. 길게는 몇 년입니다. 고소인과 참고인을 부르고, 계좌를 뒤지고, 압수물을 분석하고, 그렇게 쌓은 것 전부를 딛고 청구서를 씁니다.
변호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보통 하루나 이틀입니다. 심문 전날 저녁에 영장청구서가 팩스로 도착하고, 다음 날 오후면 판사 앞에 서야 합니다. 미리 선임되어 있던 사선 사건이라면 며칠의 시간이 더 있기도 하지만, 그래 봐야 상대가 쌓아 온 몇 달 앞에서는 오차 범위입니다.
기록은 더 불리합니다. 이 단계는 본안 재판처럼 수사기록을 통째로 열람하며 준비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몇 달치 수사기록은 전부 저쪽에 있고, 이쪽 손에 쥐어지는 것은 영장청구서 몇 장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몇 달 대 하루. 기록 전부 대 몇 장. 조건만 보면 성립이 안 되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의 결론은 그날 나옵니다. 형사 절차 전체를 통틀어 이렇게 빨리 결과가 확정되는 싸움은 없습니다. 판결은 몇 달 뒤에 나오고 항소하면 다시 몇 달이지만, 구속영장은 심문이 끝난 그날 밤, 사람이 집으로 오거나 구치소로 갑니다.
가장 불리하게 시작해서, 가장 빨리 끝나는 싸움. 그게 영장입니다.
상대의 ‘설계도’
그러면 몇 장으로 무엇을 하느냐. 여기에 이 싸움의 반전이 있습니다.
영장청구서는 수사기관이 몇 달의 수사를 스스로 요약한 문서입니다. 판사를 설득해 사람을 가두려면 가진 패 중에 가장 강한 것들을 골라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숨기고 아낄 수 있는 문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몇 장은 그냥 종이 몇 장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손으로 그린 공격의 설계도입니다. 어느 사실을 기둥으로 세웠는지, 어느 대목을 뭉뚱그리고 지나갔는지, 무엇을 도망할 염려의 근거로 잡았는지가 다 거기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인에게는 수사기관에 없는 정보원이 하나 있습니다. 당사자 본인입니다. 수사기관은 그 사람을 조사실에서 피의자로 만났지만, 변호인은 심문 전날 밤 접견실에서 사람으로 만납니다. 청구서가 그린 사람과 접견실에 앉아 있는 사람을 겹쳐 놓고 읽으면, 두 그림이 어긋나는 지점이 보입니다.
그 지점이 허점입니다. 하루의 준비란 결국 두 가지입니다. 몇 장에서 상대의 의도를 읽는 것, 그리고 당사자에게서 그 의도가 어긋난 지점을 확인하는 것. 남은 일은 그 지점을 정확하게 받아치는 것뿐입니다.
올해 세 번의 기각은, 받아친 지점이 전부 달랐습니다.
1. 도주할 수 없는 사람
첫 사건은 예비군 훈련 불참이었습니다. 예비군법 위반으로도 구속영장이 청구되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청구됩니다. 훈련 불참이 여러 해 반복되고, 벌금이 밀려 노역장까지 다녀오고, 그 뒤로도 훈련과 조사에 계속 나가지 않으면 청구서의 논리는 이렇게 완성됩니다. 여러 차례 제재에도 불응을 반복하였으므로, 도망할 염려가 있다.
종이 위에서는 완벽합니다. 부르는데 안 나온 사람이니, 풀어주면 달아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청구서는 심문 전날 밤에 도착했고, 저는 그날 밤 접견을 갔습니다. 접견실에서 만난 사람은 청구서 속의 ‘도망할 사람’과 달랐습니다. 몇 주에 한두 번 담배를 사러 나가는 것이 외출의 전부인 사람. 어머니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사람. 직장에서 심한 폭행을 당한 뒤로 낯선 사람 앞에 서면 숨이 가빠져서, 조사받으러 가는 버스에서 내려 그냥 돌아와 버린 사람. 그리고 이 사람이 체포된 곳은 집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였습니다.
청구서가 도망의 증거로 쌓은 불응의 기록을, 접견실의 사람이 뒤집었습니다. 이 사람은 도망 다닌 것이 아니라 어디로도 가지 못한 것입니다. 몇 년 치 불응이 증명하는 것은 도주의 능력이 아니라 집 반경 몇백 미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라고, 도망할 염려는 도망할 힘이 있는 사람에게 붙는 것이라고 받아쳤습니다.
영장은 기각되었습니다. 접견실에서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전략도 항변도 아니었습니다. 여기 있기 싫다는 말,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2. ‘사실’의 싸움
두 번째는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죄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시 억대 피해액의 고소가 들어온 상황. 영장 실무에서 이 조합은 발부 공식에 가장 가깝습니다. 미리 선임되어 있던 사건이라 시간은 며칠 있었지만, 상대가 쌓아 온 기록의 두께는 그만큼 더 두꺼웠습니다.
이 사건에서 받아친 지점은 청구서의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영장청구서는 수사기관이 정리한 문서라서, 읽는 순간 사실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청구서에 적힌 것은 사실이 아니라 아직 가설입니다. 거래 기록과 시간선을 전부 분해해 보니, 청구서가 범행 기간이라고 적은 시점에 피의자와 피해자는 직접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고, 청구서는 그 가운데를 지운 채 시작과 끝만 이어 그려놓고 있었습니다.
설계도의 기둥 하나가 어긋난 것이 확인되면, 나머지 줄들도 전부 다시 읽히게 됩니다. 영장은 기각되었고, 그 사람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이야기는 예전에 한 편으로 따로 적어두었습니다. 청구서라는 문서를 변호인이 어떻게 분해해서 읽는지가 궁금하시면 그 글에 자세합니다.
3. 압축의 미학
세 번째가 올해 가장 최근의 기각입니다. 스토킹 사건이었고, 접근을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진 직후에 다시 연락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안이었습니다. 전과도 있었습니다. 청구서에는 발부 사유가 줄줄이 서 있었고, 어느 하나 지어낸 것이 없었습니다.
기록을 뜯어보니 공격할 지점들이 보였습니다. 절차의 형식적인 흠들, 청구서 문구의 빈틈들. 서면으로 다투면 이길 수 있어 보이는 카드가 여럿 잡혔습니다.
전부 버렸습니다.
행위 자체가 무거운 사건에서 형식을 공격하면, 영장재판부에는 딱 한 줄로 읽힙니다. 반성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절차의 흠이나 찾고 있다. 그 인상 하나가 발부 사유를 완성해 줍니다. 상대의 설계도를 읽는다는 것에는, 어느 허점이 잡으라고 놓인 미끼인지 알아보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이길 수 있어 보이는 싸움들이 사실은 전부 지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면은 전선 하나로 압축했습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인정한다. 다만 이 사건이, 재판도 하기 전에 이 사람의 몸을 가둬야만 하는 사건인가. 구속이 아니어도 법에는 이 사람을 통제할 수단이 단계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조문으로 깔았고, 나머지는 심문정에서 말로 채웠습니다. 판사 앞에서는 변호인이 무엇을 다투지 않는지가, 무엇을 다투는지만큼 크게 들리는 날이 있습니다.
영장은 기각되었습니다. 세 건 중에 이 기각이 제일 짜릿했습니다. 버린 카드들의 값이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당일
영장실질심사는 보통 낮에 열리고, 결정은 그날 밤 늦게 나옵니다. 몇 달을 쌓은 청구와 하루를 준비한 대답이 같은 저울에 올라가고, 저울은 그날 기울어집니다.
불리한 조건에서 이긴 승리에는 조건의 몫이 없습니다. 시간이 많아서도, 기록이 두꺼워서도 아니니까, 남는 것은 읽기의 정확성뿐입니다. 상대가 몇 달 동안 다듬어 던진 공을, 날아오는 하루 동안 읽고, 한 번의 스윙으로 넘기는 일. 그리고 그 결과가 유예 없이 그날 밤에 옵니다. 제가 이 싸움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것 말고 다르게 설명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들었다면, 하실 일은 하나입니다. 심문 날짜부터 확인하고, 그 전에 변호인을 세우십시오. 변호인이 그 하루를 통째로 쓸 수 있게 하십시오. 심문 전의 하루와 심문 후의 백일은 무게가 다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말을 쓸 생각입니다. 영장을 꺾는다는 말. 이 싸움의 조건과, 이 일의 주어가 누구인지를 그 말만큼 정확하게 담는 표현을 저는 달리 알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