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8월 26일 · 변호사 김영빈

사실적시 명예훼손 - 진실을 말해도 죄가 됩니다

거짓이 아니라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은 성립합니다. 진실에게 열린 문은 형법 제310조의 공익성 하나뿐이고, 감정을 빼고 가장 순수한 진실만 골라 겨눈 조롱은 오히려 명예훼손과 모욕의 그물을 함께 빠져나갑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어디에서 성립하고 어디에서 멈추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지 짚습니다.

진실을 말했는데 왜 고소를 당하는지, 그리고 그 진실이 오히려 방패가 되는 단 하나의 조건을 짚습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 고소장은 그때 날아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고 해봅시다. “쟤, 부모 없는 대머리야.” 그런데 그 말의 대상은 한 글자도 틀린 게 없다면? 그 사람의 부모님은 실제로 안 계시고, 머리숱도 정말 없습니다. 누가 봐도 반짝거리는 대머리이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경찰에서 연락이 옵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들어왔다고요.

억울합니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전부 사실인데 말입니다. 거짓말을 해야 처벌받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형법에서 명예훼손은, 진실을 말해도 성립합니다.

진실은 무죄가 아닙니다 — 형법 제307조 제1항

형법 제307조는 명예훼손을 두 갈래로 나눕니다.

  • 제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 → 2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 제2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 → 5년 이하 징역 등, 훨씬 무겁게

거짓말(제2항)이 더 무거운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진실(제1항)도 엄연히 처벌 대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명예라는 것은 “그 말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가 깎였느냐”로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진실이어도 남의 평판을 무너뜨리면, 법은 그것을 명예훼손으로 봅니다.

여기서 “공연히”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불특정 또는 다수가 알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톡방, SNS, 가게 리뷰, 아파트 게시판이 전형적입니다. 심지어 단 한 사람에게 말했더라도, 그 사람이 퍼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공연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전파가능성).

바로 이 지점에서 오래된 시비가 있습니다. “진실을 말할 자유마저 처벌하는 건 표현의 자유 침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없애자는 주장은 20년이 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차례 이 문제를 다뤘는데,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 역시 헌법이 지키는 가치라며 합헌으로 판단해 왔습니다. 다만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도 매번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아무 소용없는가 — 제310조라는 단 하나의 문

법이 진실에게 딱 하나 열어둔 문이 있습니다. 형법 제310조입니다.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열쇠가 두 개입니다. ① 진실일 것, 그리고 ②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것. 진실 하나만으로는 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공익이라는 두 번째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 기자가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사실대로 보도한다 → 공익이 있으니 문이 열립니다(처벌 안 됨).
  • 앙심을 품고 이웃의 사생활을 사실대로 까발린다 → 공익이 없으니 문은 닫혀 있습니다(처벌).

다행히 법원은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글자 그대로 야박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말을 한 주된 동기가 공익이라면, 부수적으로 사적인 감정이 조금 섞여 있어도 이 문은 열릴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공익성을 누가 증명하느냐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다시 하겠습니다.

가장 잔인한 진실이 오히려 처벌을 피하는 역설

다시 “부모 잃은 대머리”로 돌아옵니다. 이 말을 조롱으로 퍼뜨린 사람은 공익이 0이니, 제310조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형법의 그물이 묘하게 찢어집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적시한 그 ‘사실’이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판례가 말하는 명예훼손의 ‘사실’은 범죄, 부정, 비리처럼 도덕적·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구체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머리다”, “부모가 안 계시다”는 신체적 특징이고 안타까운 가정사일 뿐,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리는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 모욕죄(제311조)로 가면 되지 않느냐. 모욕죄는 “한심한 놈”, “쓰레기 같은 인간”처럼 경멸적인 감정과 평가를 드러내는 표현을 처벌합니다. 그런데 감정 섞인 욕설을 전부 걷어내고 사실만 담담히 나열하면, 이번엔 모욕죄가 요구하는 ‘경멸적 표현’에도 해당하지 않게 됩니다.

즉, “부모 없는 대머리”는 모욕죄도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에미 뒤진 대머리 빡빡이 새끼야”는 모욕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겠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순수하게, 감정을 빼고, 오직 진실만 골라 사람의 아픈 곳을 겨누면 — 명예훼손도 모욕도 애매하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조실부모한 대머리는 그래서 이중으로 웁니다. 진실이라서 위로받지 못하고, 진실이라서 처벌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현실의 법정은 말 한마디가 아니라 전체 맥락을 봅니다. “부모 잃은 대머리 주제에”처럼 전체가 사람을 깔아뭉개려는 의도가 분명하면, 여전히 모욕죄로 처벌될 여지가 큽니다. 하지만 표현을 정교하게 다듬을수록 처벌은 어려워진다는 것 — 바로 이 역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입니다. 그 죄를 없애 버리면, 진실을 무기로 삼은 이 빈틈은 더 넓어집니다.

그래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의 승부처는 결국 제310조입니다. 그런데 이 조문에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내 말이 진실이라는 것도, 그 말의 목적이 공익이었다는 것도, 처벌을 면하려는 사람이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내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할 증거를 모으고, 그 말을 한 목적이 사적인 앙심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이었다는 맥락을 세우는 일. 반대로 고소하는 입장이라면, 상대의 말이 왜 공익과 무관한 순수한 인신공격에 불과한지를 짚어내는 일. 조문 한 줄과 판례가 쌓아 올린 기준 사이에서, 내 사건이 어느 쪽에 서는지를 가려내는 자리입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억울함도, “저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는 확신도, 법정에서는 제310조의 두 열쇠 앞에서 다시 검증됩니다. 그 검증을 혼자 준비하기가 버겁게 느껴지신다면, 그때가 변호인과 상의할 자리입니다.

덧붙이면, 같은 명예훼손이라도 인터넷에 올린 글이라면, 그리고 그 내용이 허위라면 처벌은 한층 무거워집니다(정보통신망법). 온라인에서 벌어진 명예훼손 이야기는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 혼자서도 잘 하시겠지만〉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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