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6월 16일 · 변호사 김영빈
피해자를 닮았는데, 피해자가 없습니다
AI가 만든 얼굴은 미의 수렴 때문에 실존 인물과 닮을 수밖에 없는데, 딥페이크 처벌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은 '실존 대상자'를 전제합니다. 대법원 2024도17801을 빌려, 법이 '대상자'를 찾지 못하는 자리를 짚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면을 채웁니다. 지난 1년 사이 디지털 성범죄로 검거된 사람만 3천5백 명을 넘었습니다. 분노는 한 방향으로 모입니다. 처벌이 약하다, 더 세게 처벌하라.
그런데 처벌의 강도를 말하기 전에, 한 번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 법은 누구를 피해자로 보는가.
‘대상자’라는 한 단어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 조항을 펴 보면, 정교하게 짜인 처벌의 사다리가 보입니다. 합성물을 만든 사람도, 퍼뜨린 사람도 7년 이하.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에 뿌리면 3년 이상. 그리고 만들지도 퍼뜨리지도 않고 그저 사거나, 갖거나, 저장하거나, 본 사람도 3년 이하(제4항). 만든 사람부터 그저 본 사람까지 촘촘히 걸어 둔 그물입니다.
그런데 이 그물 전체가, 딱 한 단어에 매달려 있습니다.
조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 등을 그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편집·합성·가공한 자.” 세 군데에 같은 전제가 박혀 있습니다. 사람의, 대상으로, 대상자의. 이 법은 특정한 실존 인물 — 대상자 — 이 있어야 비로소 작동합니다. 누군가의 실제 얼굴을 가져다 변형했을 때 성립하는 죄입니다. 제작도 유포도 시청도, 그 ‘대상자’가 있어야 처벌됩니다. 사다리 전체가 이 못 하나에 걸려 있는 셈입니다.
전형적인 딥페이크는 여기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연예인의 얼굴, 같은 반 친구의 얼굴 — 실존하는 대상자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런데, AI는 대상 없이 만듭니다
문제는 기술이 그 전제를 비껴가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요즘의 생성형 AI는 누군가의 얼굴을 가져다 합성하지 않습니다. 문장 몇 줄로 처음부터 새 얼굴을 생성합니다. 세상에 없던 얼굴입니다. 대상자가 없고, 변형할 원본도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을 짚어야 합니다. 추(醜)함은 천차만별이지만, 미(美)는 수렴합니다. 아름다운 얼굴은 결국 좌우대칭과 일정한 비율로 모입니다. 그래서 AI에게 “아름다운 사람”을 만들라고 하면, 그 결과는 어딘가의 실존 인물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닮음은 우연이 아니라 거의 필연입니다.
그러나 — 닮은 것과 그를 대상으로 한 것은 다릅니다. 제작자는 그 사람의 사진을 쓰지도, 그 사람을 떠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실존 인물은 제14조의2가 말하는 ‘대상자’일까요? 누구의 의사에 반한 것일까요? 못이 뽑힌 자리에서, 사다리 전체가 허공에 뜹니다.
법원이 긋기 시작한 선
대법원이 마침 이 경계의 첫 자락을 건드렸습니다. 2025년 8월의 판결입니다(대법원 2025. 8. 14. 선고 2024도17801).
실제 아동의 얼굴에 다른 여성의 나체를 합성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합성물이 아동·청소년성착취물에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냐가 쟁점이었는데, 대법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합성 사진 등은 실제 인물인 아동·청소년 그 자체가 아니라 창작자가 만들어낸 아동·청소년의 이미지에 해당하여, …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 얼굴을 가져다 만든 합성물조차, 법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만들어낸 이미지’로 본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이미지’를 갈라내기 시작한 판시입니다.
그럼 이 사건은 어떻게 처벌됐을까요. 아동·청소년의 경우, 법(청소년성보호법 제2조 제5호)이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까지 처벌 대상에 명문으로 넣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실존 인물이 아니어도, ‘표현물’이면 걸립니다.
성인에게는, 그 그물이 없습니다
여기서 두 법의 구조가 갈립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표현물’까지 포섭합니다. 가상이든 생성이든, 명백히 아동으로 인식되면 처벌됩니다. 그러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제14조의2에는 그 ‘표현물’ 조항이 없습니다. 오직 ‘대상자’뿐입니다.
그래서 성인의 얼굴을 닮은 AI 순수 생성물은 — 미의 수렴 때문에 누군가와 분명히 닮았는데도 —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아 제14조의2를 빠져나가고, 아동이 아니니 ‘표현물’ 그물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 순수 생성물의 대상자 특정을 정면으로 판단한 판례는 아직 없습니다. 2024도17801도 어디까지나 실제 얼굴을 합성한 사안이었으니까요.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는 다른 글에서, AI가 만든 가상의 미성년 캐릭터에까지 형법을 들이대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피해자가 없는 곳에 형벌이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한 번 더 의심받아야 하니까요. 그 글이 “피해자가 없는데 처벌하는 곳”을 물었다면, 이 글은 그 뒷면입니다. 피해자가 다친 것 같은데, 법이 ‘대상자’를 찾지 못하는 곳.
같은 뿌리의 질문입니다. AI가 만든 이미지 앞에서, 누구를 피해자로 볼 것인가. 법은 오랫동안 ‘실존하는 대상자’를 못으로 박아 두고 그 위에 처벌을 쌓아 왔습니다. 기술은 이제 대상 없이, 대상을 닮은 것을 만듭니다. 그 한 단어가 흔들리는 자리에서, 우리 법은 아직 다음 문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더 세게 하자는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처벌이 걸릴 ‘대상자’가 누구냐는, 한 걸음 앞선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