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5월 17일 · 변호사 김영빈

사건은 아직 없는데, 검열은 이미 굴러갑니다

AI 교복 합성 — 사건은 아직 없는데 검열이 먼저 굴러가는 자리에 대하여.


연합뉴스 5월 15일 자 기사 한 편이 떴습니다. AI 채팅 플랫폼에서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캐릭터들이 다수 만들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복 입은 여학생, 12살 소녀, 키 140cm 25kg이라고 적힌 캐릭터들. 댓글창은 익숙한 결로 굴러갔습니다.

“AI가 실제 아동이냐.” “미성년 남돌 게이팬픽은 왜 논란이 안 되는지?” “실제 인물 합성도 아닌데 성착취라는 단어를 쓴다고?” “알페스는 미러링 고발됐는데 수익 낸 몇 빼고 다 불송치였습니다.” “피해자 없는 범죄.”

분노가 향하는 곳은 한 가지였습니다. 같은 결의 표현물인데 AI 교복은 신고받고 모니터링되고 비공개 처리되는데, 미성년 남돌 게이팬픽이나 알페스는 사실상 방치된다는 비대칭. 사람들이 화내는 것은 처벌 자체가 아니라 그 비대칭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한 번 더 읽으면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 아직 사건은 없습니다. 기소된 사건도, 처벌받은 사건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도 본 기사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방심위가 모니터링을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 플랫폼이 자체 공지로 비공개 처리를 시작했고, 이용자들은 이미 우회 방법을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법이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검열은 이미 굴러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 수 있는지가 본 글의 첫 발견입니다.

기사에 인용된 변호사 발언의 결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2조 제5호의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정의에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고, 그 표현물이 성적 행위를 표현하는 형태로 등장하면 처벌 조항(제11조, 무기 또는 5년 이상)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결.

여기서 멈춰서 그 문구를 다시 봅시다.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이것이 정확히 어디서 끊기는 걸까요? 교복을 입혔으면 명백한 걸까요? 140cm 25kg이라고 적었으면 명백한 걸까요? “초등학생”이라는 단어 하나가 캐릭터 설정에 들어가면 명백한 걸까요? 같은 외형에 “20살”이라고 적으면 명백하지 않은 걸까요?

법은 그 경계를 정해주지 않습니다. 경계는 결국 수사기관이, 그리고 재판부가 사건마다 정해갑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 그것입니다. 법에 구멍이 있다.

그리고 이 구멍이 사건화 전 자율 검열을 만듭니다. 플랫폼 입장에서 보세요. 자기 서비스에 어떤 캐릭터가 그 모호한 경계에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를 법 조문만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모르면 안전선을 최대치로 칩니다. 처벌받을 영역의 안쪽까지, 모호한 경계의 바깥쪽까지 미리 지웁니다. 헌법학자들이 위축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모호한 법은 그 자체로 사실상의 검열로 기능합니다.

분노가 향하는 비대칭의 진짜 방향이 거기 있습니다. 페미도, 플랫폼 운영자도, 검찰도 아닙니다.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한 문구가 너무 모호해서, 결국 경계 안쪽까지 자율 검열로 깎이는 것. 응징의 사각지대는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발 더 들어가면 더 무거운 결이 보입니다.

가상 캐릭터에 교복을 입혔다고 칩시다. 누가 다쳤을까요? 실재하는 아이가 합성된 것이 아니라면, 그 캐릭터는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습니다. 인격권의 주체가 없고, 명예의 주체가 없고, 초상권의 주체가 없습니다. 그럼 그 표현물을 처벌하는 형법은 어떤 법익을 보호하는 것일까요?

형법학에는 보충성이라는 오래된 원칙이 있습니다. 형법은 다른 모든 수단이 무력한 곳에서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도구입니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 형법이 들어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피해자 없는 범죄에 형법이 들어가는 것은 항상 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를 차례로 위헌으로 본 흐름도 같은 결에 있습니다. 사회의 도덕적 평가만으로 형법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발견.

가상 미성년 캐릭터의 AI 합성도 같은 결입니다. 어떤 법익이 침해되는 것일까요? 사회의 도덕 감정입니까? 그것을 형법으로 보호하면 형법은 도덕의 도구가 됩니다. 그것이 형법이 가장 피해야 할 곳입니다.


여기서 한 줄로 분리할 것이 있습니다. 가상 캐릭터의 곳과 실재 인물 합성의 곳은 다릅니다.

실재하는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를 합성해서 미성년 성적 묘사물을 만든 경우 — 이것은 명확합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가 7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고, 아청법 제11조의 적용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있는 곳. 형법이 들어가야 할 곳. 다툼의 여지가 가장 적은 곳입니다.

그러나 가상 캐릭터에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모호한 문구만으로 같은 형법을 들이대는 것은, 두 가지 결의 곳이 한 조문에 묶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입법의 사각지대입니다.


본 글을 정리하면서 본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 결의 논의가 거의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영역, 형법의 보충성, 명확성 원칙 — 이런 어휘가 일상 공론장에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회가 처벌 강도만 이야기하고 처벌 적정성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분노만 굴러가고 발견은 굴러가지 않습니다.

기사 마지막에 한 변호사가 박은 결이 다시 생각납니다. 명백하게 인식되면 처벌받을 수 있고, 단 순수한 그림이나 만화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한 줄. 같은 문장 안에 처벌의 곳과 처벌의 바깥이 동시에 들어 있는데, 그 사이의 경계는 사회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정해가는 것. 그동안 진짜 피해자가 있는 곳은 별도의 보호 체계로 가시화되지 못한 채 같은 조문에 묶여 있습니다.

응징의 사각지대. 모호한 규정이 만드는 위축, 피해자 없는 범죄에 들어가는 형법, 그 사이의 논의 자체가 굴러가지 않는 공론장. 분노의 진짜 방향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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