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7월 15일 · 변호사 김영빈
'실수였을 뿐인데'… 라는 말, '꽃뱀'이라는 말
무고죄로 갚아주는 일이 왜 생각처럼 안 되는지 — 합의금 1억 5,000만 원을 불렀던 고소인이 징역 6개월을 받기까지 남성 두 명이 재판과 수사를 통과해야 했던 실제 판결(광주지방법원 2025노189), 무죄판결이 곧 무고의 증명이 아닌 이유(대법원 2013도9297·2013도13000), 그리고 무죄를 만든 것도 무고를 잡은 것도 결국 기록이었다는 이야기(서울서부지방법원 2022노338).
무고죄로 갚아주는 일이 왜 생각처럼 안 되는지, 판결문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실수’라고 이야기하고, ‘꽃뱀’이라고 몰아가면?
‘실수’에 관해서는 커뮤니티에 전설처럼 도는 명짤이 하나 있습니다.
(술자리의 성관계가 어째서 ‘실수’일 수 없는지 — 그 모든 단계가 전부 선택이라는 것을 원색적인 표현으로 짚은 게시글입니다. 원문은 네이버 발행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명문입니다 정말. 표현은 거칩니다만, 이 짤이 몇 년째 도는 이유는 정확하기 때문일 겁니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성적 접촉은 술병을 넘어뜨리는 우발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선택이 이어진 행위라는 것. 그리고 — 이 글에서 중요한 건 이 대목인데 —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술김에 실수했다”는 해명을 듣는 방식도 정확히 이것입니다.
이 글은 그 시선 앞에 서게 된 분들께 드리는 글입니다.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은 날,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실수였을 뿐인데. 서로 취해 있었고, 분위기가 그랬고, 이게 고소까지 갈 일인가.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 쪽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실수’라는 생각은 곧 ‘꽃뱀’으로 바뀝니다.
‘나는 당한 거다. 저쪽은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었다.’ - 검색해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결론도 같습니다 — 절대 돈 주지 마라, 무고로 밀어붙여라, 그러면 이긴다.
없는 건 아니지요. 제가 지금 진행 중인 사건에도 당장 의심이 가는 사례가 있습니다.
‘꽃뱀’ - 실재하긴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당연히 무죄가 되는 건지?
첫 번째 남성 — 무죄까지 재판 두 번,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합의금으로 1억 5,000만 원을 부른 여성이 있었습니다. 남성이 지급한 돈은 50만 원이었습니다. 여성은 그 돈을 받고, 남성을 준유사강간죄로 고소했습니다.
고소당한 남성은 기소됐습니다. 1심을 다투고, 항소심까지 갔습니다. 법원은 사건 당시 여성이 의식과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회복한 상태였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고, 그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광주고등법원 2022노396).
그걸 뒤집는 데 재판 두 번이 필요했고, 그 기간 내내 남성은 성범죄 피고인이었습니다. 무죄가 선고되던 날까지, 그 무게는 전부 본인 몫이었습니다.
무죄가 확정됐으니, 1억 5천을 불렀다가 고소한 여성은 이제 무고죄로 처벌됐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죄를 받아도, 상대는 무고가 아닙니다
“내가 무죄면 상대는 자동으로 무고”라는 등식은 법에 없습니다.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고소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고소 내용이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정도로는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입니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도9297 판결). 그리고 무죄판결이란 공소사실이 없었다는 증명이 아니라, 증명이 부족했다는 뜻입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3도13000 판결).
내 무죄는 “검사가 증명하지 못했다”까지만 말해 줍니다. “저 고소는 거짓이었다”는 별도의 증명이 필요한, 완전히 다른 명제입니다. 그 거리만큼 — 성범죄 사건에서 무죄가 나와도 고소인이 무고로 처벌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드뭅니다.
두 번째 남성 — 그리고 징역 6개월
여성은 다시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남성을 강간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한 달 만에 혐의없음 불송치로 사건을 종결했고 — 이번에는 여성이 무고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법정에서 여성은 허위 고소를 자백했습니다. 판결문에는 “고소 취하를 명목으로 피해자(피무고인)로부터 금전을 갈취하려 하였다”는 판단과 함께, 그 사이 또 다른 남성에게 ‘뽀뽀해달라고 말했다’며 500만 원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까지 적혔습니다. 법원은 성범죄 고소를 빌미로 한 금전 요구가 반복되고 있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25. 4. 23. 선고 2025노189 판결).
선고된 형은, 겨우 징역 6개월입니다.
재판 확정 전에 무고를 자백하면 형을 반드시 감경하거나 면제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는 사정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 이 여성을 멈춰 세우는 데 남성 두 명이 각각 재판과 수사를 통과해야 했고, 본인의 자백이 필요했고, 그렇게 나온 결과가 6개월입니다. 무고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입니다만, 그 숫자와 실무 사이의 거리가 이 정도입니다.
‘꽃뱀은 무고로 갚아준다’는 전략의 실물이 이렇습니다. 틀린 전략이라서가 아니라 — 실제로 이 여성은 유죄를 받았으니까요 — 너무 느리고, 너무 비싸고, 내 사건을 지켜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고는 상대를 벌하는 카드지, 나를 지키는 카드가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싸우는 대신 계산을 합니다
부인하는 성범죄 사건은 수사에 1년, 기소되면 재판에 다시 1년이 보통입니다. 제가 변호인으로 무죄를 받아낸 아청법 강간 사건은 고소장 접수부터 선고까지 2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내내 피의자·피고인 신분으로 살아야 하고, 가정과 직장에 알려질 위험은 시간에 비례해 커집니다. 지면 형법의 강간죄는 징역 3년부터 시작하고, 신상정보 등록이 따라옵니다.
끝나는 시점도 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건 하나는 — 특정되지 않게 뼈대만 적으면 — 지인 소개로 몇 차례 만난 상대와 함께 만취한 날의 신체 접촉이 문제 됐는데, 경찰이 혐의없음 불송치, 불복을 거쳐 검찰이 다시 혐의없음을 냈는데도, 고소인 측 불복 절차 끝에 1년 뒤 기소가 이뤄져 지금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혐의없음을 두 번 받고도 법정에 서는 절차 — 이게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말하던 분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결국 합의서에 서명합니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계산이 그렇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합의의 무게는 실제로 큽니다.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은 특별감경인자라서, 권고형량 구간 자체를 아래로 옮깁니다. 제가 항소심을 맡았던 한 사건에서는 피고인 두 명 중 한 명은 1심에서 수천만 원에 합의해 처벌불원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합의가 안 되어 항소심에서 같은 규모의 돈을 공탁했습니다. 판결문은 합의한 쪽의 권고형 구간을 낮췄고, 공탁한 쪽에는 “현재까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상대가 받아 준 돈과 법원에 맡긴 돈은 값이 다릅니다.
문제는 상대도 이 계산을 전부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구 금액은 내가 잘못한 것의 값이 아니라 내가 잃을 수 있는 것의 값으로 책정됩니다. 몇 년의 시간, 지면 잃는 전부, 알려질 위험 — 그 총합 언저리에서 숫자가 나옵니다. 고소장보다 돈 이야기가 먼저 도착하는 사건들이 있는 이유입니다.
합의가 틀린 답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건에 따라 합의가 맞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건 기록을 다 펼쳐 놓고 계산한 결과여야지, 겁에 질린 항복이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서명이라도 둘의 조건과 금액은 전혀 다르게 나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
무죄를 받아낸 쪽, 상대의 무고까지 잡아낸 쪽은 뭐가 달랐을까요. 억울함의 크기는 아닙니다. 변호인은 “억울하다”는 말을 일종의 외교적 수사로 듣습니다. 냉정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사건에 관해 알려주는 것이 없어서입니다. 교도소에 천 명이 있으면 천 개의 억울함이 있다고들 하지요. 그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억울함들이 판결문 앞에서 가진 무게가 전부 같았다는 것은 압니다. 변호인이 듣고 싶은 것은 억울함의 크기가 아니라, 그날 몇 시에 어디서 무엇이 있었고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가입니다.
판결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직장 선후배 사이에 여러 차례 합의된 성관계가 있었고, 회사 갈등이 불거진 뒤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합의금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사고소하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카카오톡으로 지급을 독촉하면서, 남성의 “와이프”와 “뱃속의 아가”를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강제추행·준강간 등 네 건의 고소가 접수됐습니다.
이 남성은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상대가 공갈미수와 무고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습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노338 판결, 대법원 2023. 1. 16.자 2022도15341 결정). 무엇이 그를 살렸느냐 — 녹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서로 합의해서 관계를 가진 사실이 잘 드러나는 녹음파일과 대화 내용”이 있었고, 법원은 그 녹취의 정황과 합의금 요구 메시지들을 근거로 고소가 허위라고 인정했습니다. 판결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유력한 증거가 되는 성범죄에 대한 무고는, 객관성이 담보되는 다른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피무고자가 결백을 입증하기 쉽지 않고, 유죄가 확정되는 경우 피무고자에게 중형이 선고되며 각종 부수처분 등으로 사회적 오명을 쓴 채 살아갈 가능성이 크므로, 무고자에 대하여 엄한 처벌을 할 필요가 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노338 판결 이유 중
제가 무죄를 받아냈던 그 아청법 강간 사건도 같은 자리에서 갈렸습니다. 고소장보다 억대의 돈 요구가 먼저 왔고, 요구에 응하지 못하자 고소장이 접수된 사건이었습니다. 의뢰인에게는 상대 쪽에서 걸려온 전화의 녹음이 있었고 — 그 통화에서 상대는 요구 금액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 사건 전후의 메시지와 이동·결제 기록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며 고소 동기가 “합의금을 지급받는 데에 있지 않은가 의심되기도 한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그 사건의 전말은 따로 적어 둔 글이 있습니다.
무죄를 만든 것도, 무고를 잡은 것도, 억울함이 아니라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실 일도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
전부 보존하십시오. 메시지, 통화기록, 결제내역, 이동기록 — 불리해 보이는 것까지 전부. 겁이 나서 지우는 순간 증거인멸이 되고, 남은 기록의 신빙성까지 무너집니다.
-
길게 해명하지 마십시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미안한데”로 시작하는 새벽의 장문 카톡은 전부 상대의 증거가 됩니다. “미안하다”는 맥락이 잘린 채 인정의 증거로 제출됩니다. 조사실에서의 “실수였다”도 같은 자리입니다 — 첫머리의 그 명짤대로, 이 말은 이렇게 번역됩니다. 행위는 전부 있었다, 다만 나쁜 뜻은 없었다. 앞부분은 자백이고, 뒷부분은 증명할 수 없는 심경입니다.
-
돈 요구는 기록되게 두십시오. 흥분해서 끊거나 지우지 말고, 변호인을 통해 대응하십시오. 위에서 본 무고·공갈 유죄가 전부 그 기록 위에서 나왔습니다.
-
첫 진술 전에 변호인과 정리하십시오. 첫 진술의 틀은 사건 끝까지 갑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되겠지” 하고 혼자 조사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 유형에서 가장 비싼 실수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건으로 사무실에 오시는 분들은 날벼락을 맞은 분들이 아닙니다. 거의 예외 없이, 그 자리에 들어간 분들입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상대와 단둘이 마시는 술, 만취한 상대, 새벽의 집. 결백하더라도 그 그림 위에서는 결백조차 몇 년짜리 증명 대상이 됩니다. 위험선은 상대방 집 현관에 그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 술자리에 앉을 때 이미 밟은 겁니다.
정말로, 조심할 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