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7월 26일 · 변호사 김영빈
다친 사람이 회사를 걱정합니다
산재 상담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질문은 '산재 신청하면 회사에 불이익이 있나요'입니다. 다친 사람이 자기 손해보다 일터를 먼저 계산합니다. 요양급여 신청서의 사업주 확인은 2018년에 폐지되어 회사 동의 없이 혼자 신청할 수 있고, '산재 처리하면 회사가 손해'라는 말은 상시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사실이 아닙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은폐를 권한 사람까지 처벌하며, 산재 신청을 이유로 한 해고는 은폐죄보다 무겁게 금지됩니다.
노동 상담 게시판을 한참 넘기다 보면 이상한 일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산재에 관한 질문이 수천 건 쌓여 있는데, 제목이 대개 이런 식입니다.
산재 신청하면 회사에 불이익이 있나요?
다친 사람은 글쓴이입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것도, 월급이 끊긴 것도 글쓴이고요. 그런데 문장의 주어가 회사입니다. 더 이상한 건, 이런 제목이 “산재 신청하면 저한테 불이익이 오나요”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병원비를 자기 카드로 결제한 사람
어떤 분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무거운 대차를 밀다가 복부를 부딪혔습니다. 혈관이 터져 2주를 입원했습니다. 회사 상급자가 찾아와 말했다고 합니다. 산재로 처리하면 위쪽 사람들한테 피해가 갈 수 있다고요.
그분은 육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자기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나중에라도 산재로 바꿀 수 있느냐고요.
또 다른 분은 근무 중에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치료비가 20만 원을 넘어가자 병원에서 먼저 산재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망설입니다. 이 정도 다친 걸로 산재를 신청하면 직장에서 눈총을 받을까 봐서요.
두 분 다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 다, 자기 손해보다 먼저 다른 것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회사 도장은 8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짚어야겠습니다.
2018년 1월부터 요양급여 신청서의 사업주 확인 절차가 없어졌습니다. 그전에는 회사 도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다친 사람이 근로복지공단에 혼자 신청서를 냅니다. 회사의 동의도, 서명도, 허락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단이 알아서 사업주 의견을 확인하고 판단합니다.
산재는 회사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8년째 그렇습니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도, 산재 상담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질문은 여전히 “회사가 산재 처리를 안 해 준다는데 어떡하느냐”입니다. 답변도 8년째 똑같습니다. 혼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회사 동의 필요 없습니다.
같은 답이 8년 동안 반복되는데 질문이 줄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들이 정보를 못 찾아서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분들이 묻고 있던 게 절차가 아니었던 겁니다.
서류는 혼자 낼 수 있지만, 내일 아침은 혼자가 아닙니다
“회사가 안 해 준다”는 말은 법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처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말에 가깝습니다.
서류야 혼자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에 퇴원하면 그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같은 라인에 서는 사람들과 점심을 먹어야 하고, 반장 얼굴을 봐야 하고, 회식에도 가야 합니다. 내가 낸 서류 때문에 근로감독관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돌면, 그 공기 속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도 자신입니다.
법이 풀어 준 것은 서류였습니다. 관계까지 풀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붙잡고 있는 쪽은 늘 후자입니다.
사람이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이걸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익만 계산하는 존재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다쳤으면 청구하고, 못 받으면 소송하고, 그걸로 끝입니다. 회사가 곤란해지든 말든 알 바 아니고요.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안 됩니다. 그 회사가 자기 삶의 상당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몇 년을 보냈고, 아침마다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일도 그곳에 있을 예정입니다. 자기 배에서 피가 나는 와중에도 라인이 멈출까 걱정하는 것 —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인 겁니다.
사람은 복잡합니다. 자기를 다치게 한 곳을 동시에 아끼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복잡함을 정확히 아는 쪽이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산재로 하면 회사가 곤란해진다”는 말은 협박이 아닙니다. 협박이었다면 오히려 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이 잘 먹히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선의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겁을 주는 말보다 미안하게 만드는 말이 훨씬 잘 듣습니다.
그러니 그 말이 사실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산재가 났다고 회사 보험료가 자동으로 오르는 게 아닙니다. 보험료를 조정하는 개별실적요율이라는 제도는 상시근로자 30명 미만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습니다. 건설업은 공사 실적액 60억 원 미만이면 마찬가지고요. 30명이 넘어도 지난 3년간 낸 보험료 대비 지급된 보험급여가 85% 이하면 오히려 동결되거나 내려갑니다. 업무상 질병으로 나간 급여는 이 계산에서 처음부터 빠집니다. 건설업 입찰 심사에서 보는 재해율도 업무상 질병은 반영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 사업장 상당수에서, 직원 한 명 산재 처리했다고 회사가 지는 실질적 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오늘도 어느 사무실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걱정해 준 마음이 회사를 범죄로 밀어 넣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그리고 이 조항에는 한 줄이 더 붙어 있습니다.
은폐하도록 교사하거나 공모한 사람도 똑같이 처벌합니다.
“산재로 하지 말고 공상으로 하자”고 권한 그 상급자 말입니다. 회사를 위한다고 한 말이었을 테고, 어쩌면 본인은 좋은 일을 한다고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가 사고를 덮는 방향으로 굴러갔다면, 법이 보는 그림은 다릅니다.
그러니 이런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다친 사람은 회사를 아끼는 마음으로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 침묵은 회사를 지켜 준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고를 덮는 일을 완성시켜 준 것입니다. 회사를 위해 한 일이 회사를 형사 사건으로 밀어 넣는 구조 — 이게 이 문제의 가장 고약한 부분입니다. 사고가 더 컸을 때 그 끝에서 대표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직원이 일하다 사망했습니다 편에 적어 두었습니다.
물론 공상 처리 자체가 곧바로 범죄인 것은 아닙니다. 다치고 나서 회사와 원만히 정산하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발생한 사고를 보고하지 않고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그것과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둘의 경계를 흐려 놓고 “다들 이렇게 한다”고 말하는 쪽에서, 정작 위험을 떠안는 것은 회사입니다.
정작 두려워하던 일에 대해서는
가장 많이 걱정하시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산재를 신청하면 잘리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그 밖의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숫자를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사고를 은폐한 죄보다 무겁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여기에 더해, 요양을 위해 쉬는 기간과 그 뒤 30일 동안은 아예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이 이 정도로 세게 서 있다는 건, 그런 일이 실제로 많이 벌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여기서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쪽은 다친 사람이라는 겁니다.
마음은 접지 마시고, 방향만 보십시오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을 버리시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버려지지도 않고, 버릴 이유도 없습니다. 동료를 생각하고 일터를 아끼는 마음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한 번 보셔야 합니다. 회사를 아끼는 마음이 현장의 안전을 고치는 쪽으로 가면 모두에게 남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없던 일로 만드는 쪽으로 흘러가면, 남는 것은 본인 카드값과 회사의 형사 기록뿐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조용히 넘어간 사고는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통계에 없는 위험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다음에 다치는 사람은, 지금 곁에서 같이 일하는 그 동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료를 진짜로 위하는 방법이 침묵이 아닐 수 있다는 것 — 이 이야기를 저는 늘 조금 늦게, 이미 다 지나간 뒤에 하게 됩니다.
사람은 복잡합니다.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도 남을 먼저 헤아리고, 자기를 다치게 한 곳을 여전히 아낍니다. 저는 그 복잡함이 사람의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누가 그것을 알고 이용하고 있는지는 가끔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마음은 지켜져야 할 것이지, 소모될 것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