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 2026년 6월 19일 · 변호사 김영빈
상속포기, 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 나 하나 포기하면 될 줄 알았는데, 빚은 다음 사람에게 갑니다
상속포기 신고서는 한 장이지만, 한번 수리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 하나 포기로 끝나지 않고 빚이 후순위 가족에게 넘어가는 함정, 상속개시 3개월의 기한과 상속재산에 손대면 막히는 단순승인, 그리고 '왜 포기하려는가'를 듣는 일까지 — 실제 상속포기 사건들에서 나온 실무.
가족이 세상을 떠난 직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빚이 있을지 모르니, 빨리 상속포기부터 해 둬라.”
맞는 말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빨리’와 ‘일단’이, 가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됩니다. 상속포기는 한번 수리되면 되돌릴 수 없고, 기한도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상속포기를 앞둔 분들을 위해, 서식 작성법이 아니라 그 전에 짚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신고서는 한 장, 그런데 우리는 제적등본을 다섯 통씩 뗍니다
상속포기 심판청구서 자체는 길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의, 언제 개시된 상속을 포기한다 — 사실상 한 장이면 끝납니다. 그래서 “이걸 굳이 변호사한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건을 맡으면, 저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신고서를 쓰는 게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의 제적등본을 서너 통, 많게는 다섯 통씩 떼고, 가족관계·혼인·입양 기록을 모아 가계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입양이나 친양자 기록이 끼어 있으면 더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포기는 쉬운데, “누가 상속인인가”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걸 틀리면, 포기가 엉뚱한 결과를 낳습니다.
함정 하나 — 나 하나 포기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상속포기에서 가장 흔한 오해가 이겁니다. “내가 포기하면 빚도 나한테서 끝나겠지.”
아닙니다. 1순위 상속인(자녀)이 모두 포기하면, 상속은 다음 순위로 넘어갑니다. 손주에게, 그다음엔 돌아가신 분의 부모에게, 형제자매에게로요. 빚도 함께 굴러갑니다. 자녀들이 “우리는 포기했으니 됐다” 하고 안심하는 사이, 영문도 모르는 노부모나 형제에게 빚 독촉장이 날아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그래서 빚을 정리하려면 보통, 한 사람은 한정승인(상속받은 재산 범위 안에서만 갚는 것)을 하고 나머지가 포기하거나, 후순위까지 함께 정리하는 식으로 설계가 필요합니다. “누가 포기하고 누가 한정승인을 하느냐”를 짜는 일 — 이게 신고서 한 장 너머의 진짜 일입니다.
함정 둘 — ‘왜’ 포기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속포기는 ‘돌아가신 분이 빚을 남겼을 때’ 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맞습니다.
그런데 늘 그런 건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빚이 없어도, 받는 사람 쪽 형편이나 가족 사이의 사정 때문에 포기가 더 나은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포기가 답인 줄 알고 오셨는데 막상 들어 보면 포기가 아니라 자기 몫을 정확히 찾는 것이 답인 경우도 있습니다.
겉보기엔 똑같은 “상속포기 하러 왔어요”라는 한 마디 뒤에, 전혀 다른 사정이 있는 겁니다. 그 사정을 듣지 않고 신고서부터 내밀면, 빠르긴 한데 틀린 답이 나갑니다.
함정 셋 — 되돌릴 수 없고, 시계는 돌아갑니다
상속포기에는 무서운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 기한입니다. 상속이 개시된 것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 안에 결정하고 신고해야 합니다. 경황이 없어 미루다 보면 금방 지나갑니다.
둘, 고인의 재산에 함부로 손대면 포기가 막힌다는 점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예금을 빼서 쓰거나 재산을 처분해 버리면, 법은 그것을 “상속을 받겠다는 뜻”으로 보아 그 뒤엔 포기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장례비처럼 상식적인 범위의 지출은 괜찮다고 본 판례도 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상식적인 범위인지’는 경계가 흐릿해서, 고인의 통장에 손대기 전에 한 번은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뒤늦게 빚을 알게 된 분을 위한 길이 따로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이고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인데, 시계는 돌아가고, 한번 잘못 디디면 선택지가 닫힙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고, 그래서 먼저 들어야 합니다.
변호사가 내미는 건 신고서 한 장이 아닙니다
상속포기는, 솔직히 서식만 놓고 보면 직접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의뢰인이 오시면 신고서부터 쓰지 않습니다. 먼저 묻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되시는지, 돌아가신 분께 무엇이 남았는지, 그리고 왜 포기하려 하시는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야 “포기가 맞습니다” 혹은 “포기보다 이게 낫습니다”, 또는 “포기하시려면 이분과 저분도 함께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정은 의뢰인이 합니다. 변호사는 대신 결정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제대로 내리시도록 사정을 듣고 길을 펴 드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속포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되돌릴 수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신고서를 내기 전에, 한 번은 제대로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