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8월 28일 · 변호사 김영빈
사기죄 구형 10년, 선고 2년 6월
구형 징역 10년, 선고 징역 2년 6월. 합의도, 탄원서도, 돌려줄 돈도 없던 사기 사건에서 변호인이 법원에 낸 것은 양형기준표와 같은 유형의 양형례, 그리고 형벌은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였습니다. 검사의 구형이 법원을 구속하지 않는 이유와 사기죄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범위가 선고를 어떻게 좌우하는지 실제 사건의 기록으로 짚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건에서 싸우는 법
1. 징역 10년
사기죄로 구속된 피고인이었습니다. 지인 여러 명에게 투자를 권유하며 돈을 받았고, 그 돈은 전부 다른 곳에 썼습니다. 같은 죄로 교도소를 다녀온 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저지른 범행이었습니다.
공판기일에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증거에도 전부 동의했습니다.
검사가 구형을 했습니다. 징역 10년.
2. 없는 것들
이 사건에는 합의가 없었습니다. 돌려줄 돈이 없었습니다. 탄원서도 없었습니다.
반성문은 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판결문에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문장이 적히게 됩니다. 반성문을 내는 것과 법원이 반성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형사재판에서 합의, 반성문, 탄원서는 형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재료입니다. 법원이 양형 이유에 거의 빠지지 않고 적는 항목들입니다. “피해자와 합의하였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 “가족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 이 문장들이 판결문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큽니다.
이 사건에는 그 어느 것도 없었습니다.
3. 있는 것들
없는 것을 세다 보면 있는 것을 놓칩니다.
양형기준이 있었습니다.
사기죄의 양형기준은 피해 금액으로 유형을 나눕니다.
| 유형 | 이득액(피해 금액) | 가중영역 권고 형량범위 |
|---|---|---|
| 제1유형 | 1억 원 미만 | 징역 1년~2년 6월 |
| 제2유형 |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 | 징역 2년 6월~6년 |
| 제3유형 |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 | 징역 4년~8년 |
| 제4유형 | 50억 원 이상 300억 원 미만 | 징역 6년~11년 |
| 제5유형 | 300억 원 이상 | 징역 8년~17년 |
이 사건의 피해 금액은 수천만 원. 1억 원 미만. 제1유형입니다.
제1유형에서 같은 죄의 전과(동종 누범)가 인정되면 가중영역으로 올라갑니다. 그 가중영역의 권고 형량범위가 징역 1년에서 2년 6월입니다. 특별가중인자가 겹쳐 상한이 올라가더라도 최대 3년 9월입니다.
검사의 구형은 10년이었습니다.
4. 68배
징역 10년이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범위 안에 들어오려면 제4유형 이상이어야 합니다. 제4유형은 이득액 50억 원 이상입니다. 50억 원은 이 사건 피해 금액의 약 68배입니다.
저는 양형보충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의견서에 양형기준표를 그대로 인용하고, 이 사건이 놓인 자리와 구형이 놓인 자리를 나란히 찍었습니다.
비슷한 사건의 양형례도 함께 냈습니다. 같은 사기죄, 같은 제1유형, 같은 동종 누범, 같은 가중영역. 그 사건들에서 법원이 선고한 형은 징역 1년, 1년 2월, 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습니다.
사실심 법원의 양형에 관한 재량도 범죄와 형벌 사이에 적정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죄형균형의 원칙이나 형벌은 책임에 기초하고 그 책임에 비례하여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에 비추어 당해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나타난 범행의 죄책 내 양형판단의 범위에서 인정되는 내재적 한계를 가진다.
— 대법원 2013. 7. 25. 선고 2013도5524 판결
양형은 법원의 재량이지만, 그 재량에도 한계가 있다 — 형벌은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 한계라는 판례입니다.
양형기준, 양형례, 책임주의. 합의도 반성문도 탄원서도 아닙니다. 전부 이 사건이 오기 전부터 있던 재료들입니다. 제가 한 일은 그 재료를 이 사건 앞에 정확히 배치한 것이었습니다.
5. 구형은 의견입니다
검사의 구형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법원에 대하여 검사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양형을 주장하는 소송행위, 즉 변론에 해당한다. 피고인이 유죄임을 전제로 하는 검사의 구형은 양형에 관한 의견 진술에 불과하여 법원이 그 의견에 구속된다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2026. 5. 8. 선고 2025도10476 판결
구형은 검사의 의견입니다. 법원을 묶지 않습니다. 형을 정하는 것은 법원입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양형기준 가중영역의 상한과 정확히 같은 숫자입니다.
6. 아무것도 없는 사건에서
합의, 반성문, 탄원서. 있으면 유리합니다.
그런데 없을 때가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피해자가 거부해서, 연락이 닿지 않아서.
그때도 변호사가 할 일은 있습니다.
양형기준에는 이 사건이 놓인 자리가 있습니다. 같은 유형의 다른 사건에서 법원이 내린 선고가 있습니다. 형벌이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는 법리가 있습니다.
없는 것들을 세는 대신, 있는 것들을 찾아서 법원에 제출하는 일. 이 사건에서 제가 한 일이 그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