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6월 5일 · 변호사 김영빈
포기한 사건은 없습니다 — 마약 수입 항소심 무죄
마약 수입 항소심 무죄 — 포기한 사건은 없다는 말의 실제.
부인하는 피고인의 ‘자백 조서’가 무너진 이유
구치소에서 처음 만난 그분은 이미 다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1심에서 국선 변호인과 재판을 받았고, 결과는 징역 3년에 법정구속. 저를 보자마자 하신 말씀은 이랬습니다.
“그냥 다 인정할 테니, 형이나 좀 줄여 주세요.”
기록을 펼쳐 봐도 그 말이 맞아 보였습니다. 유죄의 핵심 증거인 검찰 피의자신문조서가 이미 증거로 채택되어 있었으니까요. 항소심에서 1심에 채택된 증거를 다시 걷어내는 일은 형사재판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조서는 사건이 사실상 끝났다는 표지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이런 사건에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변호사는 대리인입니다. 의뢰인을 대신해 싸울 수는 있어도, 싸울 마음까지 대신 내줄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가족들은 한결같이 무죄를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차례 접견을 갔습니다. 이분이 정말로 무죄 주장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지쳐서 포기한 척하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접견을 거듭한 끝에 그분도 결국 입장을 바꾸셨습니다.
“변호사님 믿고, 다시 무죄로 가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무죄를 다투려면 결국 증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제가 즐겨 쓰는 ‘절차를 통한 증거 다툼’이 어렵습니다. 1심에서 한 번 증거로 받아들여진 것은 항소심에서 좀처럼 되돌리기 어렵다는 게 확고한 실무거든요.
그런데 기록을 들여다볼수록 한 가지가 걸렸습니다. 피고인은 1심 법정에서부터 줄곧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를 유죄로 만들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증거로 채택되어 있는 걸까. 부인하는 사람의 ‘자백 조서’가, 어떻게 증거가 되어 있는 걸까.
여기서 형사소송법이 한 번 바뀌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라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비교적 쉽게 증거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검사가 작성한 조서도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해야만 증거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찰 조서와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다면 1심 내내 혐의를 부인해 온 피고인의 검찰 조서는, 애초에 증거가 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이 지점에서 오래된 판례 하나가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대법원 2006. 5. 26. 선고 2005도6271 판결입니다. 원래는 경찰이 작성한 조서에 관한 사건이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이랬습니다.
피고인이 제1심 법정 이래 공소사실을 계속 부인하는 경우, 증거목록에 피고인이 경찰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인정한 것으로 기재되었더라도 이는 착오 기재거나 조서를 잘못 정리한 것이어서 위 피의자신문조서가 증거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인하는 사람이 자기 자백 조서의 내용을 ‘인정’했다고 기록에 적혀 있다면,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착오로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찰 조서에 관한 이 법리는, 법 개정으로 검사 조서까지 같은 기준을 받게 된 이상 이 사건의 검찰 조서에도 그대로 닿습니다.
항소심 법정에서 저는 이 점을 짚었습니다. 한 번 채택된 증거를 함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원칙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1심의 그 기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일관되게 부인해 온 사실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착오이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실체에 닿을 수 없다고.
재판부는 받아들였습니다.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이 부정되었습니다. 유죄를 떠받치던 가장 큰 기둥이 빠지자,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마약을 수입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 즉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과는 무죄였습니다.
무죄는 절절한 호소나 운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록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모두가 끝났다고 여긴 자리에서 한 번 더 의심하는 데서 나옵니다. 1심에서 이미 채택된 증거라 하더라도, 그것이 본래 채택될 수 없는 증거였다면 항소심에서 다시 걷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의뢰인 자신이 한때 포기했던 자리에서도 가능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한 사건에도 아직 들여다보지 않은 한 줄이 남아 있곤 합니다. 저는 그 한 줄을 끝까지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