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5월 28일 · 변호사 김영빈
한국의 치안은 세계 제이이일!!!!
한국의 치안은 정말 세계 제일인가 — 통계와 사각지대.
— 우리가 자랑하는 평화가 어디에서 왔는가
최근 외국인 유튜브 채널의 한 장면이 한국 인터넷에서 자주 돌아다닙니다.
서울 새벽 3시 홍대 골목에서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고 걷습니다. 여성이 혼자 걷고, 아이가 잃어버린 가방을 그대로 찾고, 핸드폰을 식당 테이블에 두고 화장실에 갔다 와도 그대로 있는 모습. 외국인이 카메라를 보고 말합니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인이 그 영상을 본인의 자랑으로 받습니다. “국뽕” 이죠? 한국 시민 의식의 성과로 받기도 하고, 경찰의 효율로 받기도 하고, CCTV 밀도로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봅시다.
한국이 안전한 까닭에 대한 일반 분석은 정해져 있습니다. 시민 의식이 높다·경찰이 효율적이다·CCTV 세계 1위 밀도다·총기 통제가 엄격하다. 이런 설명이 한국 언론·외국 언론·시민의 자기 인식에서 정설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가 정말 그것만으로 만들어진 걸까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잠깐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야쿠자 — 1980년대 약 10만 명, 2022년 경찰청 집계 22,400명(조직원 11,400 + 준조직원 11,000). 18년 연속 감소했지만 합법적 조직체로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탈리아 마피아 — 추정 수만 명 단위, 정부와의 전쟁이 수십 년째. 미국 갱 — FBI 추정 약 137만 명. 러시아 마피아·멕시코 카르텔·동남아 트라이어드 — 각 나라마다 자기 영역의 거대 조직이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검찰의 특별관리 대상 조폭사범 — 156개 계파, 574명(2022년 12월). 일본 야쿠자의 약 1/40 규모입니다. 국가 단위 거대 조직은 사실상 0. 다른 나라의 야쿠자·마피아·갱·카르텔 같은 규모와는 비교 자체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1980년 8월 4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결정으로 사회악일소특별조치가 시작됐습니다. 약 4개월 사이 60,755명이 검거됐고, 그 중 40,347명이 군부대로 끌려가 재판 없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7,578명이 1~5년의 보호감호를 받아 강제 노역에 동원됐습니다. 삼청교육대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군부대에서는 새벽 5시 기상·하루 종일 구보·구타·고문이 일상이었습니다. 1982년 국방부 공식 발표 사망자는 54명 (질병 36·구타 10·총기 3·안전 2·자살 2·미상 1).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후유증 사망 339명 + 부상 2,700여 명을 추가로 발표했습니다. - 밝혀지지 않은, 지금도 두려움에 밝히지 못하는 숫자는 대체 얼마일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법치주의가 아니었습니다. 법적 절차가 우회된 국가의 폭력적 정상화. 그것이 그 시기의 본체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 이후로 한국에서 거대 조폭은 사실상 사멸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국가’라는 조폭이 자신의 나와바리에 있던 경쟁 조직을 제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두 사건이 같은 곳에 이어져 있다는 발견을, 한국 사회는 거의 받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극찬하는 한국의 평화 — 그 평화의 한 기원에 1980년의 60,755명이 있습니다. 재판 없이 보호감호를 받은 7,578명이 있습니다. 공식 사망 54명 + 후유증 사망 339명 + 부상 2,700여 명이 있습니다. 그 위에 놓인 평화를 시민이 자랑으로 받고, 외국인이 극찬으로 받습니다.
이 글은 그 시기를 정당화하는 글은 아닙니다. 국가가 조폭짓을 한 부분이 그 시기의 본체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망자·고문·재판 없는 보호감호 — 그것은 한국 법치주의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고, 한국 사회가 과거사정리위원회·국가 배상으로 그 부분을 공식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극과 현재의 평화가 한 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자랑하는 측도 비극을 기억하는 측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자랑하는 시민은 그 기원을 받지 않고, 비극을 기억하는 측은 그 비극이 만든 결과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사각지대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회는 절대 하나로 설명할 수 없죠.
그렇게 자랑하는 한국의 치안이 사실은, 법치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법치주의 우회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이야기, — 시민 의식이 아니라 국가 강제력의 잔재.
한국은 법치주의 사회라는 한국의 공식 자기 인식과, 그 인식 안의 반법치주의의 산물이 한 줄로 같이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한국이 법치주의 사회로 굴러가는 다음 단계가 어디로 갈지는,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시민들이 ‘알고 나서’ 돌이켜보아야 할 터입니다.
외국인이 카메라로 담은 새벽 3시 홍대 골목의 평화 — 그 평화의 한 자락에, 우리가 부정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잊지는 않아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