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9월 1일 · 변호사 김영빈
전세사기를 당했습니다 — 세입자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과, 전세사기를 당한 것은 다릅니다. 대부분 민사로 끝나는 전세사기를 형사 사기죄로 인정받으려면 무엇을 어떤 순서로 준비해야 하는지, 세입자가 지금 해야 할 일을 정리했습니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것과, 전세사기를 당한 것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증명하는 몫은 세입자에게 있고, 증거는 초기에만 남아 있습니다.
계약 만기가 다가오는데 임대인이 연락을 피합니다.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지가 옵니다. 보증금이 통째로 걸려 있는데, 임대인은 “지금은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이때 대부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형사고소입니다. 그런데 전세사기는 이름에 ‘사기’가 붙어 있어도, 실제로는 상당수가 형사가 아니라 민사로 끝납니다. 고소장을 들고 경찰서에 가도 “이건 민사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1. 보증금을 못 받는 것과, 사기를 당한 것은 다릅니다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사기는 아닙니다. 갚을 생각으로 빌렸는데 사정이 나빠져 못 갚으면 ‘빚을 못 갚은 것’이고, 처음부터 갚을 마음 없이 빌렸다면 그때가 사기입니다. 전세보증금도 같습니다.
임대인이 계약할 때는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집값이 떨어지고 대출이 막혀 못 돌려주게 되었다면, 법은 이것을 원칙적으로 민사, 즉 채무불이행으로 봅니다. 돌려줄 능력이 없어졌다는 것만으로는 사기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증금을 못 받은 세입자가 형사고소를 해도, 수사기관은 “돈을 못 받은 것은 딱하지만 민사로 해결할 문제”라며 사건을 가볍게 넘기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분명히 속은 것 같은데 왜 형사가 안 되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기가 되려면 ‘못 돌려준 사실’이 아니라 ‘처음부터 속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증명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2. 형사가 되려면, ‘처음부터 속였다’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전세사기가 사기죄로 성립하려면,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맺던 그 시점에 이미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나중에 사정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계약하던 순간에 이미 ‘이 돈은 돌려줄 수 없는 돈’이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임대인에게 돈이 있느냐가 아니라, 계약하던 그날 이미 돌려줄 수 없는 상태였느냐입니다.
그래서 형사로 가려면 지금이 아니라 계약 당시를 봐야 합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그날, 그 집의 등기부는 어떤 상태였는지. 임대인은 자기 돈을 얼마나 넣은 사람이었는지. 같은 방식으로 이미 여러 사람과 계약을 맺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것이 전세사기 형사고소의 진짜 어려움입니다. 세입자는 피해자인데도, ‘나는 속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섭니다. 수사기관이 알아서 밝혀 주기를 기다리는 사이, 정작 그 증명에 필요한 자료는 하나씩 사라집니다.
3. ‘처음부터 속였다’고 볼 수 있는 정황들
‘처음부터 속였다’는 것은 임대인의 속마음이라, 자백이 없는 한 직접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무는 정황으로 판단합니다. 다음 사정이 여럿 확인될수록, 민사에 그칠 사건이 형사가 됩니다.
① 깡통전세 — 계약 당시 이미 집의 시세보다 선순위 대출과 보증금의 합이 더 컸던 경우. 돌려줄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임대인이 몰랐을 리 없다는 정황이 됩니다.
② 무자본 갭투자 — 임대인이 자기 돈은 한 푼도 넣지 않고, 세입자의 보증금만으로 집을 사서 명의만 가진 경우. 반환 능력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뜻입니다.
③ 이중계약·대리 계약 — 집주인 몰래, 또는 월세인데 전세인 것처럼 꾸며 중개인이나 대리인이 계약한 경우.
④ 신탁된 부동산 — 이미 신탁회사에 넘어가 임대 권한이 없는 사람이 임대인 행세를 하며 계약한 경우.
⑤ 같은 방식의 다수 피해자 — 동일한 임대인이나 중개인에게 같은 수법으로 당한 사람이 여럿인 경우. 고의를 보여주는 가장 강한 정황입니다. 한 명이면 불운이지만, 여럿이면 계획입니다.
내 경우가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가 남아 있는 동안 모아야 합니다.
4. 지금 당장 모아야 할 증거
사기죄를 증명할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등기부는 새로 발급되고, 임대인은 재산을 옮기고, 다른 피해자들은 흩어집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지금 확보할 수 있는 것부터입니다.
① 계약 당시의 등기부등본 — 지금 것이 아니라 계약하던 시점의 등기 상태가 핵심입니다. 선순위 근저당·신탁·가압류가 그때 얼마나 있었는지가 깡통전세의 증거가 됩니다. 등기부는 과거 이력이 남으니, 지금이라도 발급받아 계약일 기준으로 정리해 두십시오.
② 시세 자료 — 계약 무렵 그 집의 실거래가와 감정가. 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의 합이 시세를 넘었다면, 처음부터 온전히 돌려줄 수 없는 구조였다는 뜻입니다.
③ 임대인·중개인과 주고받은 모든 것 — 계약 전후의 문자, 카카오톡, 통화 녹음, 안내문. “보증금은 안전하다”, “곧 갚겠다”는 말이 나중에 기망의 증거가 됩니다. 지우지 마십시오. 원본 그대로 두십시오.
④ 같은 임대인의 다른 피해자 — 같은 건물, 같은 중개인을 거친 다른 세입자를 찾으십시오. 피해자가 모이면 개별 민사로는 안 보이던 같은 수법이 한눈에 보입니다.
⑤ 임대인의 재산과 자금 흐름의 단서 — 받은 보증금이 곧바로 다른 집을 사는 데 쓰였다면,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강한 정황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이 파악하기 어려워, 수사기관의 계좌추적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까지는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5. 형사고소와 보증금 회수는 함께 갑니다
형사고소를 한다고 해서 보증금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사기죄로 처벌받는 것과 내 돈을 돌려받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처음부터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돈을 지키고 돌려받는 쪽에서는, 상황에 따라 다음을 함께 진행합니다.
①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확인 —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갖춰져 있다면,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후순위보다 먼저 배당받을 수 있습니다. 내 순위가 어디인지부터 확인합니다.
② 임차권등기명령 — 보증금을 못 받은 채 이사를 가야 한다면, 이 등기를 해 두어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잃지 않습니다.
③ 보증보험 이행청구 —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임대인을 상대하기 전에 보증기관에 이행을 청구하는 길이 있습니다.
④ 보증금반환청구 소송과 강제집행 — 임대인에게 다른 재산이 있다면, 판결을 받아 그 재산에서 회수합니다.
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 — 일정 요건을 갖춘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경·공매를 미루거나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등 별도의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 요건에 해당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형사는 임대인이 사태를 방치하지 못하게 만들고, 민사와 특별법은 실제 회수를 담당합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6. 왜 혼자서는 어려운가
전세사기는 서류 한 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약 당시의 고의를 증명하는 형사와, 지금 남은 재산에서 돈을 지키는 민사를 동시에, 서로 다른 기한에 맞춰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도 시간을 오래 주지 않습니다.
경매 배당기일은 정해지면 미뤄지지 않고, 임대인의 재산은 그사이에도 줄어들며, 고의를 증명할 자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보하기 어려워집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지, 어떤 증거가 이 사건을 민사에 그치지 않고 형사가 되게 할지 — 이 판단이 혼자서는 가장 어렵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판단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계약 당시의 기록을 모아 두는 것, 그리고 이 사건이 민사에 그칠지 형사가 될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에게 빨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판단이 빠를수록,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