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7월 19일 · 변호사 김영빈

“다른 병원은 다 써주던데요”

진료실에서 진단서를 부탁하는 말은 흔하지만, 형법은 그 종이에 무거운 것을 걸어 두었습니다. 허위진단서작성죄는 의사만 저지를 수 있는 죄인데도 형법 제33조를 거쳐 부탁한 사람이 교사범으로 처벌되고, 병명이 진짜여도 요양 기간을 부풀리면 허위가 됩니다. 거절당한 부탁은 왜 죄가 되지 않는지, '다른 병원은 다 써준다'던 말에 던진 되물음이 왜 정확했는지 — 1967년 대법원 판례부터 부부가 나란히 벌금을 받은 2022년 사건까지.

허위진단서작성죄 — 진단서를 부탁한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

난임 시술을 받으러 다니던 분이 어느 날 진료실에서 이런 부탁을 합니다.

“선생님, 저 회사 좀 두 달 쉬려고요. 난임으로 진단서 하나만 써 주세요. 두 달 요양이 필요하다고요.”

의사가 차트를 봅니다. 시술은 통원으로 진행 중이고, 두 달을 누워 지내야 할 의학적 사정은 없습니다. 그렇게는 쓸 수 없다고 답합니다. 돌아온 말이 이랬습니다.

“어차피 난임인 건 사실이잖아요. 다른 병원에선 다 써주는데, 왜 이렇게 유난이세요?”

의사는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그 다른 병원이 어디인지, 어느 선생님이 써 주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환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진료실을 나가면서, 융통성 없는 병원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실제 이야기입니다. 병명을 지어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병명 그대로에 휴직에 필요한 문구만 얹어 달라는 부탁. 환자 입장에서는 거절당할 이유가 없어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 진단서 한 장에 형법이 꽤 무거운 것을 걸어 두었습니다. 부탁받은 의사 쪽에만 걸어 둔 것이 아니라, 부탁한 쪽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의사의 마지막 질문이 왜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는지는, 형법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보입니다.

의사’만’ 저지를 수 있는 죄

형법에는 허위진단서작성죄가 있습니다.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조산사가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7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이 죄는 조금 특이합니다. 원래 형법은 남의 이름을 도용해 문서를 만드는 것을 처벌하지, 자기 이름으로 거짓 내용을 적는 것은 사문서라면 처벌하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거짓말을 적어도 그것만으로 문서에 관한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진단서만은 예외입니다. 의사가 자기 이름으로, 자기 권한으로 쓰는 문서인데도 내용이 거짓이면 그 자체로 범죄가 됩니다.

왜 진단서만 이런 대접을 받는가. 진단서는 법원, 수사기관, 보험회사, 회사, 학교가 사람의 건강 상태를 판단할 때 그대로 믿고 쓰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의사의 판단에 그만한 증명력을 부여했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의사에게만 특별한 책임을 지운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 죄는 의사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주체가 의사로 못 박혀 있으니, 의사 아닌 사람과는 상관없는 죄 아닌가.

그럼 부탁한 사람은

로스쿨 시절, 시험에 단골로 나오던 논점이 하나 있습니다. 신분이 있어야 성립하는 범죄를, 신분 없는 사람이 부추기면 어떻게 되는가.

형법 제33조가 그 답을 정해 두었습니다. 신분이 있어야 성립하는 범죄에 신분 없는 사람이 가담하면, 그 사람에게도 공범 규정이 적용됩니다. 의사만 저지를 수 있는 죄라도, 의사를 부추긴 사람은 그 죄의 교사범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교사범은 정범과 같은 형으로 처벌합니다.

교과서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법원이 1967년에 이미 답해 둔 문제입니다(대법원 1967. 1. 24. 선고 66도1586 판결). 다른 사람에게 돈 2천 원을 주면서, 환자로 가장해 병원에 가서 허위진단서를 받아 오라고 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사를 만난 적조차 없습니다. 대법원은 그래도 허위진단서작성죄의 교사범이 된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정도, 의사와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정도 소용없었습니다.

요즘 사례로 오면

2022년에 항소심이 선고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22. 7. 21. 선고 2020노1743 판결). 한 남성이 의사에게 카카오톡으로 부탁을 했습니다. 아내가 대학 수업에 결석한 사유를 소명해야 하니, 진료받은 적이 없지만 진료받은 것으로 서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진료확인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발목 부위 봉와직염, 1주간의 통원 치료, 1주간의 안정 가료. 아내는 그 서류를 교수에게 냈습니다.

부탁한 남편은 허위진단서작성교사죄 등으로 벌금 300만 원, 서류를 낸 아내는 벌금 15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보험금을 타낸 것도, 누구 돈을 가로챈 것도 아닙니다. 수업 결석을 소명하려던 서류 한 장으로 부부가 나란히 전과를 갖게 됐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그 서류에 적힌 문구입니다. “1주간의 안정 가료.” 진료실에서 오가는 부탁들과 정확히 같은 문법입니다.

난임은 꾀병이 아닌데요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면, 이런 반론이 남습니다. 난임은 실제 진단명이다. 없는 병을 지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병을 적는 것인데, 그것도 허위인가.

판례는 이 지점을 오래전에 지나왔습니다. 진단서에서 허위가 문제 되는 부분은 병명만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허위의 기재가 사실에 관한 것이건 판단에 관한 것이건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도15129 판결 등). 병명, 치료 기간, 향후 치료에 대한 소견까지 전부 심사 대상입니다. 문서 제목이 진단서가 아니라 소견서나 진료확인서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내용이면 진단서로 취급됩니다.

실제로 위 판결의 사안이 그랬습니다. 한 병원 의사가 수감 중인 환자에 대해 “지속적인 입원치료를 요하는 상태”, “수용생활은 불가한 상태로 판단됨”이라고 진단서를 썼다가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환자에게 병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병들이 그 시점에 그런 소견을 뒷받침하지 않았습니다. 병명이 진짜여도 소견이 과장이면, 그 문서는 허위진단서입니다.

난임 진단을 받은 분에게 난임이라고 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뒤에 붙는 문장입니다. 통원 시술로 충분한 상태에 “2개월의 안정 가료를 요함”이라고 적는 순간, 병명이 진실이어도 그 진단서는 허위가 됩니다.

반대 방향의 사건도 있습니다(대법원 1990. 3. 27. 선고 89도2083 판결). 교통사고 환자에게 2주 진단서를 써 준 의사가 있었는데, 진단 기간이 너무 길다는 항의가 들어오자 병원 쪽에서 줄여 달라고 종용했고, 의사가 진료 기록을 다시 살펴 3~4일로 고쳐 쓴 사건입니다. 이 의사는 허위진단서작성으로 기소까지 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뒤집혔습니다. 고쳐 쓴 내용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진실 쪽으로 걸어간 의사는 처벌받지 않습니다. 이 죄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진단서가 회사에 도착하면

부탁이 받아들여진 다음을 따라가면, 죄는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의사가 쓴 순간 의사에게 허위진단서작성죄. 부탁한 환자에게 같은 죄의 교사범. 그 진단서가 회사에 제출되면, 이번에는 낸 사람이 정범입니다. 허위로 작성된 진단서를 행사하는 죄는 의사가 아니어도 저지를 수 있어서, 제출한 사람이 직접 책임집니다. 그리고 그 진단서로 유급 휴직 급여나 보험금까지 받으면 사기죄가 따로 성립합니다.

진단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죄가 셋으로 불어나는 구조입니다. 의사 쪽에는 형사처벌에 더해 의료법상 면허 자격정지 처분까지 따라옵니다. 보건소나 국공립병원처럼 의사가 공무원 신분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대법원은 이 경우 공무소 명의의 진단서는 공문서라서 허위공문서작성죄만 성립하고 허위진단서작성죄는 따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봅니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도7762 판결). 징역 상한이 3년에서 7년으로 뛰는 죄입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처벌받지 않습니다

처음 장면의 환자 이야기를 마저 하면, 그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로스쿨 논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앞의 것과 짝을 이루는 문제입니다. 의사 아닌 사람도 교사범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왔는데, 이 사건에서 의사는 거절했습니다. 죄를 저지를 사람이 저지르지 않은 겁니다. 정범 없이 부추김만 있는 상황, 그래도 처벌할 수 있는가.

교사는 상대가 실제로 죄를 저질러야 완성됩니다. 부추겼는데 상대가 거절하면 형법은 이를 ‘실패한 교사’라고 부르는데, 실패한 교사는 그 죄에 예비·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을 때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살인처럼 무거운 죄가 그렇습니다. 허위진단서작성죄에는 예비·음모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탁이 거절당한 환자는, 결과적으로 아무 죄도 짓지 않은 것이 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 부탁이 죄가 되느냐 마느냐를 정하는 사람은 부탁한 환자가 아니라 부탁받은 의사입니다. 의사가 거절하면 아무 일도 없고, 의사가 들어주면 두 사람 모두 피고인이 됩니다.

의사의 거절은 자기방어인 동시에, 그 환자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입니다.

“왜 이렇게 유난이세요?”라는 말에 대한 답이 여기 있습니다. 유난이 아니라, 그 진료실에서 형법이 설계해 둔 대로 움직인 사람은 그 의사 한 명이었습니다.

”다른 병원은 다 써주는데”라던 그 말

그런데 왜 그 환자는 그냥 “써 준다는” 다른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요? 아까 본 의사의 마지막 질문이 그거였죠. “다른 병원이 어디인지, 어느 선생님인지 말해 달라” 정말로 써 준다는 병원이 있으면 실랑이를 벌일 것 없이 가면 그만이었을 텐데.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저는 당연히 거짓말이었으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아무렇게나 뱉은 말, 거절당한 자리에서 나오는 흔한 레파토리 말입니다.

실제로는 어느 병원도 어느 의사도 그렇게 쉽게 써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의사라는 직역에 대해서 신뢰하고 있습니다. 즉, 대답할 이름이 없으니 침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무거워집니다. 그 ‘다른 병원’ 의사들은 허위진단서작성죄의 정범입니다. 그리고 그 진단서들을 부탁해서 받아 낸 환자 본인은, 받을 때마다 교사범이 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어딘가에 제출까지 했다면 행사죄가 그 위에 쌓입니다. 그 순간 진료실에서 오간 것은 처음 저지르려던 죄에 대한 부탁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저지른 일을 한 번 더 해 달라는 요구였던 겁니다.

그러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름을 대면 자백이 되고, 대지 못하면 거짓말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부탁은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변호사가 옆에 앉아 있었어도 그보다 정확한 대사를 만들지는 못했을 겁니다.

원하는 답을 살 수 있는 시대라서

“왜 이렇게 유난이세요”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조금 넓혀 보면, 그 환자만 유별났던 것은 아닐 겁니다.

지금은 원하는 답을 구하기 쉬운 시대입니다. 유튜브에는 어떤 주장이든 확신에 차서 대신 말해 주는 채널이 있고, AI는 질문을 바꿔 가며 몇 번 다시 물으면 결국 내가 듣고 싶던 문장을 공짜로 만들어 줍니다. 클릭 몇 번이면 어지간한 답은 다 손에 들어오니, 전문가의 판단도 그중 하나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돈을 내면 나오는 서비스. 여기서 안 나오면 다른 데서 사면 되는 상품.

진료실의 그 부탁은 그 감각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진찰료를 냈고, 난임인 것도 사실이고, 옆 병원에서는 써 준다는데, 왜 여기서만 안 되냐는 항의. 전문가의 서명을 서비스의 일부로 이해하면 자연스러운 항의입니다.

그런데 전문가의 서명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의사의 진단서가, 변호사의 의견서가, 회계사의 보고서가 어디서든 통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무 내용에나 서명하지 않는다는 믿음. 원하는 대로 써 주기 시작하는 순간 그 서명의 값은 종잇값이 되고, 형법이 허위진단서작성죄라는 별도의 죄까지 두어 가며 지키는 것도 결국 그 믿음입니다. 듣고 싶은 답은 어디서든 살 수 있지만, 전문가의 값은 원하는 답이 아니라 맞는 답에서 나옵니다. 때로는 아니라고 말하는 데에서.

그러니 이 이야기의 결말은 조금 역설적입니다. 전문가의 판단을 결제하면 나오는 상품으로 취급한 그 환자를 그날 지켜 준 것은, 끝까지 상품이 되기를 거절한 전문가였습니다.

쉬어야 한다면

난임 시술을 받으면서 일을 병행하는 생활이 얼마나 소모적인지는 이 글이 부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주사 일정에 맞춰 반차를 쪼개 쓰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회의에 앉아 있는 날들이 길어지면 -그게 해를 넘기고, 기약없는 기다림이, 이번에도 반복되면서, 또 절망하는 삶을 살다 보면- , 두 달쯤 전부를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가야 할 경로가 따로 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난임치료휴가가 있습니다. 연간 6일, 그중 2일은 유급입니다. 부족하다면 회사 취업규칙의 병가나 휴직 제도를 확인해 볼 수 있고, 정말로 몸 상태가 휴직을 요할 정도라면 그때는 의사가 있는 그대로의 소견을 적어 주면 됩니다. 실제 상태를 적은 진단서는 아무리 긴 휴직의 근거가 되어도 허위진단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선을 넘은 뒤라면, 그러니까 부탁대로 만들어진 진단서가 어딘가에 제출까지 된 뒤라면, 그때는 무엇이 기재됐고 무엇이 오갔는지를 기록으로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작성, 교사, 행사, 편취는 각각 별개의 죄이고 각각 다투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단서는 의사의 호의로 쓰는 문서가 아니라, 법이 증명력을 걸어 둔 문서입니다. 그리고 그 증명력을 지키는 마지막 손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그날 진료실에서 그 손은 물러서지 않았고, 덕분에 아무도 피고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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