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10월 22일 · 변호사 김영빈

아청법 집행유예 - 전부 인정한 사건, 죄 하나를 덜어낸 건 서면이 아니었습니다

행위를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아청법 사건에서, 같은 자리에서 이어진 행위를 2개의 죄로 기소한 공소장을 다시 읽고 그 문제를 서면에는 한 줄도 쓰지 않은 채 최종 의견 진술에서 한 번만 짚었습니다. 판결은 뒷부분이 앞선 행위에 흡수되어 별개의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죄가 하나로 줄어 형의 위쪽 끝이 내려온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인정하는 것은 행위이고 그 행위를 죄 몇 개로 셀지는 따로 다툴 수 있어, 전부 인정하는 사건에도 변호인이 다툴 곳이 남습니다.

반성과 합의는 서면에 담았고,

공소장의 죄 하나는

법정에서 한 번만 말했습니다

아청법 위반 — 집행유예, 모든 것을 인정한 그 자리에서 공소장의 죄 하나가 덜어졌고 죄의 개수는 최종 의견 진술에서 한 번만 말했다는 요지를 적은 정보 카드

아청법 사건도 전부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맡았던 아청법 위반(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의 의뢰인은 자신의 행위를 모두 인정했고, 피해자와 합의했고,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다 인정하는데, 변호사가 더 할 일이 있습니까?」 이 사건에서는 있었습니다. 검사는 2개의 죄로 기소했고, 판결은 그중 1개를 따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낸 곳은 법원에 낸 서면이 아니라, 변론을 마치던 법정이었습니다.

1. 무죄를 원하던 의뢰인에게, 승산부터 말씀드렸습니다

시작은 정반대였습니다. 의뢰인은 처음 상담에서 무죄를 원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고,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법정형이 무거워, 자칫 실형을 피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수사기록을 다 읽은 뒤, 이 증거로 무죄를 다투면 어디에 닿는지를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부인하는 사람은 반성을 말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다투다 유죄가 나오면, 반성하지 않는 사람으로 선고를 받게 됩니다.

헛된 희망은 당장은 위로가 되지만, 결국 의뢰인을 가장 위험한 길로 밀어 넣습니다. 의뢰인은 고민 끝에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결정한 사람은 변호인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습니다.

2. 양형만 남은 사건에서, 공소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의뢰인이 인정으로 돌아서자 사건은 양형만 남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희가 법원에 낸 서면도 처음부터 끝까지 반성과 피해 회복, 선처를 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법리를 다투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피해자와도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그 사건에서, 저는 공소장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검사는 같은 자리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진 행위를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누어, 2개의 죄로 기소했습니다. 의뢰인이 인정한 것은 그날 자신이 한 행위였습니다.

인정하는 것은 행위이고,

그 행위를 죄 몇 개로

셀지는 따로

다툴 수 있습니다.

죄를 몇 개로 볼지는 법원이 판단하는 법률의 문제입니다. 행위를 하나도 부인하지 않고도, 검사가 그 행위를 몇 개로 셌는지는 물을 수 있습니다.

3. 죄가 2개냐 1개냐가 형을 바꾸는 이유

죄가 2개가 되면 법이 정한 형의 위쪽 끝이 1.5배까지 늘어납니다(형법 제38조). 법원이 참고하는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도 위로 넓어집니다. 집행유예를 정할 때는 같은 범행을 되풀이했다는 평가가 실형 쪽으로 무겁게 작용하는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죄가 1개로 정리되면 늘어난 위쪽 끝이 사라지고, 되풀이했다는 평가를 받을 여지도 줄어듭니다.

대법원은 앞선 범행에 그대로 따라붙은 행위는 앞선 죄에 흡수되어 따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앞선 행위를 벗어나 새로 시작한 것으로 볼 만한 행위라야 별개의 죄입니다. 이 사건의 뒷부분은 같은 자리에서 사이를 두지 않고 앞부분에 이어졌고, 새로 시작한 행위로 볼 사정이 없었습니다.

4. 죄의 개수는 최종 의견 진술에서 한 번만 말했습니다

덮어 둔 서면 묶음 두 권 너머, 서류 없이 일어서서 재판부에 말하는 변호인을 그린 법정 삽화 — 「인정할 것을 전부 인정한 자리에서 올린 의문은 그 하나뿐이었습니다」라는 글귀가 얹힌 이미지

문제는 이 주장을 어떻게 꺼내느냐였습니다.

반성과 선처로 채운 서면 한가운데 죄의 개수를 다투는 법리가 들어가면, 말로는 반성한다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사람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뉘우치는 태도와 날 선 법리 다툼은 한 서면 안에서 서로를 깎습니다.

그래서 이 주장은

서면에 쓰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한 줄도.

대신 변론을 모두 마치고 변호인이 최종 의견을 말하는 자리에서, 재판장께 직접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건은 전부 인정하고 양형을 구하는 사건입니다. 다만 변호인으로서, 공소장 그 자체만으로도 법리상 짚어볼 부분이 있습니다. 사건의 시간과 장소로 보면, 이것은 두 개의 죄가 아니라 하나의 죄에 흡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만은, 부디 한 번 검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길게 다투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그것도 ‘검토해 달라’는 청(請)으로. 인정할 것을 전부 인정한 자리에서 올린 의문은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5. 판결 — 주문에 없는 일부 무죄, 그리고 집행유예

판결은 검사가 뒷부분을 떼어 따로 기소한 죄를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판결 이유에는 그 부분이 앞선 행위에 흡수되어 별개의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적혔습니다. 하나의 죄로 묶이는 부분이라 주문에 ‘무죄’가 따로 붙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이어진 행위 도해 — 공소장은 앞부분과 뒷부분을 죄 2개로 기소했고, 판결은 앞부분을 유죄로 보고 뒷부분은 앞선 행위에 흡수되어 별개의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 이유에 적었으며 주문에 무죄가 따로 붙지 않은 구조

그 행위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앞선 죄로 처벌받는 행위를 한 번 더 세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죄가 1개로 줄자 형의 위쪽 끝이 내려왔고, 초범이라는 점과 진지한 반성, 피해자와의 합의가 집행유예 쪽으로 무게를 실었습니다.

결과는 집행유예였습니다.

신상정보 공개명령과 고지명령,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선고되지 않았습니다. 법은 이 3가지를 원칙적으로 붙이되, 붙이면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빼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신상정보 등록은 유죄가 확정되면 법에 따라 생기는 것이라 남았습니다.

6. 봐주는 것이 아니라, 맞게 매기는 것

무죄를 원하던 의뢰인이 모든 것을 인정했고, 모든 것을 인정한 그 자리에서 공소장의 죄 하나가 덜어졌습니다. 인정과 피해 회복이 먼저였고, 죄의 개수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한 행위를 두 번 세지 않게 하는 일은 책임을 덜어 주는 일이 아니라, 그 행위에 맞는 만큼의 책임을 지게 하는 일입니다. 봐주는 것이 아니라, 맞게 매기는 것입니다.

무죄를 원하는 의뢰인에게는 다툴 수 없는 것을 정직하게 일러주고, 모든 것을 인정한 의뢰인을 위해서는 다툴 수 있는 것을 끝까지 찾아냅니다. 인정과 다툼은 반대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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