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기 · 2026년 6월 10일 · 변호사 김영빈
개업기 ⑤ 개업의 산수
변호사 개업은 생각보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 개업 비용의 산수와 예산 배분.
변호사 개업은 생각보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글 끝에 저는, 우선 자신이 꿈꾸는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그림을 그리고 가는 게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그림을 그렸으면, 다음은 값을 매길 차례입니다.
개업을 망설이게 하는 건 사실 용기가 아니라 산수입니다. 저도 개업 전에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게 두 개의 숫자였습니다. 들고 시작해야 하는 돈, 그리고 매달 나가는 돈. 이번 글은 그 두 숫자 이야기입니다. 버는 쪽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 그건 사건마다, 사무실마다 너무 달라서 제가 일반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가는 쪽은 다릅니다. 나가는 돈은 설계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업은 생각보다 가벼운 업입니다
식당을 하나 연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방 설비, 집기, 간판, 권리금. 손님을 받기도 전에 수천만 원이 바닥에 깔리고, 업종에 따라 억대까지도 가지요. 장사는 시작하는 데부터 돈이 드는 일입니다.
그에 비해 변호사 사무실의 ‘설비’ 목록을 적어 보면 민망할 정도입니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 복합기. 끝입니다. 끽해야 가구와 컴퓨터 정도인데, 그마저도 일부는 집에서 쓰던 걸 가져와도 됩니다. 우리 업의 설비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격이 곧 설비입니다.
종이 기록을 거의 없앤 사무실이라면(①에서 적었습니다) 캐비닛과 창고도 빠집니다. 그러니 변호사 개업의 초기 비용에서 장비는 변수가 아닙니다. 진짜 변수는 따로 있습니다. 인테리어입니다.
사무실의 일은 하나뿐입니다
인테리어 견적을 내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서면을 쓰고, 기록을 읽고, 판례를 뒤지는 일은 — 이제 사무실이 아니어도 됩니다. ②와 ③에서 적은 인프라를 깔아 두면 일이 공간에서 풀려납니다. 저는 실제로 이동 중에 핸드폰으로 AI에 업무를 걸어 두는 날이 많습니다. 집에서도 하고, 사무실에서도 하고, 어디서든 합니다.
그러면 사무실이어야만 하는 일은 하나만 남습니다. 의뢰인과 마주 앉는 일입니다. 사무실은 결국 변호사와 의뢰인이 편하게 만나기 위한 — 좋은 상담을 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적어도 제 사무실은 그렇습니다.
이 한 줄이 정해지면, 인테리어의 산수가 통째로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산은 상담실로 모입니다
보통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장 공들인 방은 대표실입니다. 원목 책상, 벽을 채운 책장, 창밖 전망. 손님보다 주인이 좋은 방을 쓰지요.
저는 반대로 갔습니다. 제 방은 창문이 없는 방, 흔히 먹방이라고 부르는 방입니다. 채광이 가장 좋은 자리는 상담실이 가져갔습니다. 인포가 제 방보다 화려하고, 탕비실은 의뢰인 동선 밖으로 치웠고, 기록방은 아예 없습니다. 깔끔함과 예산은 의뢰인이 보고, 걷고, 앉는 자리에 전부 들어갔습니다. 일은 어디서든 되니까, 제 방에 필요한 건 문과 책상 정도면 충분합니다.
①에서 저는 사무실을 비웠다고 적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운 게 아니라 옮긴 겁니다. 대표실의 권위 연출에 갈 돈이 의뢰인의 경험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이 좁힘이 그대로 절감이 됩니다. 인테리어는 면적의 산수입니다. 전체 평수에 고르게 바르는 대신 의뢰인이 머무는 동선에만 바르면, 총액은 내려가고 의뢰인이 체감하는 밀도는 올라갑니다. 싸게 한 게 아니라 좁게 한 건데, 견적서에는 싸게 한 것처럼 찍힙니다.
매달 나가는 돈은 성격으로 나눕니다
이제 둘째 숫자, 고정비입니다. 항목을 줄 세우는 대신, 저는 세 칸으로 나눕니다.
0으로 만든 칸. 광고비를 쓰지 않습니다. 광고 대신 이런 글을 직접 씁니다. 종이와 창고에 들어가는 돈도 거의 0입니다. 그리고 머릿수 — 사람을 쌓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④에서 충분히 했습니다.
아끼지 않는 칸. AI 구독료는 아끼지 않습니다. 사람 월급과는 자릿수가 다른 돈으로 밤에도 주말에도 도는 손이 하나 늘어나는 셈이니, 이건 비용이라기보다 설비에 가깝습니다. 전속 한 사람의 대우도 아끼지 않습니다(④). 그리고 입지 — 의뢰인이 차를 대기 쉬운 자리는 임대료가 좀 더 나가도 받아들였습니다(①).
줄일 수 없는 칸. 임대료, 협회비, 보험, 통신. 이건 그냥 냅니다. 여기서 머리를 쓰려는 순간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되더군요.
가볍게, 그러나 가야 할 자리에는 전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변호사 개업의 초기 비용은 장비가 아니라 인테리어가 변수이고, 인테리어는 “이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먼저 정하면 크게 접힙니다. 고정비는 항목이 아니라 성격으로 나누면, 0의 자리가 의외로 많습니다.
가볍게 시작한다는 건 싸게 시작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돈이 가야 할 자리에만 가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디에 0을 박고 어디에 아낌없는지를 보면 그 사무실이 무엇을 믿는지가 보입니다. 제 사무실은, 돈이 상담실로 모이는 사무실입니다.
개업의 그림을 그리고 계신 분이라면, 산수부터 겁내실 일은 아닙니다. 자릿수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그 상담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 다음 글에서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