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기 · 2026년 6월 9일 · 변호사 김영빈
개업기 ③ 한 대가 아니라, 팀으로
자료를 통째로 쥐어 주고, 쓰는 AI와 부수는 AI를 나눠 부리기까지 — AI를 팀으로 운용하는 법.
자료를 통째로 쥐어 주고, AI를 나눠 부리기까지
지난 글에서 Claude Code를 컴퓨터에 앉히고, 폴더 하나로 첫 분석까지 받아 봤습니다. 그런데 그건 맛보기였습니다. 폴더 하나가 아니라 사무실 자료 전체를 쥐어 주고, 거기에 도구를 붙이고, 한 대가 아니라 여러 AI를 팀으로 부리는 것 — 진짜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합니다.
개업기 ①에서 “그 시스템의 한가운데에 AI가 있다”며 다음에 통째로 뜯어 보이겠다고 했죠. 한 글 늦었지만, 이번이 그 글입니다.
1. 자료를 통째로 쥐어 주기
지난 글에서는 폴더 하나를 만들어 그 안의 자료를 분석시켰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일을 그렇게 매번 폴더에 옮겨 담을 수는 없습니다. 사건 자료 전체가 한자리에 있어야 하고, AI가 그걸 통째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사무실 자료는 개업기 ①에서 말씀드렸듯 전부 디지털로,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종이를 거의 없애고 구글 드라이브에 넣었으니까요. 남은 건 그 한곳을 AI에게 그대로 보여 주는 것뿐입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구글 드라이브 데스크톱이라는 공식 프로그램을 깔면, 내 드라이브 전체가 USB를 꽂은 것처럼 컴퓨터에 새 드라이브(예: G:)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Claude Code는 그걸 그냥 내 컴퓨터 폴더로 봅니다. 흔히 떠올리는 복잡한 연동(API니 인증이니 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 마운트 한 번으로, 사무실 자료 전체가 AI 손 안에 들어옵니다.
저도 한동안은 정석대로 복잡한 연동을 붙이려 애썼는데, 결국 이 방식이 가장 단순하고 강력했습니다. (구글 문서나 시트 자체를 AI가 직접 다루게 하려면 뒤에서 말할 도구 연결이 한 번 더 필요한데, 그건 보조입니다. 스캔본·PDF·워드 같은 사건 자료 대부분은 마운트만으로 충분합니다.)
2. 손을 더 붙이기
자료가 잡혔으면, 이제 AI에게 ‘손’을 붙일 차례입니다. 기본 상태의 AI는 읽고 씁니다. 거기에 특수한 손을 하나씩 더 꽂을 수 있습니다.
문서를 양식까지 갖춰 워드 파일로 뽑아내는 손. 수만 개의 파일 속에서 필요한 한 줄을 찾아내는 손. 법령과 판례를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서 원문으로 확인하는 손.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하나씩 붙이면 됩니다.
이런 도구 연결을 MCP라고 부르는데,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대개 명령 한 줄로 추가되고, 정확한 방법은 그때그때 공식 문서에 정리돼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발상입니다. AI를 만능 단말기 하나로 두는 게 아니라, 내 일에 맞는 도구를 골라 끼워 간다는 것.
특히 판례에는 한 가지 원칙을 못 박아 둡니다. 절대 AI의 머릿속에서 꺼내지 않는다 — 공개된 판례 데이터베이스의 원문에서 가져온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3. 한 대가 아니라, 팀으로
여기서부터가 본론입니다. 대부분은 AI 하나에 모든 걸 시킵니다. 질문하고, 답을 받고, 그걸로 끝. 저는 다르게 짰습니다. 역할이 다른 여러 AI를 두고, 각자 독립된 자리에서 동시에 일하게 합니다.
서면 초안을 쓰는 AI가 있습니다. 그 초안을 사실관계·증거·판례·법리·논리의 연결, 다섯 축으로 사정없이 물어뜯는 검증 AI가 따로 있습니다. 문장과 단락을 다듬는 AI, 판례를 찾아 확인하는 AI, 그리고 이 전부를 지휘하며 제 의도로 정렬하는 AI가 있습니다. 저는 각자에게 이름과 성격까지 줬습니다. 쓰는 쪽, 부수는 쪽, 정리하는 쪽이 서로 다른 인격이어야 하니까요.
핵심은 하나입니다. 쓰는 인격과 검증하는 인격을 반드시 갈라 둔다는 것. 자기가 쓴 글은 자기 눈에 잘 안 보입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압니다. 밤새 붙들고 쓴 서면이 다음 날 아침에야 허점이 보이던 그 경험. 그래서 초안을 쓴 AI와 그걸 부수러 들어오는 AI는 절대 같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하던 일을, 서로를 견제하는 손들이 동시에 나눠 맡는 구조입니다.
4. AI가 지어내는 가짜 판례를 거르기
여기가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AI는 있지도 않은 판례를 진짜처럼 지어냅니다. 그럴듯한 사건 번호에, 그럴듯한 판시 문장까지 붙여서요. 변호사에게 이건 곧장 사고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AI가 지어낸 가짜 판례를 그대로 법원에 냈다가 제재를 받은 변호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에 들어가는 판례를 절대 AI의 기억에서 꺼내지 않습니다. 전부 공개된 판례 데이터베이스의 원문과 한 줄씩 대조해서, 번호도 날짜도 판시 문장의 토씨까지 맞는 것만 살려 씁니다. 앞에서 “판례는 AI 머릿속에서 꺼내지 않는다”고 한 게 이 뜻입니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한 건을 잡았습니다. 예전에 써 둔 글을 다시 다듬다가, 인용된 판례 하나가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공개 데이터베이스의 원문과 맞춰 보니 사건 번호가 틀려 있더군요. 기억에 의존해 적다 생긴 흔한 착오였습니다. 검증하는 손이 따로 없었다면, 그대로 다시 세상에 나갔을 겁니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한 문장입니다. 자료를 통째로 쥐어 주고, 도구를 붙이고,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를 서로 견제시키며 부린다.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AI가 변호사를 대신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AI가 빠르게 펼쳐 놓으면, 사람이 끝까지 의심합니다. 마지막 한 줄의 책임은 변호사에게 있고, 그 자리는 제가 비우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건 자동 변호사가 아니라, 한 명의 변호사를 몇 배로 늘려 주는 증폭기입니다. AiN이라는 이름의 N이 사람인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