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6월 20일 · 변호사 김영빈

끝나지 않는 것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에서 실형을 막지 못한 변호인이, 민사에서 다시 그 곁에 선 이야기. 변호는 판결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끔, 제가 진 사건의 의뢰인에게서 편지가 옵니다.

봉투를 받아 든 날,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또박또박 눌러쓴 손글씨였습니다. 교도소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 좁은 방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자기를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다고, 나가면 꼭 떳떳하게 살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마지막 줄은, “건강하세요, 변호사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에서, 그를 교도소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에게 현금을 건네받아 윗선으로 올려보내는, 사슬의 가장 끝, 가장 쉽게 잘려 나가는 자리였습니다.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죄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셈법에 서툰 사람. 그게 제가 받은 첫인상이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을 들춰보면, 그는 늘 무리의 가장자리에 있었습니다. 쉽게 믿고, 쉽게 속고, 쉽게 떠넘겨지는 자리. 누군가 다가와 “이건 그냥 돈만 전달해 주면 되는 일”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사람.

저는 다툴 자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정말로 이 일이 무엇인지 알고 발을 들였는가. 알면서 했는가, 아니면 또 한 번 이용당한 것인가. 거기에 그의 사건이 걸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이 다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마주 앉은 날부터 그는 스스로를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무죄를 다퉈볼 길을 짚어드려도,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기 같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그 말투에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기색조차 없었습니다. 평생 그렇게 배워온 사람처럼,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렸습니다.

저는 여러 번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천장이 있습니다. 의뢰인의 뜻이라는 천장입니다. 길을 보여드릴 수는 있어도, 그 길을 대신 걸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변호하기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저 혼자 그를 변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길은 양형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전부를 걸었습니다. 피해자들을 한 분 한 분 찾아 사정을 말하고, 합의를 받고, 또 받았습니다. 반성문을 쓰게 하고, 탄원서를 모으고, 그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말해 줄 수 있는 자료라면 무엇이든 모았습니다. 그 사람을 실형에서 꺼내는 일에, 제가 가진 것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피해가 수억 원에 이르고, 피해자가 수십 명에 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도, 양형기준은 정직하게 실형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실형이 선고되던 날을, 저는 오래 기억합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항소하면 형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항소장을 준비했습니다. 한 번 더 해보자고.

그러나 그는, 수감 생활에 지쳐 항소마저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평생 자기를 지키는 일에 서툴렀던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지키기를 포기했습니다. 누구도 자기편이 되어준 적 없던 삶이,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자기편에서 밀어낸 것 같았습니다.

그게, 이 사건에서 제가 가장 오래 입맛이 썼던 대목입니다. 이미 제 손을 떠난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손쓸 수도 없어서, 더 그랬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사건을 실패라고 불렀습니다.

이야기가 거기서 끝났다면, 저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얼마 뒤, 그가 가족을 통해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민사였습니다. 그가 받아 전달했던 돈을, 이번에는 피해자에게 직접 물어내라는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 사실 앞에서 저는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형사에서 그를 지켜내지 못한 변호사를, 그가 다시 찾아왔다는 것. 세상 누구도 끝까지 곁에 있어 준 적 없던 사람이, 진 변호사에게 다시 자기 일을 맡겼다는 것.

저는 다시 그의 곁에 섰습니다. 그가 사슬의 끝에서 실제로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그 돈은 한 푼도 그에게 남지 않고 전부 위로 흘러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그의 책임을 덜어주었습니다. 그가 짊어지지 않아도 될 몫을, 상당 부분 그의 어깨에서 내려놓게 했습니다.

형사에서 못 한 일을, 민사에서 조금이나마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편지가 옵니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편지가 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판결은 끝납니다. 선고가 내려지고 형이 확정되면, 그 사건은 닫힙니다. 민사도 끝납니다. 책임이 정해지고 금액이 매겨지면, 그 소송도 닫힙니다.

그런데 사람은, 끝나지 않습니다.

판결이 끝나도 그는 살아갑니다. 형사가 끝나고, 민사가 끝나도 그는 살아갑니다. 그 좁은 방 안에서 일본어 단어를 외우고, 자격증 책을 펴고, 나가면 떳떳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번도 자기편이 없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삶의 편에 서보려 하면서.

그가 펜을 들어 “건강하세요”라고 적었을 때, 그는 자기를 끝까지 변호해 준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적은 것입니다. 평생 곁에 아무도 없던 사람이, 처음으로 끝까지 남아 준 한 사람을 알아봐 준 것이라면 고마운 일일 겁니다.

그리고 저는 — 솔직히 말하면, 지는 것이 너무나 싫은 사람입니다. 이기는 것은 매번 처음처럼 기쁘고, 지는 것은 매번 처음 맞는 매처럼 아픕니다. 그 사건은, 한동안 정말 아팠습니다.

돌아보면 바로 그래서, 저는 그 사건을 끝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아파서, 너무 분해서, 그 사람을 그냥 놓아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사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다시 그의 곁에 섰고, 진 자리에서 단 얼마라도 되찾아오려 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진 사건을 놓지 못하는 제 승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 한 번의 판결에서 저는 졌습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생을 건 더 긴 싸움에서라면, 저는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아가는 한, 그리고 그 곁에 제가 남아 있는 한.

이기는 것이 변호의 전부라고 믿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기고 싶습니다. 여전히, 죽도록. 다만 이제는 압니다. 그 싸움이 판결문 한 장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람이 살아가는 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이기는 것’으로 끝맺고 싶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처음처럼.

사건의 다음 결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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