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8월 5일 · 변호사 김영빈
가난하면 뚱뚱하게 살다 일찍 죽으라는 겁니까
마운자로 한 달분이 한국에서는 28만 원, 일본에서는 6만 원대입니다. 국가는 약값 협상을 기한 안에 끝내지 못했고, 싸게 구할 길은 부처 간 공문 한 장으로 막았습니다. 법률에도 시행령에도 없는 그 금지의 근거를 변호사가 직접 추적한 기록 — 소득 상하위의 건강수명 격차 8.67년, 몸과 수명이 돈으로 갈리는 구조, 그리고 항의할 상대조차 없는 결정 방식에 관한 칼럼입니다.
마운자로 금지 사태가 드러낸 것 — 몸도 수명도 돈으로 갈리는 나라, 그리고 그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
어젯밤에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요지는 두 줄입니다. 마운자로 값이 일본보다 한국이 다섯 배 비싸다는 것, 그리고 정부는 약값에는 손을 놓은 채 반입 통제만 조이고 있다는 것.
저도 읽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지 확인해 보려고 근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찾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겨우 윤곽을 잡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게 약값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8.67년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건강수명 차이입니다. 그냥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아프지 않고 사는 기간의 차이입니다.
한때 좁혀지던 이 격차는 2013년부터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수명을 삽니다. 이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국내 연구진이 계산해 낸 숫자입니다. 8년 하고도 8개월. 그 시간 동안 누구는 걸어 다니고 누구는 누워 있습니다.
몸은 이미 계급의 표지입니다
성형은 오래전에 돈이 됐습니다. 피부도, 치아도, 머리숱도 그렇습니다. 값을 알면 얼굴을 보고 대략 얼마짜리인지 짐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몸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여성은 소득이 높을수록 비만율이 낮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운동하고, 값싼 열량 말고 다른 걸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관리합니다.
날씬함은 이미 살 수 있는 것이 됐고, 그래서 못 산 사람의 몸에 표시가 남습니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비만입니다. 10년 전에는 네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되돌릴 약이 나왔습니다
체중이 실제로 빠집니다. 그것도 상당히. 고도비만 환자에게는 미용이 아니라 치료입니다. 당뇨, 심혈관 질환, 관절, 수면무호흡 — 비만이 끌고 오는 것들이 같이 물러납니다.
수명을 되사는 약입니다.
한국에서 한 달분이 28만 원입니다. 일본에서는 6만 원대입니다. 같은 회사가 만든 같은 약이고, 포장지의 언어만 다릅니다.
그래서 국가는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값을 못 낮췄습니다.
건강보험에 넣는 협상이 올해 5월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약가 방식을 적용해 보려다가 60일 협상 기한 안에 결론을 못 내고 결렬됐습니다. 논의할 게 많아서 시간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다시 신청은 했고, 빨라야 내년입니다.
제도 실험이 마감을 못 지킨 겁니다. 그 1년치 차액은 협상장에 앉았던 어느 쪽도 내지 않습니다.
둘째, 싸게 사 올 길을 막았습니다.
식약처가 관세청에 품목명을 적어 보냈습니다. 위고비, 마운자로, 삭센다. 그날부터 일본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정품이 공항에서 반송되고 폐기됩니다.
가짜 약이 아닙니다. 무자격 유통도 아닙니다. 걸린 건 국내 값을 안 내겠다는 선택 하나입니다.
식약처는 합법적인 길이 있다고 안내합니다. 진단서를 받아 추천 기관에 신청하면 된다고요. 창구는 두 곳입니다. 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희귀의약품이 아니라서 안 된다고 합니다. 지자체는 국내에 이미 허가된 약이라서 안 된다고 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고, 아무도 발급하지 않습니다.
이걸 누가, 어디서 정했습니까
여기가 진짜입니다.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이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 시행령도 그대로입니다. 공청회도, 입법예고도, 표결도 없었습니다.
공문이 한 장 갔습니다.
그게 고시인지, 명령인지, 지침인지, 그냥 협조 요청인지 — 대부분의 국민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관보를 뒤질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어느 부서의 누가 결재했는지, 무슨 근거로 판단했는지, 반대 의견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창구가 없습니다.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수만 명의 몸에 관한 결정인데 그 수만 명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식의 편리함이 여기 있습니다. 법을 고쳤다면 반대할 수 있습니다. 처분을 했다면 다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문 한 장에는 항의할 상대도, 취소를 구할 대상도 없습니다. 누구를 붙잡아도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가 돌아옵니다.
금지한 사람이 없는 금지가 가장 안전한 금지입니다.
변호사인 저도 근거를 못 찾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법령을 찾고 읽는 것으로 밥을 먹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엇을 금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법률에는 없습니다. 시행령에도 없습니다. 시행규칙에 예외 조항이 하나 있고, 그 조항이 식약처 고시로 넘깁니다. 그 고시를 열면 다른 고시의 별표를 가리킵니다. 별표를 따라가면 또 다른 절차가 나옵니다. 그렇게 몇 단계를 내려간 끝에, 정작 지금 사람들을 막고 있는 것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니고 부처끼리 주고받은 통보였습니다.
중간에 한 번 틀리기도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6병까지는 자가사용”이라는 기준이 통관을 열어 주는 줄 알았는데, 조문 제목을 끝까지 보니 관세를 매길지 말지를 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세금 이야기를 통관 자격으로 읽은 겁니다. 지금 인터넷에 도는 설명 상당수가 같은 자리에서 틀려 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 저는 여기서 멈췄습니다. 다만 어렵다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직업으로 법을 읽는 사람이 몇 시간을 들이고도 확신이 안 서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일반 국민은 어떻게 합니까. 뉴스에서 “막혔다”는 말을 듣고, 커뮤니티에서 잘못된 정보를 읽고, 공항에서 물건을 뺏기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왜 뺏겼는지는 끝내 모릅니다.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과 알리지 않은 것은 결과가 같습니다.
화를 내려고 해도 상대가 없습니다
행정이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면 다툴 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처분서 아래에는 늘 이런 문구가 붙습니다. “이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번 건에는 그게 없습니다.
식약처가 관세청에 보낸 통보는 국민을 상대로 한 처분이 아닙니다. 기관끼리 주고받은 문서입니다. 그러면 세관에서 물건을 못 받은 걸 다퉈야 하는데, 세관은 통보받은 대로 요건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자기 판단으로 막은 게 아닙니다.
누구를 상대로, 무슨 행위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어야 하는지. 그것부터가 하나의 사건입니다. 실제로 이 문제로 저를 찾아오시면 저는 “다투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을 하는 게 제 직업이라는 사실이 답답합니다.
권리는 제한할 수 있는데 구제 절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제한은 공문 한 장으로 되고, 회복은 길이 없습니다. 이 비대칭이 우연히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분은 오남용이라고 합니다
정상 체중인 사람이 미용 목적으로 맞는 게 늘었다고 합니다. 맞는 진단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국내 병원에서 벌어집니다.
처방 기준을 조였습니까. 미용 목적 처방을 제한했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처방은 지금도 그대로 나갑니다.
오남용이 진짜 문제였다면 처방을 봤어야 합니다. 안 봤습니다. 국경만 막았습니다.
그러면 이 규제가 실제로 지킨 것이 무엇입니까. 국민 건강이 아닙니다. 지켜진 건 국내 가격입니다.
남는 그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난할수록 살이 찝니다. 살이 찌면 병이 오고 수명이 깎입니다. 그걸 되돌릴 약이 나왔는데 한 달에 28만 원입니다. 국가는 값을 낮추는 데 실패했고, 싸게 구할 길은 공문 한 장으로 막았고, 그 결정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자리에서 내려졌습니다.
남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몸은 살 수 있는 사람만 사십시오.
부자는 계속 날씬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뚱뚱하게 살다 8년 먼저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 격차를 좁히라고 만든 것이 건강보험인데, 지금은 그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 구조를 매일 봅니다
형사 사건을 하다 보면 돈이 사람의 인생 길이를 정하는 걸 계속 보게 됩니다.
벌금을 못 내서 노역장에 갑니다. 합의금을 못 만들어서 실형을 받습니다. 같은 행위를 하고도 통장에 얼마가 있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그리고 그 결정도 대개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내려집니다.
이번 일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그겁니다. 이번엔 자유가 아니라 몸과 수명이 갈릴 뿐입니다.
규제를 하려면 하십시오. 다만 금지한다고 쓰고, 누가 금지했는지 남기고, 왜 금지하는지 설명하십시오. 그게 규제의 부담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지금처럼 아무도 금지하지 않은 채로 금지되어 있으면, 국민은 무엇에 화를 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이 방식의 목적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