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8월 24일 · 변호사 김영빈

마지막 전관의 시대

검찰청 폐지로 '전 검사'가 한꺼번에 시장으로 나오는 지금, 전관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넘쳐서 값을 잃습니다. 전관의 값이 실력이 아니라 희소함이었다는 것, 미국의 former prosecutor와 일본의 야메켄이 먼저 지난 길, 검사 정원 2,292명과 공소청 2,000명 사이에서 수백 명이 변호사 시장으로 나오는 구조를 짚고 — 전관이 넘치는 시대가 의뢰인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이유까지 이어갑니다.

전관은 사라져서 끝나는 게 아니라, 넘쳐서 끝납니다.

1. 마지막 전관이 지금 쏟아집니다

10월 2일, 검찰청이 문을 닫습니다. 수사는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소는 공소청으로 나뉩니다. 오래 이어져 온 형사사법의 뼈대가 통째로 바뀌는 겁니다.

이 변화를 두고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검사라는 자리가 사라지니, 검사 출신이 누리던 전관예우도 사라지겠구나.

절반만 맞습니다. 앞으로 “검찰청 검사 출신”이라는 이력은 더 이상 새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전관의 시대는 저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벌어지는 일은 정반대입니다. 검찰이라는 틀이 해체되면서 그 안에 있던 검사들이 한꺼번에 옷을 벗고 시장으로 나옵니다. 마지막 전관 세대가,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쏟아지는 겁니다.

사라지기 때문에 오히려 넘칩니다. 이 역설이 앞으로 몇 년의 형사변호 시장을 설명합니다.

2. 값을 지킨 건 실력이 아니라 희소함이었습니다

전관의 몸값이 높았던 이유를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력만으로는 그 값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는 전관이 아니어도 많고, 전관이라고 다 유능한 것도 아니니까요.

값을 만든 진짜 원천은 희소함이었습니다. 판검사 출신이 드물던 시절, 그 경력은 좁은 문을 통과했다는 증표였고, 무엇보다 “수사기관과 법원 안쪽의 사정을 안다”, “그 세계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기대를 팔 수 있었습니다. 전관예우라는 말이 겨눈 게 바로 그 기대입니다. 실력에 붙은 값이라기보다, 연줄과 내부 감각에 붙은 웃돈이었지요.

경제학에는 이런 웃돈을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지대(地代)입니다. 땅처럼 공급이 막혀 있어서 생기는 초과 이윤이지요. 지대의 유일한 조건은 희소함입니다. 그래서 공급이 풀리는 순간 지대는 무너집니다. 값을 지키던 것이 실력이 아니라 희소함이었다면, 흔해지는 순간 값은 내려앉습니다. 전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3.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끝난 실험입니다

이건 예언이 아니라, 이미 다른 나라에서 끝난 실험입니다.

미국에서 “former prosecutor(전직 검사)“는 형사변호사 광고에 흔하디흔한 문구입니다. 로스쿨이 해마다 수만 명을 배출하고 검사로 몇 해 일하다 개업하는 경로가 워낙 보편적이라, 그 경력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어느 변호사가 연방 법정에서 자기 맞은편에 앉은 전직 연방검사를 세어보니 아홉 명이었고, 전부 최근 몇 년 사이에 검찰을 나온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한때 드문 통찰과 인맥을 뜻하던 이력이, 지금은 “연방 시스템 안에 좀 있었다”는 정도의 신호로 값이 내렸습니다. “검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는 말은 이제 실력의 증명이 아니라 영업 멘트에 가깝습니다.

일본에는 이런 사람을 부르는 단어까지 있습니다. 야메켄(ヤメ検) —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야메켄이라면 특별한 대우를 기대했지만, 2000년대에 미국식 로스쿨을 들여와 법조인 수를 크게 늘리면서 그 특별함도 옅어졌습니다. 배출을 늘린 결과 로스쿨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 진통까지 겪었지만, 방향만은 분명했습니다. 법률가가 흔해지면, 어느 출신이든 출신값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두 나라의 결론은 같습니다. 숫자가 늘면, 이름표는 값을 잃습니다.

4. 마지막 전관은 몇 명일까요

한국은 이 개편이 있기 전부터 이미 변호사가 흔한 나라였습니다. 로스쿨 도입 뒤 등록 변호사는 2012년 1만 4천여 명에서 2025년 3만 8천 명 가까이로 두 배 반을 넘겼고, 변호사 한 명이 1년에 맡는 민사 본안 사건은 같은 기간 73건에서 22건으로 줄었습니다. 파이가 커지는 속도보다, 나눠 갖는 사람이 느는 속도가 빨랐던 겁니다.

이렇게 포화된 시장 위에, 이번에는 검사들이 얹힙니다. 규모를 공개된 숫자로 어림해 봅니다.

현직 검사는 정원이 2,292명입니다. 그런데 개편을 앞둔 사직이 이어지면서, 2026년 초 실제 현원은 2,034명까지 내려왔습니다. 정원보다 258명이 적은, 역대 최저 수준입니다. 이탈은 이미 시작된 셈이지요.

문제는 검사 신분을 그대로 이어갈 자리가 사실상 공소청 하나뿐이고, 그 검사 정원은 2,000명 이하로 묶여 있다는 점입니다. 정원 계산만으로도 최소 300명 가까운 검사가 검사로는 남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큰 조직인 중수청은 정원 2,874명의 대형 기관이지만, 검사 자리가 아니라 수사관 조직입니다. 그리로 가려면 검사 배지를 내려놓고 수사관이 되어야 하니, 적지 않은 이들이 망설입니다.

그래서 길은 셋으로 좁혀집니다. 좁아진 공소청 자리를 두고 경쟁하거나, 법원으로 방향을 틀거나(실제로 올해 검사 출신 법관 지원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변호사 배지를 다는 것. 마지막 문으로 나오는 인원이, 낮게 잡아도 수백 명입니다. 평소의 개업과는 비교가 안 되는 밀도로, 짧은 기간에 “전 검사”가 시장에 풀린다는 뜻입니다.

정확한 예측은 아닙니다. 공개된 정원과 현원으로 그린 어림입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합니다. 마지막 전관 세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전관이기도 합니다.

5. 흔해진 다음에 남는 것

여기까지를 변호사 업계의 위기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맡기는 사람의 자리에서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번 뒤집어 봅니다. 전관예우가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연줄로 결과가 갈린다고 여겨지는 일이 더 흔해지는 사회가 과연 밝은 사회일까요. 전관의 값이 비싸다는 건, 실력이 아니라 인맥을 사야 하는 시장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누구는 연줄로 앞서가고 누구는 그러지 못한다면, 그건 의뢰인에게 손해이자 불공정입니다. 전관 프리미엄이 두껍던 시절은 변호사에게 좋았을지 몰라도, 사건을 맡기는 사람에게 좋은 시절이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전관들이 쏟아져 그 프리미엄이 묽어지는 건, 어두운 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가운 쪽입니다. 연줄값을 얹어 내지 않아도 되고, 변호사를 고르는 기준이 “어느 방에 있었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출신이 흔한 정보가 되면, 남는 질문은 하나뿐입니다. 이 사람은 내 사건에서 실제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건 이름표가 아니라 기록입니다.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썼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왔는지. 전관의 시대가 저무는 자리에서 값이 오르는 건, 결국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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