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8월 16일 · 변호사 김영빈
책임의 종착지 - 요즘 사건이 멈춰 있는 이유
결재선은 일을 느리게 만드는 장치이기 전에 책임을 나누어 지는 장치였습니다.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형사 사건이 멈춰 있는 이유를 조직도가 아니라 도장 하나의 무게로 읽고, 수사관이 책임의 종착지가 된 전환기에 변호인의 서면이 맡게 되는 새 역할까지 짚었습니다.
결재선은 일을 느리게 만드는 장치이기 전에, 책임을 나누어 지는 장치였습니다. 10월 2일에 철거되는 것은 간판이 아니라 그 선입니다 — 그리고 그 무게가 지금, 한 사람의 책상 위로 이사하는 중입니다.
직장 생활을 해 본 분이라면 결재판을 들고 상사의 방 앞에 서 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문이 열리기 전의 초조함과, 서명이 끝난 뒤의 홀가분함. 그 홀가분함의 정체를 우리는 별로 캐묻지 않습니다. 일이 승인되었다는 안도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감정의 가장 큰 몫은 다른 데서 옵니다. 이 결정이 잘못되어도, 이제 나 혼자의 것은 아니라는 것.
월요일 아침의 기획안이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서류가 한 사람을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정하는 것이라면, 문 앞의 초조함과 서명 뒤의 홀가분함은 전혀 다른 크기가 됩니다. 형사 절차는 그 무게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느 조직보다 결재선을 겹겹이 쌓아 두었습니다.
10월 2일에 검찰청이 없어집니다. 기소와 공판만 맡는 기관이 새로 생기고, 중대범죄 수사를 맡는 기관이 따로 생기고, 나머지 사건의 수사는 시작부터 종결까지 경찰의 것이 됩니다. 이 개편이 옳은지 그른지는 오늘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 논쟁은 지면이 차고 넘칩니다. 오늘 들여다보려는 것은 조직도보다 훨씬 작은 것, 도장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결재선은 책임을 나누는 장치였습니다
공무원 조직의 결재는 악명이 높습니다. 사건 하나를 종결하는 데 도장이 몇 개씩 필요하고, 그 도장을 다 받는 동안 시간이 갑니다. 효율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설계입니다. 저도 오래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형사 기록을 업으로 읽다 보면 그 도장들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 옵니다. 결재선 위의 도장 하나는 서명이 아니라 지분입니다. 책임의 지분. 도장이 다섯 개 찍힌 결정은 다섯 사람이 나누어 진 결정입니다. 결과가 잘못되어도 “내가 틀렸다”가 아니라 “우리가 검토했다”가 됩니다. 결재선은 일을 느리게 만드는 대가로, 사람을 지켜 온 장치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형사 절차에서 그 선의 맨 끝에는 언제나 검사가 있었습니다. 경찰 안에도 결재선은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 선을 다 지난 결론이 기관의 담장을 넘어 한 번 더 읽혔습니다. 일선 수사관에게 그 구조는 갑갑한 통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든든한 방패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결정이든 그 위에 한 층이 더 있다는 것. 최종 책임은 여기가 아니라는 것.
떠나는 사람은 도장을 아낍니다
전환기의 조직은 교과서적으로 움직입니다. 권한의 만료가 예정된 조직은 재량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두 달 뒤 없어질 기관의 이름으로 애매한 사건에 도장을 찍을 이유가, 찍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명백한 사건은 처리되지만 판단이 필요한 사건일수록 뒤로 밀립니다.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같은 계산을 합니다. 다만 그 합리적인 계산들이 모이면, 조사는 끝났는데 결정이 나오지 않고, 넘어간 사건은 기소도 불기소도 아닌 상태로 몇 달째 그 자리에 머뭅니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바쁘고 하나같이 지쳐 있는데, 사건만 멈춰 있습니다. 사람은 일하는데 일이 멈춰 있다면, 멈춘 쪽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남는 사람은 혼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경찰 쪽에서는 반대 방향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7월 말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던 길을 닫았습니다. 10월 2일부터 검사는 경찰에 보완을 요구할 수 있을 뿐 스스로 메우지 못합니다. 결론이 담장을 넘어 한 번 더 읽히던 구조가 끝나고, 어제까지 결재선의 중간 칸이었던 자리가 하루아침에 종착지가 됩니다.
권한이 커졌으니 좋은 일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조직 개편의 설계도에는 아마 그렇게 적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선에서 오간다는 말은 결이 다릅니다. “이걸 그럼 제가 전부 책임져야 합니까.”
이 질문을 웃을 수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책임을 나누도록 설계된 구조가 있었고, 그 안에서 일을 배우고 유능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철거되는 것은 구조일 뿐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혼자 책임지는 일은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던 사람에게는 처음에 아픕니다. 권한과 함께 배달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게이고, 그 무게 앞에서 결정을 미루는 것은 나태가 아니라 정직한 반응입니다.
그러니 지금 형사 절차의 정체는 이렇게 읽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아무도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책임이 이사하는 중이어서. 이삿짐이 오가는 집에서는 원래 아무것도 제자리에 없습니다.
서면이 하는 일이 달라집니다
변호사의 자리에서 보면 이 변화는 서면의 정의를 바꿉니다.
수사기관에 내는 서면은 원래도 법정에 내는 서면과 다릅니다. 재판부 앞에서는 절제가 미덕이지만, 사건이 산더미인 수사관 앞에서는 친절이 미덕입니다. 요건을 정리하고, 사실을 요건에 하나씩 붙이고, 비슷한 사안이 실제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까지 얹어서 — 읽는 사람의 시간을 아껴 주는 문서. 그것이 지금까지의 좋은 서면이었습니다.
10월부터는 여기에 한 층이 더 얹힙니다. 송치든 불송치든 그 결정은 언젠가 이의신청으로, 민원으로 되물어질 수 있고, 그때 답하는 사람도 결정한 본인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서면은 시간을 아껴 주는 문서를 넘어, 결정을 지켜 주는 문서여야 합니다. 수사관이 결론을 내린 뒤에 “나는 이 근거로 이렇게 판단했다”고 꺼내 보일 수 있는 문서. 읽는 사람의 서랍에 들어가, 그 사람의 방패가 되는 문서.
읽는 사람이 결재선의 첫 칸에서 종착지로 바뀌었으니, 문서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도장이 하나뿐인 책상
저는 결재선이 없는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개업 변호사의 책상에는 도장이 하나뿐이고, 그 도장 위에는 아무 층도 없습니다. 제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그 자리에서 종착지입니다. 그래서 요즘 경찰서의 공기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결재판을 들고 문 앞에 서 보셨던 분이라면, 사실 이 이야기의 양쪽을 모두 알고 계신 셈입니다. 서명 하나로 가벼워지던 저녁과, 내 이름만 남은 서류를 내려다보던 밤. 우리는 모두 그 두 자리 사이 어딘가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10월의 형사 절차는 그중 두 번째 자리를, 아주 많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배정하는 중입니다.
그 무게는 분명히 적응이 됩니다. 다만 적응에는 시간이 걸리고, 지금 현장이 지나고 있는 몇 달이 정확히 그 시간입니다. 그러니 사건이 멈춰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아무도 일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모두가, 처음이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