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6월 24일 · 변호사 김영빈
담배 안 피웠는데 20만 원 물어내라?
비흡연자에게 흡연 배상 20만 원을 청구한 숙소. 증명할 사람은 청구하는 쪽이고, '안 피웠다'를 증명하라는 요구는 법이 인정하지 않는 악마의 증명입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크게 번진 글을 하나 봤습니다. 제목은 “비흡연자인데 담배폈다고 20만원 배상하라고함” 이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비흡연자가 숙소에 묵었는데, 퇴실하고 나니 주인이 “객실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며 2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도 곧바로 작성해 둔 소장 캡처와 계좌번호를 들이밀면서요. 댓글은 “안 피웠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저도 그 분노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보면, 그 막연한 억울함에는 사실 정확한 법적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이런 청구는, 원칙적으로 안 내도 됩니다. 사실은 흡연을 했건, 비흡연자이건 간에 말이죠.
”냄새가 났다”는 건, 증명이 아닙니다
손해배상은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증명하는 게 원칙입니다. 숙소 주인이 배상을 받으려면 ①그 손님이 객실에서 담배를 피웠고 ②그래서 손해가 생겼으며 ③그 둘이 연결된다는 걸 주인이 보여야 합니다. 손님이 결백을 먼저 증명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주인이 내놓은 건 “냄새가 났다”가 전부입니다. 이건 주인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 “이 손님이 피웠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복도에서 밴 냄새일 수도, 이전 손님이 남긴 냄새일 수도, 옷에 묻어 들어온 냄새일 수도 있습니다. 냄새 하나로 특정 손님을 지목하는 건, 법정에서는 증명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안 피웠다는 걸 증명하라” — 이게 악마의 증명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주인은 비흡연자인 손님에게 “그럼 안 피웠다는 걸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댓글들이 정확히 짚었습니다. 없었던 일을, 일어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 — 법에서는 악마의 증명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실은 불가능한 증명입니다. 피우지 않았다는 사진은 찍을 수가 없으니까요.
법은 바로 그래서 증명의 짐을 “있었다고 주장하는 쪽”에 지웁니다. 없음을 증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이 안 한 걸 증명하라”고 들이밀 때, 그건 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요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낀 부당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과거 미개한 시절에는 악마의 증명이 꽤나 있었죠. “니 죄를 니가 알렸다!” 라면서 주리를 틀고, 그래서 자백을 받으면 증거가 있으니 목을 쳐버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이야기죠.
그래서 “보건소 가서 니코틴 검사를 받아오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변호사로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사후에 받는 니코틴 검사는 “그날 그 방에서 안 피웠다”를 증명해 주지도 못하고, 애초에 손님에게는 그런 증명을 할 의무 자체가 없습니다. 증거를 가져와야 하는 쪽은 주인입니다.
소장 캡처와 계좌번호, 겁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작성해 둔 소장을 캡처해서 보내고 계좌번호부터 들이미는 모습 — 같은 일을 여러 번 해 본 솜씨로 보입니다. 진짜 소송을 하려는 사람은 보통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소장을 미리 들이미는 건 대개 “귀찮으니 그냥 보내라”는 압박입니다. 실제로 소장을 접수했는지도 의심스럽네요.
설령 주인이 실제로 소액 소송을 걸더라도, “냄새가 났다”는 주장만으로는 청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계좌로 송금하라는 요구에는 강제력이 없으니, 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법원에서 지급명령이 날아온다면, 그건 무시하면 그대로 확정되니 기한 안에 이의신청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증명의 짐을 지는 건 다시 주인입니다.
통쾌하지만, 역고소는 신중해야 합니다
댓글에는 “사기미수로 고소해라”, “협박죄다”, “무고로 역고소하자”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냉정하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상대를 형사로 걸려고 하는 순간, 이번에는 증명의 짐이 우리 쪽으로 넘어옵니다. 사기미수가 되려면 주인이 “거짓인 줄 알면서 속여 돈을 뜯으려 했다”는 점을, 이쪽이 입증해야 합니다. 주인이 정말로 냄새를 맡고 오해한 거라면 성립이 쉽지 않습니다. “안 주면 소송하겠다, 방송에 제보하겠다”는 정도의 말도, 그 자체로는 정당한 권리 행사의 외관이 있어서 곧바로 협박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고는 허위로 형사 고소를 한 경우의 이야기라, 민사로 돈을 달라고 한 이번 건과는 결이 다릅니다.
물론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 같은 수법으로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돈을 뜯어 왔다면, 그때는 사기나 공갈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건 그런 정황과 증거가 쌓였을 때의 이야기지, 화가 난다고 곧바로 꺼내 들 카드는 아닙니다. 통쾌함과 실제로 이기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면
절대 돈부터 보내지 마십시오. 무엇을 근거로 청구하는지 증거를 요구하시고, “냄새가 났다”는 답이 전부라면 거기서 사실상 끝난 이야기입니다. 소액 소송이나 지급명령이 오면 그때 다투면 되고, 증명은 상대의 몫입니다.
굳이 대비를 하시겠다면, 니코틴 검사보다 훨씬 실용적인 게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 숙소에 들어가시면 입실 직후 객실 상태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한 번 찍어두는 것입니다. 나중에 “원래부터 냄새가 났다”, “내가 한 게 아니다”를 보일 단서가 됩니다. 시간 순서를 주인만 쥐고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객실 흡연은 처벌 대상도 아니고, 설령 흡연이 있었더라도 그걸 증명할 사람은 주인입니다. “안 피웠다는 걸 네가 증명하라”는 요구는 악마의 증명이라, 법이 애초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글에 달린 분노는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정확한 법 감각이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적어도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지는 분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