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7월 3일 · 변호사 김영빈
반값 아파트, 약속은 사라지고 환수는 남았습니다
3기 신도시 나눔형 사전청약에서 약속된 전용 모기지(연 1.9~3.0%·40년·LTV 80%)가 본청약 공고에서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시세차익 30% 환수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변경될 수 있다'는 유보 문구의 사정거리, 청약의 유인이라는 법률용어의 의미, 신뢰보호원칙의 좁은 문, 그리고 계약 전인 지금 당첨자가 쥔 세 가지 — 법의 자리에서 읽은 반값 아파트 사태.
어제 오후, 국토교통부 앞에 트럭이 섰습니다. 3기 신도시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띄운 시위 트럭입니다. 지난달 말에는 당첨자 연대의 성명서가 나왔고, 부동산 매체들은 ‘저리 대출 취소 파문’이라는 제목을 달아 연작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커뮤니티에도 올라왔습니다. 네이트판 톡 랭킹에는 “반값 아파트 당첨자들이 지금 발칵 뒤집힌 이유”를 조목조목 정리한 글이 조회수 1만을 넘기며 올라 있고, 클리앙에는 몇 년 전 예비신혼부부 자격으로 당첨돼 본인 표현으로 “본청약 하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온” 당사자의 호소 글이 올라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4년 전의 약속과, 한 달 전의 공고
2022년, 정부는 공공분양 브랜드를 내놓으며 이렇게 안내했습니다. 시세보다 싸게 분양하는 대신 나중에 팔 때 시세차익의 30%를 공공에 돌려주는 ‘나눔형’ — 그리고 그 교환의 반대급부로, 연 1.9~3.0% 고정금리, 최장 40년, 집값의 최대 80%까지 빌려주는 전용 대출을 별도 항목으로 명시해 홍보했습니다. 이 조건을 보고 청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양창릉의 한 블록에서만 877가구가 당첨됐고, 4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전용 대출의 세부 내용은 몇 년째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청약 접수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지난 6월 말, 공고가 나왔습니다. 전용 대출은 그 안에 없었습니다.
금리가 오른 게 아닙니다. 한도가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항목 자체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일반 디딤돌 계열 대출 안내가 들어왔습니다. 한도는 더 작고 소득 기준은 더 좁은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디딤돌 대출에는 주택 가격 상한이 있는데, 이 단지의 분양가는 타입에 따라 그 상한을 넘어섭니다. 대체하라고 안내된 대출이, 정작 이 아파트에는 닿지 않는 세대가 나오는 겁니다. 중도금 집단대출이 가능한지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고, 그사이 분양가는 사전청약 때 추정가보다 1억 원 넘게 올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세차익 30% 환수, 5년 거주의무, 처분 제한 — 나눔형이라는 이름에 붙어 있던 의무들은 전부 그대로 남았습니다.
클리앙의 그 당사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애초에 대출을 이렇게 내팽개칠 거였다면, 누가 나중에 내 집 팔 때 수익의 30%를 국가에 토해내는 나눔형을 선택했을까요?”
국토교통부의 설명은 두 갈래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가계부채 상황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모집공고에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명시해 두었다는 것.
오늘은 이 사안을 법의 자리에서 한번 읽어보려 합니다. 변호사가 보기에 이 사태의 본질은 대출 조건이 아니라, 우리 법이 ‘약속’을 다루는 방식 그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은 바뀝니다. 그런데 이번 건은 결이 다릅니다
지난가을을 기억하실 겁니다. 대출 규제가 한 차례 크게 조여졌을 때, 한 커뮤니티의 성토 글에는 조회수 26만이 찍혔습니다. 대출 정책 하나에 내 집 계획이 뒤집히는 일은, 안타깝게도 처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법의 눈으로 보면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금리가 오르고, 한도가 줄고, 규제지역이 묶이는 것 — 이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일반적인 정책 변경입니다. 시장이 변하면 정책도 변하고, 법은 원칙적으로 여기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정책을 바꿀 자유가 없는 정부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분노한 사람들에게 법이 해줄 말이 마땅치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건은 다릅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877가구라는 특정된 사람들에게, 장래의 일반 규제가 아니라 “이 조건으로 이 집을 공급하겠다”는 개별 안내로, 그것도 금리와 한도와 만기를 숫자로 박아서 한 말이 뒤집혔습니다. 법이 ‘정책 변경’과 ‘약속 철회’를 가르는 선이 대략 여기에 있습니다. 앞의 것은 시장의 일로 감수하라는 게 법의 태도지만, 뒤의 것은 — 적어도 법리적으로는 — 따져볼 자리가 생깁니다.
그 따져볼 자리의 입구에, 국토부가 방패 하나를 세워 두었습니다.
”바뀔 수 있다”는 문구는 어디까지 덮을 수 있나
“변경될 수 있다고 미리 알렸다.”
계약의 세계에서 이런 문구를 유보 조항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법은 이런 문구를 무제한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약관을 다루는 법리에는 오래된 원칙이 있습니다.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둔 조항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거나, 고객이 도저히 예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층위를 나눠야 합니다. 금리가 3%에서 4%가 되는 것 — 이건 변경입니다. 한도가 5억에서 4억이 되는 것 — 이것도 변경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상품 자체가 0이 되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건이 바뀔 수 있다”는 문구를 읽고, ‘그 조건이 통째로 없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유보 조항은 조정의 여지를 남겨두는 장치이지, 구조의 골격을 제거할 백지위임장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 사안에서는 교환의 한쪽 — 차익 30% 환수 — 은 고스란히 남겨두고, 그 대가였던 다른 한쪽만 사라졌습니다. 어느 계약에서든 이런 그림이 법정에 오면, 유보 문구 하나로 덮기에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사태의 진짜 함정이 있습니다.
그 싸움장에, 아직 입장도 하지 못했습니다
약관을 다투려면 계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전청약 당첨자는 아직 계약자가 아닙니다.
사전청약은 본계약보다 몇 년 앞서 수요자를 모집하는 제도입니다. 당첨자가 얻는 것은 본청약에서 우선 공급받을 지위이지, 분양계약상의 권리가 아닙니다. 즉 2022년의 그 화려한 안내문은 — 법의 눈으로 보면 — 계약이 아닙니다. 계약의 준비 단계에서 상대를 끌어들이는 행위. 우리 법은 여기에 이름을 붙여두었습니다. 청약의 유인(誘引).
유인. 꾀어서 끌어들인다는 뜻입니다. 네이트판의 그 정리 글은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습니다. “계약 직전에 핵심 조건을 빼버리면 그건 정책이 아니라 미끼죠.” 그 분은 아마 모르셨을 겁니다 — 법률가들이 백 년 가까이 써 온 용어가 이미 정확히 그 단어라는 것을. 대법원은 분양광고를 원칙적으로 청약의 유인으로 봅니다. 광고와 안내는 계약을 권하는 손짓일 뿐, 그 자체로 지켜야 할 약속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판례는 문을 다 닫아두지는 않았습니다. 광고 속 내용이라도 구체적인 거래조건으로서 당사자가 그것을 전제로 계약에 이르렀다면, 계약의 내용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법리도 함께 서 있습니다. 40년 만기 1.9% 고정금리 80% — 이보다 구체적인 숫자가 있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법리를 세우는 자리도 결국 ‘계약 후’의 법정입니다. 지금 당첨자들이 서 있는 자리는 그 앞마당입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새 공고문이 정본이 되고, 도장을 찍지 않으면 다툴 계약 자체가 없습니다. 이 역설이 사전청약이라는 제도의 법적 민낯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4년 묶어둘 수 있는데, 국민이 국가를 묶어둘 끈은 그 4년 내내 생기지 않습니다.
법이 열어둔 문은 있습니다. 좁을 뿐입니다
그래도 법이 완전히 침묵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법에는 신뢰보호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행정기관이 공적인 견해를 표명했고, 국민이 그것을 믿은 데에 잘못이 없으며, 그 신뢰에 기대어 무언가를 했는데, 행정이 표명을 뒤집어 손해를 입혔다면 — 법이 그 신뢰를 보호한다는 원칙입니다. 앞서 ‘정책 변경’과 ‘약속 철회’를 갈랐던 그 선이 여기서 힘을 발휘합니다. 일반적인 규제 변경 앞에서는 이 원칙이 좀처럼 서지 않지만,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보도자료와 공고로 숫자까지 박아 홍보했고, 그걸 믿은 사람들이 무주택 지위를 유지하며 다른 기회를 접고 4년을 기다린 이 사안은, 원칙이 상정하는 그림에 상당히 가깝습니다.
다만 원칙이 인정되는 것과 구제가 도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약속했던 그 대출을 내놓아라”를 법원이 명령해 주는 절차는 우리 소송 체계에서 마땅치 않습니다. 남는 것은 손해배상 계열인데, 위법성과 과실을 세우고 손해액을 계산해 내는 일은 각각이 관문이고, 그 끝에 도착하는 금액이 4년의 무게에 값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당첨자 연대가 법적 대응을 말하면서도 소송 앞에 정보공개 청구, 감사원 공익감사, 권익위 진정, 국회 청원을 먼저 줄 세운 것은 — 법률가가 보기에 정확한 순서입니다. 정책이 만든 문제는 정책의 속도로 풀리는 길이 가장 빠르고, 법정은 그 길들이 막혔을 때의 최후 수단이자 가장 느린 길입니다.
지금 당첨자가 쥐고 있는 것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당사자가 계시다면, 법률가로서 드릴 수 있는 말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 협상력은 계약 전인 지금이 전부입니다. 서면으로 묻고, 서면으로 답을 받아 두십시오. 전용 대출이 이 단지에 적용되는지, 안 된다면 근거가 무엇인지. 계약 후에 다투는 것보다 계약 전에 확인하는 것이 백 배 쉽고, 그 답변서 한 장이 훗날 어느 절차에서든 출발점이 됩니다.
둘. 2022년의 기록을 전부 보관하십시오. 사전청약 당시 공고문, 안내 책자, 홍보물, 상담 내용. 청약의 유인을 계약의 내용으로 끌어올리는 싸움이든, 신뢰보호를 세우는 싸움이든, 그때 무엇이 어떻게 약속됐는지의 증거는 그것뿐입니다. 지금은 화면에 있지만, 몇 년 뒤에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셋. 포기를 계산하신다면, 포기로 돌아오지 않는 것까지 계산에 넣으십시오. 무주택으로 버틴 4년, 접어둔 다른 청약의 기회 — 이 기회비용은 어떤 절차로도 배상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계산은 분노가 아니라 숫자로 해야 합니다.
약속이 아니었다면, 세워둘 수도 없어야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법은 사전청약의 안내를 약속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청약의 유인이라 부릅니다. 그 냉정한 이름 덕분에, 안내를 바꾼 쪽은 오늘 “미리 알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약의 유인이라는 말은 법의 분류이지 면죄부가 아닙니다. 877가구를 4년 세워둘 수 있었던 힘은 그 안내가 국가의 이름으로 나왔다는 데서 왔습니다. 법적으로 지킬 의무가 없는 말이었다면, 애초에 그 말로 국민을 줄 세우지도 말았어야 합니다. 유인으로 모집하고 의무만 남기는 선례가 쌓이면, 다음 공공분양의 줄은 짧아질 것이고, 그 비용은 결국 제도 전체가 치릅니다.
이번 사안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저는 당첨자들의 일로만 보지 않습니다. 국가가 하는 약속의 무게가 얼마인지를 재는 저울로 봅니다. 그 저울 위에 지금 올라가 있는 것은 대출 상품 하나가 아니라, 공공이라는 말의 신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