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10월 17일 · 변호사 김영빈
아동학대 신고 — 아이가 부모를 신고했고, 변호사는 아이를 달랬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변호사의 착한 거짓말로 아이가 진술을 뒤집어 사건이 끝나는 로펌 웹툰의 해피엔딩을 형사 사건을 하는 변호사의 눈으로 다시 읽습니다. 학대로 판단된 사례의 대부분은 부모가 가해자이고 집 안에서 일어나며, 7건 가운데 1건은 이미 한 번 발견된 아이가 다시 당한 재학대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진단을 통과한 다음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진단을 건너뛰는 전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웹툰의 해피엔딩이,
형사 사건을 하는 저는
조금 무섭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만화가 몇 달 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어느 로펌이 연재하는 홍보 웹툰의 한 에피소드입니다.
새벽 1시, 아이가 이불 속에서 게임을 합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잔소리가 시작되고, 휴대폰을 뺏으려는 실랑이 끝에 손이 한 번 올라갑니다. 아이는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아동학대 부모 신고」를 검색합니다. 아빠를 고소했더니 그 뒤로 잔소리가 사라져서 속이 다 시원하다는, 웃음기 섞인 후기가 뜹니다. 다음 날 아이는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어제 일을 말하고, 며칠 뒤 엄마에게 경찰서에서 전화가 옵니다.
이야기는 한 번 더 구릅니다. 격분한 아빠가 아이 휴대폰을 집어던져 부쉈고, 아이는 아빠도 신고합니다. 부모가 나란히 피의자가 됐습니다. 조사관이 원한다면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다고 안내하자, 아이는 그 말에 처음으로 웁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던 겁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집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겠죠. 문제는 결말이었습니다.
「착한 거짓말」과 「덕분에」
부모는 로펌을 찾아갑니다. 변호사는 법적 대응을 묻는 부모에게 법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며 아이를 데려와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단둘이 마주 앉아, 부모님이 너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고 전합니다.
부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변호사는 부모에게도 아이가 많이 후회하고 죄송해한다고 전하는데, 아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만화는 이 대목에 스스로 이름을 붙입니다. 「착한 거짓말」. 서로 마음속에만 있던 말을 대신 꺼내 준 것이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고요.
가족은 화해합니다. 그리고 결말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아이가 조사에서 학대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해 준 덕분에, 별다른 처분 없이 사건이 끝날 수 있었다고.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그림도 좋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도 좋고, 댓글창도 훈훈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지막 컷을 닫고 나서 스크롤을 도로 위로 올렸습니다. 한 단어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요.
「덕분에」.
「덕분에」가 성립하려면
만화 안에서 학대 행위는 실제로 있었습니다. 아이가 지어낸 게 아닙니다. 머리를 때렸고, 욕설이 있었고, 휴대폰이 방바닥에서 부서졌습니다. 아이는 조사에서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아이가 나중에 적극적으로 부인했고, 만화는 그걸 「덕분에」라고 썼습니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한 것이 덕분이 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합니다. 이 집이 안전한 집이라는 전제. 그날의 손찌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앞으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전제. 만화 속에서는 그 전제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 됐고요.
그런데 그 전제가 맞는지, 누구도 보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형사 기록 속의 가정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는 6만 3,166건이었고, 그 가운데 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2만 3,648건이었습니다. 신고 건수의 절반 넘게는 학대로 판단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신고가 들어온 집을 회복시켜야 할 곳으로 먼저 보는 시각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사 사건을 하다 보면, 가정이 아이가 가장 많이 다치는 곳으로 나오는 기록을 계속 읽게 됩니다.
보건복지부 2025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학대로 판단된 사례 가운데 85.3%는 부모가 가해자였고, 83.5%는 집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5.2%는 이미 한 번 학대로 판단받았던 아이가 다시 당한 재학대였습니다. 학대 사례 7건 가운데 1건은, 이미 한 번 발견된 아이가 또 당한 일입니다. 이 비율은 4년째 15~16%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사건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생후 16개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학대 신고가 3번 접수됐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2020년 10월, 아이는 여러 곳의 뼈가 부러지고 췌장이 끊어진 채, 배 속에 600mL의 피를 쏟고 숨졌습니다.
그해 12월에야 아동복지법이 바뀌었습니다. 1년 안에 2번 이상 신고된 아이는 학대가 강하게 의심되고 다시 당할 우려가 있으면 바로 집에서 떼어 보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30~50명의 아이가 학대로 목숨을 잃습니다. 지난해에는 38명이었습니다.
이런,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사건보다 더 심각한 사건도 종종 일어납니다… 애초에 방송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도 많습니다. 아동학대는 성격상 극단으로 갑니다. 가해자는 전능하고, 피해자는 숨을 곳이 없고, 폭력은 체벌로 합리화되고, 가속하고, 지속되고, 피해자에게는 이걸 알릴 의지도 방법도 없습니다.
5살 아이의 손발을 묶어 놓고 20시간 넘게 목검으로 100여 차례 때린 계부가 있었습니다. 숨진 12살 아이의 두 다리에서만 상처와 흉터 232개가 나온 사건도 있었습니다. 둘 다 오타가 아닙니다.
가해자에게 폭력은 그저 심심풀이인데, 인지부조화를 피하려고 거기에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맞는 아이가 나빠서라는 가스라이팅이 몇만 번 쏟아집니다… ‘살아남는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실종이나 병사, 사고사로 처리된 아이의 죽음 중에도 드러나지 않은 학대가 상당할 거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아동학대 신고 앞에서 형사 절차가 유난히 차갑고 관료적으로 구는 이유도, 낭만이 없어서라기보다 저 숫자들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겠죠. 조사하고, 분리를 검토하고, 진술을 확보하고. 그 답답한 순서가 하는 일은 결국 하나입니다. 최악의 경우부터 걸러내는 것.
같은 공식을 다른 집에 넣으면
만화 속 변호사는 피의자인 부모가 선임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아동을 불러 단둘이 만나고, 부모가 한 적 없는 사과를 전해 마음을 풀었고, 아이는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뒤집었습니다.
이 집이 정말로 안전한 집이었으니 이 개입은 가족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공식이 진짜 학대 가정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몇 년을 맞다가 처음으로 어른들 눈에 발견된 아이가, “부모님이 미안하다고 하셨어”라는 말에 마음이 풀려 진술을 거둡니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법을 배운 채, 다시 그 집 현관문 안으로 돌아갑니다. 다음 신고가 접수됐을 때, 한 번 말을 뒤집었던 그 아이의 진술을 어른들은 얼마나 믿어 줄까요.
하나 더 있습니다. 피의자의 변호인이 피해자를 따로 불러 만난 뒤 진술이 바뀌면, 그 만남은 나중에 회유였느냐를 두고 다툼이 붙기 쉽습니다. 상대가 아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법이 아이를 가해자와 떼어 놓은 곳에서 조사하게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만화에서는 결과가 좋았고 마음이 따뜻한 개입이었기 때문에, 그 만남이 「착한 거짓말」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런 자리를 피합니다. 멋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장면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기록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만화가 틀린 것도 아닙니다
만화가 그린 세태는 진짜입니다. 아이가 직접 신고하는 비율은 2020년 14%에서 2024년 28%로 2배가 됐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예전 같으면 훈육으로 넘겼을 일까지 신고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만화 속 아이가 본 그 후기처럼, 신고가 잔소리를 끄는 데 쓰이는 일도 실제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발적인 손찌검 한 번에 부모가 범죄자 낙인을 받고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이의 행복이냐 하면, 많은 경우 아닐 겁니다. 그 만화 속 집처럼 사과 한 번이면 풀릴 일이 절차 속에서 회복할 수 없게 바스러지는 사건도 있고요.
그러니까 저에게 걸렸던 건 그 변호사가 내린 처방이 아니었습니다. 순서였습니다.
진단 없는 처방
이 이야기에는 「이 집이 다시 안전한 집인가」를 확인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확인이 통째로 빠진 자리에 회복이 먼저 도착했고, 결과가 좋았고, 그래서 미담이 됐습니다. 확인 없이 회복에 건 것은 도박입니다. 그리고 도박은 결과가 좋으면, 도박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집니다. 이 만화에서도 그랬습니다.
저는 이 미담을 보고 훈훈해하는 수많은 독자 중에 몇 명이 이걸 공식으로 받아 적을지를 자꾸 세게 됩니다. 아이가 신고하면, 변호사를 사서, 아이를 달래서, 진술을 돌리면 된다 — 로 말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진단을 통과한 다음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진단을 건너뛰는
전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바라건대, 이 부분이 그냥 웹툰으로 만들면서 지루한 대목을 생략한 것에 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고나 법적 처벌이 아니라, 서로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 한마디로 풀릴 집이 실제로 많고, 그런 집이라면 형사 절차보다 식탁의 대화가 나은 해법이겠죠. 다만 그게 안 되는 집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조사실 앞에서만 나오는 집. 사과 다음에 더 나쁜 것이 오는 집. 그런 집의 아이에게 “너도 일이 이렇게 되길 원한 건 아니잖아, 맞지?”라는 어른의 물음이 어떻게 들릴지…? 이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직업 탓에, 좋은 결말을 그리는 쪽보다 나쁜 결말부터 지우는 쪽이 먼저 됐습니다. 남들 다 훈훈하게 읽는 만화를 이렇게 읽은 것도 그 직업병이겠습니다만.
그 만화의 가족이 지금도 평범한 저녁을 먹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해피엔딩이 도박이 아니라 진단의 결과였기를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같은 공식이 전혀 다른 집의 아이에게 적용되고 있지 않기를 — 이것만은 정말, 바라는 수밖에 없어서 조금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