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2026년 7월 7일 · 변호사 김영빈
아이가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어느 로펌 웹툰 — 아이가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변호사의 '착한 거짓말'로 아이가 진술을 뒤집어 사건이 종결되는 해피엔딩. 형사 사건을 하는 변호사가 그 결말이 불편한 이유를 적었습니다. 한 해 아동학대 판단 2만 4천여 건, 여섯 건에 하나는 재학대 — 가정의 회복은 진단을 통과한 다음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진단을 건너뛰는 전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웹툰의 해피엔딩이, 형사 사건을 하는 저는 조금 무섭습니다
요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만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큰 로펌이 연재하는 홍보 웹툰의 최근 에피소드인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새벽 한 시, 아이가 이불 속에서 게임을 합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잔소리가 시작되고, 휴대폰을 뺏으려는 실랑이 끝에 손이 한 번 올라갑니다. 아이는 그날 밤 이불 속에서 검색창에 이렇게 칩니다. “아동학대 부모 신고”. 어느 후기가 뜹니다. 아빠를 고소했더니 그 뒤로 잔소리가 사라져서 속이 다 시원하다는, 웃음기 섞인 글. 다음 날 아이는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어제 일을 말합니다. 며칠 뒤 엄마에게 경찰서에서 전화가 옵니다.
이야기는 한 번 더 구릅니다. 격분한 아빠가 아이 휴대폰을 집어던져 부쉈고, 아이는 아빠도 신고합니다. 부모가 나란히 피의자가 됐습니다. 조사관은 아이에게 원한다면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다고 안내하고, 아이는 그 말에 처음으로 웁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던 겁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집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겠죠. 문제는 결말이었습니다.
‘착한 거짓말’과 “덕분에”
부모는 로펌을 찾아갑니다. 변호사는 법적 대응을 묻는 부모에게 법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며, 아이를 데려와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단둘이 마주 앉아 이렇게 전합니다. 부모님이 너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고.
부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변호사는 부모에게도 아이가 많이 후회하고 죄송해하고 있다고 전하는데, 아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만화는 이 대목에 스스로 이름을 붙입니다 — ‘착한 거짓말’. 서로 마음속에만 있던 말을 대신 꺼내 준 것이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고요.
가족은 화해합니다. 그리고 결말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아이가 조사관에게 학대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해 준 덕분에, 별다른 처분 없이 사건이 종결될 수 있었다고.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그림도 좋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도 좋고, 댓글창도 훈훈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지막 컷을 닫고 나서 스크롤을 도로 위로 올렸습니다. 한 단어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요.
“덕분에”.
”덕분에”가 성립하려면
만화 안에서 학대 행위는 실제로 있었습니다. 아이가 지어낸 게 아닙니다. 머리를 때렸고, 욕설이 있었고, 휴대폰이 방바닥에서 부서졌습니다. 아이는 조사에서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아이가 나중에 적극적으로 부인했고, 만화는 그걸 “덕분에”라고 썼습니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한 것이 ‘덕분’이 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합니다. 이 가정이 안전한 가정이라는 전제. 그날의 손찌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앞으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전제. 만화 속에서는 그 전제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 됐고요.
그런데 그 전제가 맞는지, 누구도 보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형사 쪽 자리에서 보면
가사 사건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에게 가정은 회복시켜야 할 대상일 겁니다. 맞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확률적으로도, 아마도 99%는 형사사건이 아니라 가사사건으로 끝날 경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사 사건을 하다 보면 — 이렇게 쓰는 게 조심스럽습니다만 — 가정이 아이가 가장 많이 다치는 장소로 등장하는 기록을, 남들보다 자주 읽게 됩니다.
보건복지부 연차보고서 기준으로, 한 해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건이 2만 4천여 건입니다. 학대 행위자의 8할 이상이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중 15.9%, 여섯 건에 하나꼴은 재학대 — 이미 한 번 학대로 판단받았던 아이가 다시 당한 사건입니다. 이 비율은 3년째 16% 언저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사건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세 차례나 신고가 접수됐지만 그때마다 집으로 돌아갔던, 생후 열여섯 달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조그만 몸의 뼈가 수없이 부러지고, 몸속 피의 80% 가까이를 배 속에 쏟은 채 떠난 뒤에야, 거듭 신고된 아이는 일단 분리부터 검토한다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매년 서른 명에서 쉰 명 사이의 아이들이 학대로 목숨을 잃습니다. 이런, 「그것이 알고 싶다」에 등장한 사건보다 더 심각한 사건도 종종 발생합니다… 애초에 방영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도 많은 것이, 아동 학대 사건은 성격상 극단화됩니다. 가해자는 전능하고, 피해자는 숨을 곳이 없고, 폭력은 체벌로 합리화되고, 가속하고, 지속되고, 피해자는 이걸 알릴 의지도 의사도 없고, 가해자에게 폭력은 그저 심심풀이이면서도 인지부조화를 피하기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스무 시간에 백여 대의 매질을, 아이 몸에 이백 곳이 넘는 상처를(둘 다 오타가 아닙니다) 남기면서, 맞는 아이가 나빠서, 라고 몇만 번의 가스라이팅이 가해집니다… ‘살아남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학대가 아닌 아동 사망 중, ‘실종’/‘병사’/‘사고사’로 은폐되는 암수 학대 또한 상당할 거라 개인적으로는 확신합니다.
아동학대 신고 앞에서 형사 절차가 유난히 차갑고 관료적으로 구는 이유도, 낭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저 숫자들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겠죠. 조사하고, 분리를 검토하고, 진술을 확보하고. 그 답답한 순서가 하는 일은 결국 하나입니다. 최악의 경우부터 걸러내는 것.
같은 공식을 다른 집에 넣어 보면
만화 속 변호사의 개입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피의자인 부모에게 선임된 변호사가, 피해아동을 불러 단독으로 면담하고, 부모가 한 적 없는 사과를 전해 마음을 풀고, 아이는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뒤집는다.
이 집이 정말로 안전한 집이었으니 이 개입은 가족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공식이 진짜 학대 가정에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면 어떻습니까. 몇 년을 맞다가 처음으로 어른들 눈에 발견된 아이가, “부모님이 미안하다고 하셨어”라는 말에 마음이 풀려 진술을 거두고,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법을 배운 채, 다시 그 집 현관문 안으로 돌아갑니다. 다음 신고가 접수됐을 때, 한 번 말을 뒤집었던 그 아이의 진술을 어른들은 얼마나 믿어 줄까요.
하나 더 있습니다. 피의자 측 변호인이 피해자를 따로 만나 진술에 영향을 주는 그림은, 당사자가 성인이었다면 회유 시비가 붙기 딱 좋은 자리입니다. 아이였고, 결과가 좋았고, 마음이 따뜻한 개입이었기 때문에 ‘착한 거짓말’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이죠. 형사 일을 오래 한 변호사일수록 이런 자리를 조심스럽게 피해 다니는데, 멋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그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만화가 틀렸다고만 하기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반대쪽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만화가 포착한 세태는 진짜입니다. 신고했더니 잔소리가 사라져서 시원하다는 그 후기 — 과장이 아닙니다. 훈육 마찰이 신고로 이어지고, 신고가 잔소리를 끄는 스위치처럼 쓰이는 사례는 실제로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발적인 한 번의 손찌검에 부모가 범죄자 낙인을 받고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이의 행복이냐 하면, 많은 경우 아닐 겁니다. 그 만화 속 가정처럼 사과 한 번이면 풀릴 일이, 절차 속에서 회복 불가능하게 바스러지는 사건도 실제로 있고요.
그러니까 저에게 걸렸던 건 그 변호사가 내린 처방이 아니었습니다. 순서였습니다.
진단 없는 처방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를 주는 것은 처방입니다. 그런데 그 열이 감기인지 다른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에 해열제부터 쥐여 주는 것은, 처방이라기보다 도박에 가깝겠죠. 그리고 도박은 결과가 좋으면, 도박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집니다. 이 만화에서도 그랬습니다.
이 서사에는 ‘이 가정이 회복 가능한 가정인가’를 확인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진단이 통째로 생략된 자리에 회복이라는 처방이 먼저 도착했고, 결과가 좋았고, 그래서 미담이 됐습니다. 저는 이 미담을 보고 훈훈해하는 수십만 명 중에 몇 명이 이걸 공식으로 받아 적을지를 자꾸 세게 됩니다. 아이가 신고하면, 변호사를 사서, 아이를 달래서, 진술을 돌리면 된다 — 로 말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진단을 통과한 다음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진단을 건너뛰는 전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바라건대, 이 부분이 그냥 웹툰화를 위해서 — 지루한 부분을 생략한 것에 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고나 법적 처벌이 아니라, 서로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 한마디로 풀릴 집이 실제로 많고, 그런 집이라면 형사 절차보다 식탁의 대화가 나은 해법이겠죠. 다만 그게 안 되는 집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조사실 앞에서만 나오는 집. 사과 다음에 더 나쁜 것이 오는 집. 그런 집의 아이에게 “너도 일이 이렇게 되길 원한 건 아니잖아, 맞지?”라는 어른의 물음이 어떻게 들릴지…? 이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직업 탓에, 좋은 결말을 그리는 쪽보다 나쁜 결말부터 지우는 쪽이 먼저 됐습니다. 남들 다 훈훈하게 읽는 만화를 이렇게 읽은 것도 그 직업병이겠습니다만.
그 만화의 가족이 지금도 평범한 저녁을 먹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해피엔딩이 도박이 아니라 진단의 결과였기를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같은 공식이 전혀 다른 집의 아이에게 적용되고 있지 않기를 — 이것만은 정말, 바라는 수밖에 없어서 조금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