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 2026년 9월 1일 · 변호사 김영빈
업무상배임으로 고발당했습니다 — 그런데 재판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모두 업무상배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임은 손해가 아니라 임무위배와 고의로 성립하고, 이용요금 할인처럼 회사 내규와 경영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결정은 임무위배로 보기 어렵습니다. 주주회원제 골프장 대표가 배임으로 고발당했다가 검찰 단계에서 핵심 혐의에 혐의없음을 받고 정식재판 없이 마무리된 사건으로, 배임의 성립요건과 수사 단계 방어의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회사에 손해가 났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배임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방어는, 애초에 피고인석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골프장 대표가 ‘배임’으로 고발당했습니다
지방의 한 회원제 골프장이 있었습니다. 조금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손님이 곧 주인인 골프장, 그러니까 이용하는 회원들이 저마다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가진 주주회원제로 운영되는 법인이었습니다. 대표이사도 그 회원들 중 한 사람이 주주총회에서 뽑혀 앉는 자리였습니다.
그 대표이사가 재직하는 몇 해 동안, 골프장 이용요금을 여러 차례 할인해 주었습니다. 어떤 것은 인근 골프장 관계자에게, 어떤 것은 협회가 키우는 유망 선수에게, 또 어떤 것은 본인과 가족·지인에게 돌아갔습니다. 횟수를 세면 수백 회, 깎아 준 금액을 합치면 수천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이 지나 회사 안에서 갈등이 생겼고, 일부 주주회원들이 대표이사를 고발했습니다. 죄명은 업무상배임. “대표가 아무 근거 없이 제 사람들에게 요금을 깎아 주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발당한 사람의 심정은 대개 비슷합니다. “회사 사정 뻔히 아는데,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한 일이 어떻게 배임이 되나.” 억울함은 진심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 앞에서 억울함만으로 증명되는 것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배임이라는 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해입니다.
손해가 나면, 그것이 곧 배임일까요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회사에 손해가 났다는 사실과, 대표가 배임을 저질렀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는 행위를 했고(임무위배), 그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했다는 것(고의)이 함께 인정되어야 합니다. 손해는 결과일 뿐이고, 처벌의 근거는 ‘임무를 어겼는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배임 사건의 진짜 싸움터는 “회사가 손해를 봤느냐”가 아니라 “그 행위가 임무를 저버린 것이냐”입니다. 이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면, 손해라는 숫자에 눌려 있다가 하지 않아도 될 자백을 하게 됩니다.
내규를 어긴 것과, 임무를 어긴 것
그렇다면 이 사건의 대표이사는 임무를 저버린 걸까요. 여기서 결정적인 구분이 하나 등장합니다. 회사의 내규를 어긴 것과, 법이 말하는 ‘임무’를 어긴 것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골프장에는 이용요금표가 있었고, 비회원 할인 규정도 있었습니다. 고발한 쪽은 “이 요금표대로 받지 않았으니 임무 위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요금표와 할인 규정은 법령도 아니고 정관도 아닙니다. 회사가 더 벌기 위해 이사회 결의나 대표이사 전결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내규였습니다. 실제로 할인 여부는 담당 직원이 올리면 대표이사가 결재하는, 대표의 권한과 재량 안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법원도 오래전부터 같은 태도입니다. 회사 내규를 조금 벗어났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임무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그 행위가 통상적인 업무집행의 범위를 벗어났는지를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금표를 다소 유연하게 적용한 할인을, 곧바로 ‘임무를 저버린 부당한 할인’으로 못 박기는 어렵습니다.
빈 시간을 채운 할인은, 경영판단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 할인에는 나름의 셈법이 있었습니다. 골프장에는 비수기가 있고, 예약이 비는 시간대가 있습니다. 그 빈 코스를 그냥 두면 수입은 0원입니다. 반면 할인해서라도 손님을 받으면, 깎아 준 만큼을 빼고도 회사에는 이익이 남습니다.
빈 코스를 놀리는 것보다, 할인해서라도 채우는 편이 회사에 낫다. 이것이 경영판단입니다. 그리고 경영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결정은,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남더라도 함부로 배임으로 몰 수 없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비수기의 빈 시간에 비회원을 받아 할인해 준 골프장 대표에 대해 “그렇게라도 이용하게 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이라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다”며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를 남긴 바 있습니다. 이 사건의 방어도 정확히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조금이라도 돌려세우려던 판단이었다는 것을, 회사의 정관과 각종 규정, 협회 사이에 오간 협약 문서, 담당 직원의 진술로 하나씩 세워 나갔습니다.
이 사건이 법정에 가지 않은 이유
수사 결과, 검찰은 배임 혐의의 핵심 부분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남은 일부만 가벼운 약식(벌금)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처음 고발장이 말하던 수천만 원의 손해는, 극히 일부만 남기고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이 사건은 정식 재판정에 서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배임 방어의 핵심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형사사건 하면 법정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게 가장 좋은 그림은 그 반대입니다. 기소되고 나면, 이미 절반은 진 싸움입니다. 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피고인’이라는 이름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진짜 승부는 종종 법정 이전, 수사 단계에서 갈립니다. 검사가 기소 여부를 정하기 전에, 배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료와 법리로 설득해 낼 수 있느냐. 그 문턱을 넘어서면, 화려한 무죄 판결보다 조용한 불기소가 당사자를 훨씬 더 온전히 지켜 줍니다. 가장 좋은 방어는, 애초에 피고인석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배임으로 고발당하셨다면
배임은 억울함을 느끼기 가장 쉬운 죄명 중 하나입니다. 회사를 위해 한 일, 관행대로 한 일, 손해를 볼까 봐 서둘러 내린 결정이 어느 날 배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셨듯, 방어의 길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손해와 임무위배를 갈라내고, 내규와 법적 임무를 구분하고, 경영판단이었음을 문서로 세우고, 그 논리가 통하는 판례를 찾아 붙이는 일. 억울한 당사자가 혼자 서서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입니다. 게다가 그 승부의 상당 부분이 기소되기 전, 수사 단계에서 이미 결정됩니다.
배임 혐의로 고발이나 조사를 앞두고 계신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 시점에 사건의 구조를 정확히 진단받는 일입니다. 손해라는 숫자에 눌려 있을 시간에, 그 숫자가 정말 ‘임무를 저버린 것’인지부터 함께 따져야 합니다. 그것이 재판정에 서지 않고 끝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